충분히 감사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재능이 처음으로 빛을 발한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음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음악부에서의 첫 경험은 신선했다. 리코더를 배우고, 장구도 배우며 다양한 악기를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잘하지 못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리듬에 푹 빠져 있었다.
지역 국민학교끼리 합창대회에도 참가했다. 무대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목소리를 맞춰 부르는 그 순간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할 때의 떨림과 성취감은 어린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합창단 활동을 계속했다. 중학교 때는 중창단과 합창단을 오가며 더욱 깊이 있는 음악 활동을 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운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경험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다.
덕분에 음악과 미술 성적은 항상 우수했다. 다른 과목에서는 평범했지만, 예체능 분야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음악 활동을 통해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원래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성격이 점차 활발하고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무대에 서는 경험이 자신감을 주었고, 합창단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교성도 늘었다. 음악이 나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고등학교 말, 나는 대학 진로를 음악대학으로 정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하고 싶었다. 입시 준비를 위해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동생이 있었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얼굴도 예쁜 그 동생에게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그 동생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다.
"혹시 여동생 있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에 자주 온다고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여동생을 기다리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그 여동생이 왔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점차 친해졌다. 함께 데이트도 많이 했다. 음악을 매개로 시작된 만남이었고, 함께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토록 준비했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후 시골에 내려가서 시립합창단에 들어가서 활동을 계속했다. 전문 음악인의 길은 막혔지만, 여전히 음악과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교회에서는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성가대를 이끌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특별한 보람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다른 길을 택하게 되었다. 교육자의 길, 그것도 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음악과는 다른 분야였지만, 음악 활동을 통해 얻었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합창단에서 배운 협동심, 무대에서 얻은 자신감, 음악을 통해 기른 감수성, 그리고 소극적인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가끔 옛 합창단 친구들을 만나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예전만큼 목소리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그 시절의 열정적인 청년이 된다.
음악대학 진학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첫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음악이 내게 준 선물들은 평생 내 곁에 있다. 그 날개를 달고 지금까지 날아온 것 같다.
음악은 내 인생의 동반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비록 전문 음악인의 길은 걷지 못했지만, 음악 덕분에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