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과 비행기

등과 흐르던 땀방울

by 윤호근

아버지의 등과 비행기


7살이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었다.

다리 사고 이후 시골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서 애양병원이라는 곳으로 가야 했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때는 차량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5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가셨다.


가을이었다. 추수를 마치고 해가 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병원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행장이 있었다. 지금도 그 비행장은 그 자리에 있다.


비행장 안쪽으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바람 방향기가 보였고, 비행기들도 보였다. 아버지 등에 업힌 채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비행기로 간다면 얼마나 빠를까?'


아버지의 등에서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시며 나를 업고 그 먼 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했다.


'나중에 커서 아버지를 꼭 비행기에 태워드려야지.'


그때 품었던 작은 다짐이었다. 언젠가 내가 자라서 돈을 벌면, 아버지를 비행기에 태워서 제주도든 어디든 모시고 가고 싶었다. 그 고생스러운 도보 여행 대신 편안한 비행기 여행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하늘나라로 가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겼을 때, 아버지를 비행기에 태워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아버지는 내 기억 속에서 땀에 흠뻑 젖은 등으로 나를 업고 가시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묵묵한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이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절감한다.


나도 내 아이를 등에 업고 나들이를 할 때면 그때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이의 무게가 어깨에 전해질 때, 내 등에서 땀이 흘러내릴 때, 아버지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그 마음. 5시간이 넘는 길을 걸어서라도 아이의 다리를 고치고 싶었던 그 간절함.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내 다리를 고치려고 그 먼 곳까지 나를 업고 다니셨던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비록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 사랑과 정성이 있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아버지를 비행기에 태워드리지 못한 것은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미 더 높은 곳,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고 계실 것이다.


가끔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씀드린다.


"아버지, 그때 업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그때 못 태워드린 비행기 여행 꼭 함께 해요."


아버지의 등에서 본 그 비행장과 비행기들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기억하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약속이지만, 그 마음만큼은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의 그 넓은 등과 흐르던 땀방울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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