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꿈을 키우고, 현실에서 벽을 만나다.

자유의 소중함

by 윤호근

바다에서 꿈을 키우고, 현실에서 벽을 만나다


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었다. 대문을 나와서 몇 발자국만 뛰면 바로 바다였다.


어린 시절 나는 수영을 좋아했다.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바다에서만큼은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었다. 바다에서는 잘 떴고, 정박해 있는 배에 올라서서 다이빙도 했다. 3~4미터 되는 배를 앞뒤로 잠수해서 건너는 것도 일상이었다.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멸치배를 타고 나가는 것도 즐거웠다. 멸치잡이를 하지 않는 시기에는 종종 배를 타고 낚시를 했고, 해삼이나 돌게도 잡았다. 미역을 따기도 했다. 집 앞 물이 빠지면 낙지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바다와 함께 자유롭게 자란 어린 시절이었다. 다리는 불편했지만 바다에서만큼은 그 어떤 제약도 없었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려 했을 때, 현실은 바다와 달랐다.

여기저기 지원서를 냈다. 서류에서 합격하면 면접에서 탈락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또다시 면접에서 탈락했다. 왜 계속 탈락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결국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장애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일반 사업체들이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했던 시기였지만, 장애인복지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회 전반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 편견이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매번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바다에서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었던 내가,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 벽은 높고 견고했다.

결국 나는 다시 공부해서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


그 무렵 장애인협회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활동에 참여하며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장애인 인권, 노동권, 권익 옹호, 사회참여권, 권리를 누리는 삶 등에 관심을 갖고 활발히 활동했다.


하지만 내 삶 자체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결국 현재는 내 직업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그때의 뜨거운 열정을 모두 쏟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그 시절 장애인 편견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던 것이 내게 아직도 뜨거운 마음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있다는 것을.


앞으로의 삶에서도 그런 활동을 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그 시절처럼,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다시 참여하고 싶다.


어린 시절 바다가 내게 자유를 가르쳐 주었다면, 사회생활은 현실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 두 경험 모두 나를 성장시켜 준 소중한 밑거름이었다.


지금도 바다를 볼 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했던 그 시절. 그리고 그런 세상을 육지에서도 만들고 싶었던 젊은 날의 꿈이.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다시 그 꿈을 실현할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까지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가고 싶다.


바다에서 배운 자유의 소중함을,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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