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성묘와 어머니의 배려

2025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by 윤호근

추석 성묘와 어머니의 배려


어린 시절 우리 시골 마을에서는 명절이 되면 수십 가지의 명절 음식이 차려졌다. 특히 추석 대명절이면 그 어떤 때보다 많고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차례상이었다.


우리 집안 식구들이 성묘를 갈 때면 같은 같은 성씨끼리 일가친척 약 8촌까지 모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가족 성묘부터 시작했다. 내 부모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순서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가친척 중에서 가장 높은 집안 어른의 묘에서 8촌까지 모두 모여 성묘를 올렸다. 그러면 약 30명 정도가 모였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합해서 이 정도 인원이 성묘를 올릴 때 제사 음식은 정말 많이 준비되었다.


그 많은 음식을 모두가 나눠 먹었다. 어릴 때는 차례를 마친 후 형들이 어린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차례 음식을 나눠주곤 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과일을 평소에 많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배, 사과, 감 등은 줄을 서서 배식받는 식으로 받아야 했다.


물고기나 송편은 그리 인기가 없었다. 우리가 바닷가 마을이라 물고기는 매일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돼지고기, 소고기는 인기 음식 중 하나였다.


이렇게 추석 명절이면 성묘하러 다니는 풍습이 있었고, 지금도 그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차례상을 차린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불편해서 멀리 있는 산소는 갈 수 없었고, 가까이에 있는 산소만 갈 수 있었다. 다른 친척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여 성묘를 가면 점심때쯤 끝나고 오기도 했고, 묘가 우리 마을에 있지 않고 다른 마을에 있다면 점심을 먹고 오후에 걸어서 가곤 했다. 그때는 시골에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때로는 추석 명절 성묘 갈 때 나는 안 갈 때가 많았다. 다리가 불편해서 산과 언덕을 올라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집에서 어머니가 별도로 음식을 남겨서 나에게 주곤 하셨던 기억이 난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성묘를 다녀온 후, 어머니는 차례 음식을 따로 챙겨두셨다가 내게 주셨다.


"너도 같이 못 가서 미안하구나. 이거라도 먹어라."


어머니의 그 말씀과 함께 건네받은 차례 음식은 다른 때보다 더 맛있었다. 비록 성묘는 함께 가지 못했지만, 조상을 기리는 마음만큼은 같이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나를 배려해 주셨다. 다른 가족들과 똑같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추석 명절은 정말 큰 행사였다. 온 집안이 모여서 조상을 기리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가족의 정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비록 내가 모든 성묘에 함께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가족 공동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만큼은 다른 가족들과 똑같이 명절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추석이 되면 그때 생각이 난다. 30명이 넘는 친척들이 모여 성묘하던 그 시절과, 나를 위해 음식을 따로 남겨두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이전 10화바다에서 꿈을 키우고, 현실에서 벽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