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 그 빛나는 본능에 대하여

가정에서의 인권존중이 사회의 기틀

by 윤호근

자발성, 그 빛나는 본능에 대하여


가끔 문득 생각해 본다. 자발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든 곳에서 자발성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 자발성을 '본능'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무엇.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젊고 활발했던 시절, 자발성은 나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때의 그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 씁쓸하다.


본능이 앞서던 때는 언제였을까.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그들에게 자발성을 가르쳐야 할까? 아니다. 자발성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기원, 심오한 힘의 원천이다.


옛날 사람들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행사와 모임에서, 여행 중에 자발성을 발휘했다.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발성에도 원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행동과 생각의 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발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의식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자발적이지 못한 모습이 만연해 있다. 정부가 잘못했을 때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 의해 동원되어 가는 일에는 소극적인 사람도 있다.


어떤 것이 진정한 자발성일까. 나는 후자보다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자발적인 것은 아니다. 보고, 느끼고, 말하고, 체험하면서 이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 삶에서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인권감수성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인권을 말하고자 한다. 차별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자발성을, 본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권을 말할 때는 자발적으로 말해야 한다. 차별을 당할 때는 자발적으로, 본능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차별받지 않기 위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은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웃으면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 가정에서 설거지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무슨 인권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인권존중이 사회의 기틀이 된다.


요즘 사람들, 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존중, 인권옹호, 차별금지. 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빛이 있는 곳에서 유쾌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발성이라는 빛나는 본능으로,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며, 작은 일상 속에서 실천하며.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시골 고향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