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
"차이에서 차별로." 이 말은 우리에게 무거운 주제다. 무겁게 느껴지는 이야기이자, 우리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인간을 나눌 때, 인종주의적 차이는 가장 먼저 차별의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를 보자. 이제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인구 구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군대에 가는 시대가 되었다.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전통적인 가정은 한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결합이 자연스러워졌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에서 과거에 많은 차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일하는 곳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근로자들은 차별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들을 차별한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인종 간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과 똑같이 생긴 화교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이면에는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화적 차이, 생물학적 차이. 이런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100미터 달리기를 생각해 보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은 트랙에서 달린다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비장애인이 우승한다.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체적, 정신적 특질들은 상호 의존하며, 그 특징들은 교육으로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를 떠올려보자.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있고, 부진한 학생도 있다. 어떤 교사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만 칭찬을 쏟아붓고, 부진한 학생에게는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차별이다. 그리고 그런 차별은 결국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는 있지만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지속적인 교육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본능적으로,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우리는 이를 위한 정책을 잘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사회,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차별은 절대 자연스러울 수 없다.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선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