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휴대폰 화면 속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겼다.
동기 혜진이의 유럽여행 사진이 떴다.
콜로세움 앞에서 활짝 웃는 혜진이.
피드에는 ‘예쁘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나도 습관처럼 그리고 예의상 ‘예쁘다’고 썼다.
그런데 문득, ‘이게 진심일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솔직히 혜진이가 특별히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는 말조차도 약간의 질투가 섞여서 일 것이다.
그래도 사진 속 혜진이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예뻐 보였다.
콜로세움의 웅장함 때문일까,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아마 둘 다겠지.
어쩌면 내가 ‘예쁘다’고 말해서 더 예뻐 보였을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토스트를 굽는다.
오늘은 식빵에 딸기잼. 노릇하게 구워진 빵에서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나는 요리 맛을 잘 모른다. 그냥 달고 짜고만 겨우 구분할 뿐이다. 친구들은
“와, 이거 겉바속촉이 예술이네!” 라든지,
“딸기잼이랑 버터 조합이 미쳤다”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냄새를 맡는다.
‘아, 좋다.’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굳이 멋진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아도, 이 토스트는 충분히 예쁘다.
아니, 고소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누군가 옆에서 “오늘 토스트 진짜 맛있겠다, 그치?” 하고 한마디 건네면 그 냄새는 몇 배로 증폭되는 기분이다.
그 말이 내 미각을, 후각을, 아니 어쩌면 내 아침 전체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신기한 일이다. 말 한마디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내가 토스트 맛을 더 잘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해준 상대방과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느끼는 일종의 행복감 때문일 거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다.
‘나는 뭘 잘할까?’, ‘뭘 좋아하는 걸까?’ 답을 찾기 어려웠다.
예전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예를 들면,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들은 “너 그림 진짜 잘 그린다”라고 칭찬했다.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현실을 깨달았다.
나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엄청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 앞에서 내 그림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잘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서서히 그림 그리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잘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굳이 그릴 필요를 못 느꼈다.
어쩌면 나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에 더 집착했던 건 아닐까.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그러셨다. “너는 말 좀 예쁘게 해라.”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너무 당연한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았다.
감사한 일에도 ‘고마워’라는 말을 아꼈다.
그저 마음으로 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게 쌓여 폭발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네가 말을 안 하니 난 네가 괜찮은 줄 알았지”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늘 괜찮은 척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하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 결과는 오해와 서운함의 더미로 남았다. 결국 그 관계는 끝이 났다.
씁쓸하지만, 그 이별을 통해 깨달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특히 좋은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다시 새벽 두 반, 혜진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봤다.
이번엔 콜로세움보다 혜진이 얼굴에 시선이 갔다.
혜진이의 웃음이 유독 빛나 보였다.
‘예쁘다’는 내 댓글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건 아닐 테다.
하지만 내가 ‘예쁘다’고 말한 순간, 내 감정도 함께 예뻐졌다는 건 확실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예쁜 것’들을 만난다.
노을 지는 하늘, 창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풍경, 한밤중에 듣는 잔잔한 음악.
말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다.
하지만 우리가 그 예쁨을 기꺼이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예쁨은 더욱 선명해지고 깊어진다.
내 입에서 나온 ‘예쁘다’는 말이 그 풍경을 더 예쁘게 만들고,
그 풍경을 보는 나 자신마저도 조금 더 예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물론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침묵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침묵 속에 가두고 사는 건 아닐까?
때로는 ‘예쁘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메마른 일상에 작은 물줄기가 된다.
그 물줄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적시고, 나 자신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만든다.
그러니 오늘, 주저하지 말고 말해보아야겠다.
길 가다 마주친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면 “어머, 진짜 예쁘다!” 하고 중얼거려 보고, 친구가 해준 밥이 맛있다면 “와, 진짜 맛있다!” 하고 크게 말해주는 것이다.
굳이 듣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그 말은 분명, 말하는 나를 더 예쁘게 만들고, 나의 하루를 더 예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말하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다.
내가 예쁘다고 말하면, 세상도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