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반추] 글 앞에 나를 마주하다

오랜만에 '글'을 대해보며 경건해지다

by 알리오올리오



아마도 2004년의 어느 때 즈음?



내가 처음 글을 통해 '기록'이라는 것을 시작한 때.


중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기존까지 유행하던 '버디버디'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싸이월드'가 대유행을 시작하며, 너도나도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미니미를 꾸미고, 도토리를 충전하기 시작한 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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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목적과 의도성을 가지고 싸이월드를 개설한 것은 아니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미다보니, 'Diary'라는 메뉴를 접하게 되었고,

이 Diary 메뉴도 여타 메뉴처럼 하나의 꾸며야하는 '대상'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기록의 기억은,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고2 정도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슬슬 고3을 앞두고 수능이라는 것이 거대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며, 싸이월드에 들이는 공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그러고 대학에 입학하여 다시 싸이월드를 활발히 시작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싸이월드 다이어리, 속칭 '싸이어리'는 소위 정제되지 않은 나의 감정, 생각, 느낌을 배출하는 창구였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허세어리'라고 불리며, 흔히 새벽 1~2시 감성 풍만해지는 시기에 술이 약간 혹은 거나하게 취해서 글을 올렸다가 다음날 다시 '비공개'로 돌리는 이 부끄러운 루틴은 몇 차례 반복되었고..


그렇게 대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 되어, 도대체 이 정제되지 않은 글이 나의 허세를 표현하는 것 외에 무슨 기능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당시 Facebook으로 시대의 조류가 넘어가는 틈에 자연스레 '싸이어리'와 멀어지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나의 '기록' 기능 또한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까지...


기록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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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기록의 나라'라고 불릴만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그 유지에 만전을 기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현대의 입장에서 선사시대, 아니 가까운 삼국시대의 역사만 되돌아보고자 하여도 우리는 그 기록을 찾기 힘들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흔히 들어본 일부 역사서 외에 그 기록내역을 찾아보기 힘들고, 적혀있어도 일부만 피상적으로 적혀있는 경우도 많아 상세한 디테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기록은 왜 중요할까? 그것은 어떻게보면 인간의 존재의미와도 관련히 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늘을 산다. 정확히는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산다. 별 거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거다.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누적된 '내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우리는 훅 가는 거다. 그러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이 지구에, 인간사회에 나의 흔적은 자식이 있다면 자식말고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이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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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일반인들의 기록은 안타깝게도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어느 역사서에 신라시대의 개똥이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가? 역사는 핵심인물,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사건, 정책들만 기술되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기록은, 특히 요즘과 같이 인터넷 시대에서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지속될 수 있다. 그렇게 비록 나의 생은 마감되어도, 나는 기록과 함께 천년만년 지속될 수 있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뭐 나의 존재가 대단해서 기록에 남겨놓고 싶어서? 아니면 잊혀지는 게 두려워 그렇게 해달라고 하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나란 사람이 이 세상에 잠깐 왔다 간다는 일말의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다. 그렇게 꼭 남이 아니더라도, 먼 훗날 장년이 된, 노년이 된 내가 청년기의 나를 되돌아보며 허허 웃을 수 있는, 그런 차원에서라도 기록이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간 살아온 공백기의 나의 이야기들을 통해 남들과 조금 더 공감하고 교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쪼끔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아~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10~20대의 나에게 싸이월드의 허세어리는, 자기를 기만하는 허세에 가득찬, 소위 매몰된 기억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 아쉽다. 그 허세에 가득 찼던 당시 나의 생각들이,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정말 귀중하고 참신하고 미성숙했지만 아름다웠던 내 기억의 단편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의 이런 생각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같은 후회는 10년, 20년 뒤에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걸..


기록은 인간의 본능이다.

넷플릭스의 '데블스 플랜'에서 하석진과 이시원은 큐브? 조각의 비밀을 풀고, 감옥에 들어간다. 거기서 하석진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 역사시간에 배운 선사시대의 동굴벽화, 모헨조다로 유적 같은 것에서 나오는 낙서 같은 것만 보아도, 기록이 인류의 오래된 본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록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꽤 오랜 기간 내게 숨겨져왔던 나의 본능이, 요새 고민이 많은 나의 복잡한 심리와 얽혀 '기록'을 향한 본능으로 발효되었다.



기록의 중요성을 이렇게 다시 한 번 되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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