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1)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Life on our planet

by 알리오올리오


와이프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처가집에 짧은 요양을 간 틈이, 육아에 찌들은 내게 주어진 휴식(?)이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서치를 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지구와 생물의 역사관련 다큐를 발견했고, 이틀만에 시청완료했다. 모건 프리먼이 나레이션을 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고 하더라.


지구의 역사를 조명하는만큼, 단위가 기본 억 단위이다. 조명하는 지구의 시기가 46억년 전, 30억년 전, 15억년 전, 1억 6천만년 전 등으로 내려온다. 지구와 공룡, 고생물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흥미를 가지는 수준이었는데, 이 다큐를 보고 관심이 가서 추가로 유튜브를 통해 알아보기도 할 정도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이 다큐를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1. 지구와 생물의 역사_매크로와 마이크로


앞서 말했듯 기본이 억 단위이다. 바다가 형성되는 시간 몇 억년, 그 바다에서 최초 원시세포가 발현되고 퍼지는 시간 몇 억년, 플랑크톤이 나타나고 기초적인 진화가 발생하는 시간 몇 억년.


다큐에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여러 고생물이 등장하고, 이들은 각기 적응에 유리한 특성을 십분 활용해 번성에 성공하거나, 그저 명맥만 유지하며 살거나, 아니면 적당히 평타를 유지하며 살다가 멸종하기에 이른다.


진화란 번식과정 중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만약 그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면 자연선택되어 그 유리한 형질로 바뀌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단지 몇 세대에 걸친 정도의 변화 수준이 아니라, 짧게는 몇 백에서 길게는 몇 천, 몇 만세대까지 이뤄지는 변화의 연속일 것이다.


생물의 역사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없이 이 같은 진화과정을 통한 선택압을 거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했을 것이며, 큰 틀에서 보면 지구의 역사 또한 중립적인(Neutral) 여러 자연환경의 인과관계로 인해 멸종과 번영을 초래했을 뿐, 그 과정에는 어떤 의도나 개입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전자.jpg





#2. 전 지구적 매크로 관점에서 마이크로의 의미란?


지구와 생물의 역사 전개과정은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지만, 내게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그것은 가치판단이 배제된 매크로라는 '사실'에서, 마이크로는 어떤 방향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말이 좀 어려운데, 쉽게 말하자면 내 삶은 어떠한 의미성이나 목적성을 띠고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체감하는 단위는 기본이 하루 단위, 길어봐야 주, 달, 연 단위에 불과하다. 전문직 등을 준비하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사람에게는 짧게는 2~3년, 길게는 4~5년까지의 시간단위를 체감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내게 체감되는 시간 단위는 길어야 1년이다.


길게는 몇 억년, 짧아도 몇 천만년 단위인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고있는 이 시간 단위가 얼마나 짧고 무력한지 느껴진다. 이는 자칫하면 사람을 허무주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 광대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 속에 한 개인에게 주어진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은 얼마나 짧고 덧없나?


더 중요한 것은 심지어 나의 존재가 어떤 의도된 진화의 방향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그저 우연의 연속인 결과물로 이라는 것인데, 그럼 나는 어떤 삶의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헤맸고, 나의 존재가치와 이유,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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