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소고
러셀이 말하는 행복해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열정'이다.
관심분야가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러셀은 삶에서 되도록 접할 기회가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갖기를 권하며, 보다 많은 대상에 관심을 가질수록 나의 행복도는 증가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러셀은 돼지고기로 소시지 만드는 기계의 비유를 드는데, 이 기계는 본연의 역할인 소시지를 만드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자신의 내부와 본질에 대해서만 연구하기 바빴다. 그러나 자신의 내부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내부는 공허하기만 하였고, 결국 본연의 소시지 만드는 기능이 정지한 기계는 이윽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결국 인생은 도화지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우리는 어떤 삶의 목적성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특정 계층의 어떤 인간은 그런 목적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장자는 부르봉가의 존속과 프랑스의 국가경영을 책임질 운명을 타고났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멸망했을 것이므로).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태어나는 개인은 그런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 또한 삶의 목적성/의미에 대해 수도없이 많은 고민을 거듭하였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낸 결론이라면, 그 방향성은 내가 직접 찾아서 그려야한다는 것
삶의 방향성을 그리기 위해서는 외부세계로부터 원료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러셀은 어디서 갑자기 원료가 뚝 주어진다고 하지 않는다. 원료를 우리가 스스로 구해서 넣어야 한다. 인생에서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때 이 사건들은 비로소 경험이 된다.
내면에 대한 탐구가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심이 내면으로 쏠려 있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에 값할 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 러셀은 나의 관심이 기본적으로 외부에 있고, 외부의 여러 사건들을 탐색하다 불현듯 나의 내부로 주의가 기울여질 때 인풋과 아웃풋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나의 삶의 방향성을 그려내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무언가 나만의 관심분야를 찾아내야하고, 이를 통해 내 열정을 불사를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을 향한 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셀은 이런 열정에도 제약을 둔다. 모든 취미와 욕망은 전체적인 인생의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열정의 불행의 원천이 되지 않도록 건강 및 능력, 소득를 적정히 유지하고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 또한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밤에 체스를 한다는 기대에 부푼 채로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하루 종일 체스를 두기 위해 직업까지 버린 사람은 중용의 미를 잃어버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