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소고
행복을 향한 러셀의 이야기, 오늘은 가정형성 및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러셀의 주장이다.
가족은 원래 근원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의 가족은 그러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보편적인 불만족을 빚어내는 가장 뿌리깊은 원인이 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먼저 러셀은 여성의 출산에 대해 언급한다. 출산의 욕구를 포기한 여성에게는 꽤 괜찮은 삶이 열려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남성들이 누리던 수준과 유사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출산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성은 출산을 하게 되면 휴직 또는 퇴사를 해야하고,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느라 몸을 가꾸지 못하고 가사노동에 혹사되거나, 가정부를 쓴다고 하더라도 게으름 피우는 가정부들에게 잔소리 하느라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러셀의 주장에 따르면 출산은 여성의 행복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지 못한다.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나도 비록 아빠지만 0세 자녀를 키우는 아빠로서 무척 공감이 된다. 육아휴직을 하며 느끼는 감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 1달 정도는 아침에 일찍 안 일어나도 되고, 회사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찌들어있지 않고 오후에 찬찬히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1달 갔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라이프스타일은 그때와 거의 유사하나, 적응의 동물인 인간습성상 이 라이프스타일에 적응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이 삶 자체가 나에게 크거나 색다른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그 전까지 회사에서 찌들어 살던 일상은 아직 채 3달이 되지 않았음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이젠 이렇게 느긋하게 여유롭게 사는 것이 당연해져 버렸다.
내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감정은 바로 내가 사회에서 '무쓸모한 사람'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여유로운 삶이 주는 안락함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내게 가치로써 작용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이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잉여인간 같은(?) 느낌이다. 회사다닐 때에는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나름 어려운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토의하고 인정받으면서 알게 모르게 자존감을 올린 사례도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후임자로부터 업무관련 질문전화가 와서 한 20분 동안 설명해줬는데, 아직도 그 내용을 다 기억하고 유창하게 설명하는 내 자신을 보며 자존감이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러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육아에 올인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하게될 수밖에 없는 여성은 남편과 자녀에게 따분하고 귀찮은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암묵적인 보상을 남편과 자녀에게 은연중에 요구하게 되나, 이는 당연히 묵시되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여성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행복감도 떨어지게 된다.(러셀은 여성의 예를 들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남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면 가족들은 이 여성을 사랑했을 것이다.
러셀이 가정의 불행으로 드는 다른 예시는 민주주의의 몰락이다.
현대에 들어 민주주의가 보편화되며 주인-노예관계가 몰락하였고, 과거에는 주인에게 불만이 없던 노예들조차 주인에게 불만을 갖게 되며, 주인 또한 노예의 눈치를 보고 일정 부분의 신경을 쓰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상하관계는 부모관계에도 적용되는데, 예전의 부모는 당당하게 권위를 행사하였고 그것이 부모로써의 권위를 인정받고 자녀를 양육하는 큰 기쁨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러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육아가 일종의 권력욕의 발현을 통해 부모의 행복감 충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갓난아이를 무력한 존재로 여기며 이기적으로 사랑을 기울여 보호한다. 그러나 러셀은 이를 결국 부모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위를 방어하는 본능이자 권력욕과 소유욕의 발현이라고 본다. 결국 과거에는 부모노릇이 권력욕과 소유욕을 충족시켜줬다면, 현대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자녀를 키우는데 들이는 힘만큼, 부모들이 받는 유인이 적다는 것이다.
러셀의 주장은 자녀가 부모의 권력욕과 소유욕의 대상이 되어야한다는 당위적 명제가 아니다. 과거의 부모들에게는 그러한 심리가 있었으나, 현대에는 그렇지 못하고 이는 일정 부분 인간 본연의 심리와 맞닿아있기 때문에 행복감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자녀를 키우는데서, 자녀가 커가는데서 오는 그 자체의 행복감은 어마무시하다. 러셀 또한 인간의 본성 측면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 통틀어 훌륭하고도 지속적인 행복이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굳이 총량을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은 찰나이자 순간이고 그 행복한 순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묵묵히 수행해야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고생과 노동은 진행형이다. 여기에 과거와 같이 부모들은 더 이상 자녀 위에 있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여기에 여성은 출산을 하면 경력단절과 자존감 하락의 위험요소까지 내포하게 된다. 러셀은 위와 같은 종합적인 상황이 출산률을 낮추는 요인이자 부모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라고 말한다.
출산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 노릇이 부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인드를 극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러셀은 자녀를 보는 시각,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을 달리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찰나를 살다 갈 뿐이다. 미래에 확고한 흔적을 남길만큼 위대하고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로 만족을 이룰 수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 출산이 유일한 방법이므로 출산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을 재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인생의 막을 내릴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최초의 세포부터 멀고 먼 미지의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한 흐름의 부분이다.
결국 출산을 고된 노동으로 보지 말고, 과거와 미래, 현재를 이어주는 삶의 흐름으로써 접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출산과 가정을 통한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고 러셀은 말하는 것이다.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러셀이 주장하는 행복론, 그리고 나의 견해에 대해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음 편에 행복론의 최종 마무리를 작성하고, 다른 주제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