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술얘기!!

자전거로 다녀온 산티아고 순롓길

by 노각제

여행의 시작

95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11월 발령을 받은 그때부터 2018년까지 쉼표 없이 달려 왔다. 2010년 사랑하는 우리 딸이 태어났고, 그때부터 또 몇 년 동안 여행은 꿈꾸지 못하는 나와는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러왔다. 그렇다고 아예 여행을 못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크면서 내가 다녔던 여행지를 가족과 함께 다시 여행하기 시작했다. 2012년 태국을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온 첫 여행을 잊을 수 없다. 내생에 최초의 패키지여행이었고 우리 딸을 데리고 국외로 나가는 첫 여행이기도 하였다.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딸을 데리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의 쇼핑센터에 끌려 다니는 일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 때라 도저히 자유여행은 꿈 꿀 수 없었다. 나름 밤 시간을 이용하여 파타야의 해변을 돌아다니고 목욕시켜서 잠든 아이를 보면서 호텔방 너머의 푸른 파도를 보며 행복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듬해 괌을 자유여행 하면서 자신심이 생겨 필리핀, 일본, 대만, 그리고 올해 1월 영국을 여행했다. 가족과의 여행은 행복하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가 내가 안내하는 곳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네팔의 산속이나 미안마의 파간의 불탑 숲, 인도의 커쥬라오의 사원을 누비고 다니던 젊은 날의 여행 본능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 막막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2012년부터 자전거여행을 시작했다. 아내의 허락을 얻어 금요일 저녁 퇴근과 동시에 자전거 페니어에 캠핑장비를 챙겨 가까운 여주나 충주로 자전거 캠핑을 다녔다. 나름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자전거 여행 동호회에 가입해서 본격적인 자전거 캠핑에 매진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정모(정기모임)에 참여해서 여러 선후배들과 즐거운 시간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전거여행의 노하우도 많이 쌓았다. 기초적인 자전거 정비부터 다양한 백캠핑 장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정보는 이 당시에 습득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동호회에서 정말 우연하게도 초등학교 동창 녀석을 만나게 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한해 선배가 맞지만 나이가 같아서 그냥 친구 먹기로 한. 이후 친구 녀석과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가끔 만나서 세상살이의 시름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작년 5월쯤 느닷없이 카톡 하나가 날라 왔다. “친구야 나 산티아고 순례길 간다.” “응 그래 조심해서 잘 다녀와”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 녀석이 그때처럼 부러운 적이 없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관심은 내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이다. 몇 년 전 서영은 작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을 일고 마음속의 버킷리스트로 등재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가 보내온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치는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애써 부러운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거의 한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모습은 많이 수척해진 것과 달리 정신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내뱉은 다음 말이 “내년에 또 갈 건데 같이 가자!” 였다. 하지만 난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난 방학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었고 또 방학의 전부를 송두리째 투자해도 완주할 수 있을지 모르는 800KM의 대장정이었다. 또 하나의 복병은 가족들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다양한 체험과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딸을 방학 내내 방치상태로 두고 떠나는 일이 더욱더 마음에 걸렸다. 그때 캠핑 좋아하는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비싼 캠핑 장비를 살 때 마다 돼내 인다는 말은 “허락은 어렵다. 하지만 용서는 쉽다!”라는 격언이라고 했다. 그래서 덜컥 허락해 버린다. '그래 가자!' 그리고 불연 듯 아내와 아이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그럭저럭 시간은 흘렀고, 올해 1월 영국을 여행하다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여보! 나 산티아고 가면 안 돼?” 아내의 대답은 짧았다. “안 돼!” 더 이상 말도 붙이지 못할 만큼

그리고 끈질기게 구애작전을 편다. 스톤핸지를 갔던 바람 많이 부는 초원에서 다시 한번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안 돼!” ‘아 안 되는 구나’ 포기하고 귀국해서 친구에게 사실을 말한다. “야 나 산티아고 못갈 것 같아!” 그리고 그날 밤 늦게 술이 잔뜩 취한 친구 녀석에게 카톡이 온다. “나도 너랑 유라시아 횡단 안가!” 사실 우린 내가 60살 되어 은퇴하고 같이 자전거로 유라시아 횡단 후 노르웨이까지 6개월의 대장정을 꿈꾸고 있었다. 다음날 내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녀석이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사실 난 종교가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불교에 가까웠다. 교회는 몇 년이 지나도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여행을 좋아해서 우리나라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사찰은 거의 다 가보았다. 반면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결혼의 조건으로 교회에 같이 다니는 것도 포함되어있었지만 마음약한 아내는 독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물론 신혼 초에는 종교문제로 다툼도 있었다. 그때마다 현란한 말솜씨를 발휘해서 아내의 권유를 일축해 버리곤 하였다. 그러다 3년 전부터 교회를 같이 다니게 되고 아내는 정말 기뻐했다. 하지만 난 쉽사리 소위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생길리 만무했다. 교회선후배와의 교재가 나의 교회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아내는 그것만도 감사해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 자꾸 듣고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씨앗이 떨어지고 그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 같다. 나에게도 아주 작은 믿음의 싹이 트기 시작할 무렵 교회의 사람들에게서 큰 실망을 느끼는 일이 생겼다. 나의 종교생활에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오고 난 아내에게 선언한다. 다시는 교회에 안간 다고 하지만 아내는 묵묵히 기다릴 뿐 더 이상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당신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와요”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내는 눈이 똥그래져서 쳐다보는 나를 보고 “산티아고 갔다 와요 그러면 당신도 뭔가를 느낄 것 같아서요” 이쯤되었을 때 하수들은 “그래 고마워! 자기야 사랑해!” 하겠지만 나 같은 고수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는다 한번쯤 튕겨주는 것이 확실하게 필요하다. “아냐 비용도 그렇고, 당신하고 예주는 어쩌고?”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난 방학 때 예주랑 도서관도 다니고 또 엄마한테도 다녀오면 돼요!” “그래?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해 당신 요리도 못하고” 사실 우리 집의 모든 요리는 내가 담당한다. 나의 지론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래서 결혼할 때 약속이 모든 요리는 내가 설거지는 아내의 담당이다. 그래서 그 것 또한 큰 문제였다. 아내의 요리솜씨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미숙하다. 김치찌개를 끓이면 물에 김치를 말아놓은 맛이 났고, 어묵 볶음을 하면 그냥 어묵 맛이 났다. 그래서 우리 딸은 뭘 먹고 싶을 땐 꼭 아빠를 찾는다. 여러 상황이 참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한 것이 가질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더 갖고 싶어진다. 다시한번 아내가 “그러지 말고 다녀와요 자기가 거길 갔다 오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보내주는 거예요.” 이쯤 되어서 더 튕기는 것은 산통 다 깨는 일이 된다. “그래 알았어 당신한테 미안한데 사실 나 꼭 가고 싶었어! 고마워!” 아내가 베시시 웃으며 “그러면서 튕기기는...” 그길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척하고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산티아고 간다. 비행기 표 예매해!” “그래? 알았어! 기분이다. 내가 편도 비행비 값은 내준다.” “고맙다!”

그리고 몇일 후 티켓 예매 메일이 온다. 바르샤바를 거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비행기 표이다.

우리가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말하는 길 CAMINO DE SANTIAGO 는 CAMINO(길) 이라는 말과 SAINT DIEGO(야고보)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즉 성 야고보의 길 정도가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장 정통적인 코스는 CAMINO FRANCES(프랑스까미노)이다. 프랑스 카미노는 NAVARA(나바라) 경로와 ARAGON(아라곤 경로 두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내가 선택한 경로는 가장 일반적인 생장 피에를 포트(St. Jane Pier port)에서 시작하는 아라곤 경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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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물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가 준비물을 챙기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산티아고 길의 경우 일반적인 여행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있다. 일반적인 여행에서는 빠진 것이 없이 꼼꼼하게 챙겨야 여행에서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산티아고 여행에서의 준비는 정 반대이다. 챙기는 것을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즉 안 챙길수록 행복한 길이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인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산티아고를 도보나 자전거를 순례할 경우 짐이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짐을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최소 30일 이상이 소유되는 도보여행은 어려울 것이고 나처럼 자전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여러 번에 나누어서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경우는 항공비의 부담이 적은 유럽인들은 가능한 일이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큰 고역이 짐이 많은 것이다. 자전거여행의 경우 필자의 생각에 딱 이것이면 된다. 【자전거(갖구 가거나 구입), 기본정비 툴, 휴대용 펌프, 펑크킷, 속옷 2장, 속건성 자전거 복 상의2, 하의 2, 잠잘 때 입을 옷, 비상약, 여권, 비사용 신용카드, 헬멧, 슬리퍼, 수건, 치약, 칫솔, 다용도 칼, 물병, 그리고 가장중요한 휴대폰과 유럽유심(15일기준 6기가 정도면 길찾고 검색하는 데 절대 무리가 없다. 그러나 게임이나 동영상을 본다면 나중에 와이파이존을 찾아 헤메는 하이에나가 된다)】 이렇게 챙기되 이 물품을 넣을 가방 페니어에 챙겨서 이동간 짐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휴대물품의 무게가 절대로 5kg 넘기면 가다가 힘이 많이 들거나 아니면 꼬레오스(스페인 우체국)를 통하여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집으로 보내거나. 다음 목적지로 짐을 보내주는 서비스(알베르게에서 함) 이용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이것을 모르고 결국 여벌의 옷과 필요없는 버너 코펠 등을 집으로 보내고 말았다.

자전거의 경우 아주 선택하기 난해한 부분이 있다. 집에서 내가 타던 자전거를 갖고 가면 가장 좋은데 항공휴대가 용이한 품목이 아니라 저가 항공의 경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 자전거를 구입 후 기부하는 방법을 택하여 보았으나 이 또한 용의 하지 않다 우선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작은 프랑스 남부 도시인 바이욘 에서 자전거를 구매하는 것은 매우 선택권이 적어지기 때문에 비용 면으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좀 더 검색해본 결과 우리나라 큰 여행사들에서 산티아고 상품을 내놓으면서 다양한 자전거(전기자전거 포함) 대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처럼 적당한 선의 자전거를 구매해서 타고 산티아고에 가서 자전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경찰서를 통해)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소요경비

모든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딱 2가지 가장 어려운 것이 시간과 돈일 것이다. 어차피 한정된 재화를 소유한 일반인들에게 생활비이외에 수백만 원의 돈을 지출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의 노하우를 총 동원해 보면 우선 항공권의 경우 여행이 결정되면 끊임없이 검색하고 될 수 있으면 일찍 구매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의 완주가 목표였기 때문에 바르샤바 경유 프랑스 파리 인 아웃으로 90만 원선에서 항공권을 구매하였다. 이럴 경우 산티아고에서 파리로 오는 교통편이나 항공권도 함께 구매해 두어야 편하다. 산티아고에서 파리의 경우 2시간 정도 소요되므로 대부분 스페인의 저가 항공인 부엘링이라는 항공을 이용한다. 비용의 13만원 정도였다. 항공권가격은 항공사 사장밖에 모른 다는 속설대로 항공권의 경우 어떤 시기에 어느 항공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다. 이 부분은 인터넷을 사용해 검색을 많이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음으로 자전거로 이동할 때 일비의 계산을 해보면 우선 교통비는 0원이다. 그리고 알베르게 평균 10유로(경우에 따라 5-15) 식비 아침 3, 점심 5, 저녁 10-15(맥주포함) 넉넉하게 30유로 지금환율로 4만원이면 하루 경비로 충분하다. 스페인의 또 다른 매력이 물가가 저렴한 것에 있다. 특히 커피와 맥주.... 아니 우리나라의 미친 물가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럼 총경비를 생각해보면 항공권 및 이동경비 130만원, 일비 60(15일 기준), 자전거 구매 대여(70만원) 기타경비 40만원 총 300만 원 정도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궁상맞지 않게 15일 기준으로 산티아고를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가장 못하는 것이 매일매일 경비를 쓰고 적는 일이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대충 썼다. 여행까지 가서 가계부 적듯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태클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에 의한 것이지 이것이 뭐 어떤 회계프로그램에 의해 산출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몸의 준비

산티아고순례의 경우 일반 패키지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걷든 자전거를 타든 몸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걷는 경우 하루에 20-25km를 30일 이상 걷는다는 것은 몸의 준비가 없이는 엄청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하루 60km 이상씩 13일 정도를 쉼 없이 자전거를 타기위해서는 정말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몸의 준비 없이 부닥쳐 봐도 되겠지만 엄청 고생할 것이 뻔하다. 필자의 경우 50을 넘긴 나이 이지만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수영이든 헬스를 해오고 있었는데 그래도 오르막이 계속되는 구간에서나 처음 시작해서 3일 정도는 엄청 궁둥이와 몸이 힘들었다. 특히 궁둥이의 경우 자전거 구입 시 자신에게 맞는 안장이 아닐 경우 엄청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장을 가져가는 방법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또한 음식을 대하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불평을 심하게 하려면 산티아고를 가지 말고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사진을 보고 즐기고 집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에어컨 아래에서 보내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일 수 있다. 혹자는 순례 길을 가면서 적당이 고통을 즐기면서 가야하지 뭐가 준비가 필요한가?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가보면 고통의 도가 지나쳐서 결국은 포기하거나 아니면 하루하루 정해진 거리를 채우기 바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국가대표처럼 몸을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직장인들에게 그 정도의 노력을 해서 가야하는 길이라면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자가 말하는 몸의 준비는 적어도 자신이 하루에 걷든 자전거를 타든 갈 거리에 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실제 가보면 꽤 많은 산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한다. 필자의 경우 술, 담배를 모두 하는 직장인이지만 하루 60km 정도의 자전거는 쉽게 탈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서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몇 년은 아니더라도 몇 달만이라도 자신이 탈거리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 요즘 자전거를 좋아하는 동호인의 수가 거의 천만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정도 거리는 쉽게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연습할 수 있다. 적어도 하루 60km정도를 타고도 탈진이 되거나 다음날 자전거를 또 타는데 고통이 없는 상태의 몸을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산티아고 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몸의 준비이다.

머리 혹은 마음의 준비

필자의 경우 기독교인이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다. 필자의 표현대로라면 술잘 마시고 담배 잘 피우는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정도의 신자 즉 쉽게 말해 날라리 신자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산티아고 길이 너무나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구교와 신교라는 차이는 있지만 같은 신을 믿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감동을 전하여 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타 종교는 산티아고 길에서 감동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 필자의 경우 기독교인 이지만 타지마할을 보고 받은 감동은 종교를 뛰어넘는 어떤 위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그것 이었다. 또한 미얀마의 파간에 갔을 때 수많은 불교사원을 보면서 받은 감동 또한 적지 않았다. 다시 말해 종교를 초월하여 어떤 마음속의 울림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닌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의 준비는 열린 마음이다. 아니면 내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탐구해 봄으로써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이 날라리 신자는 이야기하고 싶다.

또 잉여시간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필자가 소개한 대로 여행을 시행한다면 대체로 다음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시간은 라이딩 능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12시에서 14시 사이에 다음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짐 풀고 샤워하고 나오면 빠르면 오후 1시 늦어도 오후 3시경이 된다. 다시 말해 잉여시간이 상당히 길다. 필자의 경험상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진다. 아침일찍 일정을 시작하고 잉여시간이 긴만큼 그 시간에 대한 준비가 없다면 산티아고 길은 고통의 길이 되어버리기 쉽다. 물론 일행이 있어 같이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대부분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검색 정도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잠간의 낮잠은 권장 할 만하지만 낮잠을 지나치게 많이 자게 되면 밤잠을 설치게 되거 그러다 보면 다음일정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낮잠은 1시간 정도 자면 충분하다. 그리고 도착하는 마을의 성당정도를 둘러보는 것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니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잉여시간은 꼭 있게 마련이다. 이 시간을 이용해 여행기를 적거나 아니면 책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휴식이 되곤 하였다. 필자의 경우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최인훈 선생님의 작고하시어 그분의 가장 명저인 광장이라는 책을 가져가서 다시 읽기를 하였다. 젊은 날 읽었던 책이지만 산티아고의 길 위에서 읽는 광장은 정말 큰 감동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일정의 반 정도를 지날 쯤 다 읽고 여행 중 만난 한국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젊은시절 광장을 읽으면서 이명준의 고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선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집에 한권 더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권의 책을 더 가지고 갔는데 조루주 페렉이라는 프랑스 작가의 사물들 이라는 소설이다. 이 책은 필자에게 언제나 무거운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도무지 읽어도 뭔 소리인지 잘 모르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의 좋은 점은 바로 수면제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결코 열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고 만다. 농담 같지만 필자는 언제나 여행갈 때는 평소에 이해가 잘 되지 않던 책을 챙겨서 가서 읽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책이 무겁기는 하지만 잉여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인건 사실이다. 적당히 두꺼운 책 한권쯤은 마음의 준비물로 꼭 필요한 것 같다.

필자의 경우 또 시간을 적당하게 보내면서 여행 경비도 아끼고 몸도 준비할 수 있는 취미가 요리 이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부엌이 있다. 워낙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모이는 곳이라 종교적 또는 관습적으로 음식을 가려서 먹거나 가난한 페레그리노(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된다. 그리고 스페인의 모든 마을에는 작던 크던 대부분 슈퍼마켓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 재료가 너무 싸다는 것이다. 특히 육류와 채소는 정말 싸고 맛도 좋다. 필자는 친구와 동행했던 여행지외에 혼자서 여행했을 때 부엌이 있는 알베르게 에서는 여지 없이 요리를 해서 먹었다. 우선 필자가 밥돌이라 이틀정도 현지식을 먹으면 밥이 먹고 싶어서 못견딜 지경인데 스페인은 쌀값 또한 엄청 싸다. 1kg정도의 쌀 한봉지가 보통 1-2€ 정도여서 먹고 남은 쌀은 다음 순례자를 위해 놓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여러봉지의 쌀을 놓고 오고 또 여러 봉지의 남을 쌀로 밥을 해서 먹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펼쳐질 실제 여행기에서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요리를 정당하게 하는 기술을 익히고, 가는 것은 잉여시간의 활용과 건강 또 금전적으로도 매우 도움이 되는 일이다.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요리 레시피는 천천히 살펴보겠다.


기나긴 여정의 시작

출발 2018.7.26. am6

필자의 집은 서울에서 40km정도 떨어진 경기도 이천의 시골이다. 이곳에서 인천공항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는 쉽지 않다. 우선 차를 갖고 시내로 나가서 공항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지만 근 한 달간을 차를 방치해 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아내에게 픽업을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아내에게 그런 부담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려하였지만 아주 다행스럽게 동네에 사는 프린랜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후배가 기꺼이 공항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나섰다. 미안하기는 하였지만 정말 기뻤다. 사실 아주 좋았다. 여러 번 전철을 갈아타기에는 자전거 패니어 2개를 들고 이동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10:30 이니까 우리나라의 공항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7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여유 있게 탑승할 수 있다는 것에 동감할 것이다. 집사람과 딸에게는 전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깨우지 않고 출발하겠다고 말했지만 잠자고 있을 아내가 아니다. 아내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서 커피 2잔을 만들어주며 애써 웃음 지으며 배웅해 주었다. 전날 편지를 써서 집사람에게 보여줘서 눈물바다가 되었던 터라 나도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실재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의이든 타의이든 집을 비우는 것은 처음이다. 목요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가했다. 집을 출발한지 1시간여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보딩패스를 받으려고 기다렸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된 순간 항공사 여직원의 짧은 한마디가 나를 좌절시켰다. 내짐은 자전거 가방 패니어 한 쌍인데 여직원은 “저희 항공은 원팩(짐하나)입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짐 속에 넣어 두었던 포장용 테이프 생각이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 테이프로 두 개의 패니어를 칭칭감아 여직원에게 보여줬다. 여직원의 어의 없어 하는 얼굴을 보기가 조금 미안했지만 원팩이 틀림없이 맞았다. 하지만 질세라 한마디 더 던졌다. “혹시 풀어져서 분실되어도 저희 책임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무사히 짐을 부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이제 정말 가장 싫어하는 비행의 시작이다. 젊은 날은 이코노미석 여행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이제 3-4시간을 넘어가는 비행기 탑승시간은 정말 너무 힘들고 지쳤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준비해간 광장을 읽으며 오래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며 11시간의 비행 끝에 바르샤바에 도착하였고, 환승을 위하여 다시 보안검색과 입국허가를 받았다. 유럽은 이제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어 최초 입국국가에서 입국허가를 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3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짐 나오기를 기다린 끝에 우리나라 포장 테이프의 튼튼함을 칭찬하며 무사히 짐을 찾고 몽파르나스 역 앞 예약한 호텔로 가는 교통편을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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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후 2주 정도 지났지만 파리 곳곳은 아직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 했고 여름휴가 성수기를 맞이해서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린다는 카더라 통신을 들은 터라 수없이 여행을 많이 한 나였지만 약간 긴장이 되었다. 결국 가장 싼 교통편인 지하철을 포기하고 공항리무진을 이용하여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하였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몽파르나스 역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고 그날 기온은 섭씨 36도를 넘고 있었다. 무사히 역에 도착 후 역 앞의 예약한 호텔에 확인하고 결재하고 방으로 들어선 순간 기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나 역 앞의 식당과 호텔은 다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은방 2개로 구성된 호텔은 에어컨도 없이 스텐드 형 선풍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짜투리 공간을 이용해 급조 한 화장실 겸 욕실도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여행을 시작하려는 설렘을 안고 샤워 후 짐을 풀고 호텔 앞 중국식당에서 볶음밥과 맥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잠을 청하였다. 덥고, 시끄럽고, 낯설고, 시차까지 최악의 잠자리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고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어느 정치인의 표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이 새삼 명언처럼 느껴졌다. 길고 긴 밤이 지나고 아내와 보이스톡을 통해 첫 통화를 했다. 내가 떠난 후 우리 딸은 아빠 없이 맞이하는 첫 방학이 서글퍼서 엉엉 울었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꼭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사히 잘 마무리해서 딸아이와 집사람의 희생이 보람이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호텔조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출발 기차를 타기위해 몽파르나스 역으로 짐을 들고 향했다. 파리의 금요일 아침은 분주했고 사람들로 넘쳐났다. 미리 예약을 해둔 덕에 플랫폼위치를 찾고 탑승하려는데 아무리 티켓의 바코드를 인식기에 대도 문이 열리지를 안는다. 이상하다 날짜 시간을 다 다시 확인하고 역무원에 물어봐도 고개만 갸웃 거릴 뿐...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순간 대한민국 국민의 부지런함이 문제였다. 개찰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열리지 않는다고 불어로 설명하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그래서 다시금 몽파르나스 역을 둘러보았다. 오랜 역사로 다양한 프랑스 문학에 등장했던 역이라 흥미로웠지만 새로 많은 부분이 고쳐져 있어서 옛 정취는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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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간이 되어 티켓의 바코드를 인식기에 대자 짠하고 열렸고 무사히 TGV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여행하면서 신칸센과 이체는 타보았지만 TGV는 첫 탑승이라 흥미로웠다. 프랑스답게 세련된 디자인과 간결하면서도 꼭 필요한 편의 시설로 된 객실이 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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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창밖의 남부프랑스의 멋진 풍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부터 바이욘까지 4시간여를 달려가는 동안 불과 3역정도 정차한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차창으로 바라보는 경치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와 다른 풍광과 집들 그리고 농작물의 종류까지 참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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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시간을 달려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인 바이욘에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누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내가 도착한 7월 28일은 바이욘의 축제날 이었고 수많은 사람들로 역부터 역 앞 광장까지 북적대고 있었다. 1년에 한번 프랑스 남부의 바스크 축제로 5일동안 지속되며 오스트리아 스페인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캠핑카와 기차를 이용해 이곳으로 모이는 축제이다. 바스크 전통의상인 흰색 옷과 붉은색 스카프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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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바이욘 축제를 즐길 시간은 없었다. 빨리 자전거를 구매해서 생장으로 이동해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아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기차역을 빠져나와 3KM정도를 걸어서 자전거 매장을 향해 갔다. 구글검색으로 찾은 자전거 매장의 첫 번째 매장은 휴무였다. 난 배낭이 아닌 페니어메고 걸어야해서 30도가 넘는 날씨에 15KG 페니어를 양쪽에 메고 걷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2번째 매장에 도착했고 그곳도 점심시간이라 2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매장 앞 공터에 짐을 놓고 널브러져 있을 즈음 메장 주인이 점심운동을 하는지 땀에 흠뻑 젖어서 달려왔고 내가 반색하며 들어서려 했을 때 주인은 손을 가로로 저으며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오후 1시 40분쯤이 되어서야 매장 안으로 들어선 나는 적당한 가격의 자전거를 찾느라 분주했다. 프랑스 시골마을의 자전거 매장은 한정적인 모델밖에 없었고 가격은 비쌌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적당한 가격 644€ 짜리 GT로 데오레 변속기로 27단짜리 알루미늄 자전거를 선택했다. 국내가격으로는 5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모델이었지만 10% 활인 조건으로 자전거를 구매했고, 페니어를 걸 수 있는 렉을 설치해주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렉과 헬멧은 국내에서 가져가서 따로 돈을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스페어 튜브와 물통 걸이와 물통등도 구매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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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페니어를 달고 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장을 찾아 짐을 메고 갈 때와는 완연하게 달랐다. 너무 좋았다. 이대로 그냥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라도 갈 기새였다. 그러나 그게 참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가 있다. 원래는 바이욘에서 TGV를 내려 협궤 열차로 갈아타고 생장까지 가려했으나 파업으로 인하여 대체버스를 예약했고 그 버스를 이용해서 2시간여를 남부 마을 곳곳을 들려 생장으로 가야했다. 하지만 버스는 3시와 6시에 있었고 3시차를 놓친 나는 다시 6시차를 급하게 예약하고 점심을 먹으러 피자가게로 향했다.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내게 프랑스에서의 식사는 참으로 고역스럽기 짝이 없다. 우선 메뉴를 보고 선택하기도 어렵고 또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피자집은 아랍계 가게였는데 들어설 때부터 냄새가 영 맘에 들지 않더니 그렇게 맛없는 피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었다. 배만 간신히 채우고 속이 니글거려 맥주를 마시러 뒷골목을 배회하다. 자전거로 이곳저곳의 바이욘을 구경하는 덤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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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작은 카페에서 맥주 2잔을 연거푸 마시고 속을 진정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 속에서 잠시 깜빡했던 것 같다. 그리고 6시 드디어 역앞 광장에서 버스에 자전거와 짐을 싣고 생장을 향해 출발하였다. 거의 2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프랑스 남부 국경마을 생장은 작은 마을임에도 어떤 술렁임으로 가득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출발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아도 뭔가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느낌이 있었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자전거와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순례자 여권을 만들어야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DP에서 묵을 수 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완주 증명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일까지 완료해야만 다음 날부터 순례길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사무실에 도착하자 쉬는 시간이었다.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곳곳에는 이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임을 직감할 수 있는 수많은 조형물과 사설 알베르게를 광고하는 조형물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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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 번째 사무실 방문은 실패 쉬는 시간이었다. 사무실 문에는 업무시간을 잘 안내해 주는 시간표가 붙여져 있었다. 그래서 일정을 선회해서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시간에 맞춰 갔다. 사무실 안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가리비 껍질을 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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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를 기다려서 내 차례가 되어서 국적 및 동기 등에 대해서 간단하게 영어로 설명하고 자원봉사자와 대화를 나누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았다. 드디어 순례자의 길을 떠나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순간이다.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물인 가리비 껍질을 사서 페니어에 정성스럽게 달았다. 이 가리비 껍질을 보고도 국도를 여행할 때 차들이 많이 양보해 주곤 했다. 설렘을 가득 안은채 그날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자! 야고보의 길을 따라 떠나보자

1일 생 쟝 피에르 포트(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25km


피곤해서 잠들었지만 빗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나 보니 시간은 아침 6시 정도였다. 오늘 첫 여정을 시작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많이 아! 순탄치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게의 조식은 간단하다 토스트와 커피, 쥬스, 우유, 그리고 햄 정도이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물병가득 물을 채웠다. 참 여행 내내 수돗물을 마셨지만 배탈이 나거나 하지 않았다. 필자가 다닌 대부분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들이었기 때문인지 물맛도 아주 좋았다. 한국에서 너무 더웠을 때 떠나서였을까 선선한 바람과 보슬비 정도가 나쁘지는 않았다. 작은 마을인 생장을 벗어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네 갈림길에 다달았다. 생쟝에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 이르는 길은 두갈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puerto de Ciza 길이고, 다른 한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발까로스(Valcarlos)로 이어지는 길이다. 쉽게 설명하면 첫 번째길은 돌과 바람 거의 등산로에 가까운 길로 피레네를 넘는 것이과 두 번째 길은 미시령같은 길로 피레네를 넘는 길이다. 순간 발까로스 길의 유혹이 있었으나 제대로 함 해보자는 오기와 함께 결국 puerto de Ciza 길을 선택했고 피레네를 오르는 내내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만 했을 뿐 결국 목적지에 다다라서는 너무 뿌듯했다. 극심한 궁둥이 통증과 허벅지의 알을 동반한 채로 말이다. puerto de Ciza 길은 처음부터 벽같은 오르막으로 시작된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채 200m 가지 못하고 끌바(내려서 자전거를 끄는 라이딩 법)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고개를 넘어서도 계속 고개의 연속이고 업 힐의 연속이다. 지금 기억해 보면 1100m정도의 오리손(Orisson) 알베르게까지 평지는 100m 정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오리손알베르게는 시설도 열악하고 음식 맛도 별로지만 위치적으로 오후에 출발한 사람들이나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연세 드신 분들이 주로 묵어가는 곳이라 예약하지 않으면 거의 자리가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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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줄기차게도 내려 온몸은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자전거를 타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정말 발까로스(Valcarlos)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되돌릴 수 없어 꾸역꾸역 페달을 돌리고 또 돌렸다. 그러는 가운데 거리는 조금씩 줄어갔고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 마다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얼핏 들은 바로는 좋은 여행하세요 혹은 좋은길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고 들었다. 이 이후로 나도 어느 곳에서나 순례자들과 마주치면 부엔 까미노!(Buen Camino)하고 인사를 건넸다. 첫날 만난 순례자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집이 스페인의 팜플로냐인 사람부터 저 멀리 남미에서 온 순례자들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첫날 길 위에서 한국인 순례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많은 외국인 순례자들과 간단한 영어를 통해서 걸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비는 줄기차게 내렸고 1400m가 넘는 산꼭대기의 기온은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과 비에 젖어있어 추위는 한결 더 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산티아고는 누가 대신 가줄 수도 또 대신 고통을 나눌 수도 없는 순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 같이 간 사람이 끝까지 같이 갈 수도 또 따로 갈 수도 있는 길이다. 동행 한다고 좋고 혼자간다고 외롭기만 한 그런 길은 아니다. 추위와 고통을 참고 참으며 끌바와 페달링을 번갈아 하는 동안 어느덧 산정상에 가까워 졌다. 그러나 정상으로 갈수록 안개와 바람으로 경치는 더욱 가까운 것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여름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저체온증으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산티아고 길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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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하루 종일 올랐던 길을 불과 30여분만에 다운힐로 신나게 내려와 다다른 곳 모든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거쳐가는 곳 론세스바에스에 도착하였다. 산정과 아래쪽의 날씨는 완연하게 달랐다. 내리쬐는 햇빛이 감사할 뿐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은 후 젖은 옷가지와 장비들을 말렸다. 하루종일 땀과 비에 젖은 옷은 건조하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아래 뽀송하게 말라가고 그동안의 고통스러웠던 일정도 아련하게 느껴질 때 쯤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스페인의 맥주는 정말 최고다. 리오아 지역의 와인과 함께 세계 맥주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맛있는 맥주인 산 미구엘(San-Miguel)를 비롯하여 에스테야 등 굴지의 맥주 회사들이 있고 맥주맛은 정말 일품이다. 스페인어로 생맥주인 까냐를 물처럼 마시고 돌아다녔다. 일단 바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외쳤던 말이 “까냐 그란데!” 였다. 가격도 너무 착하다 보통 한잔은 1-1.2€ 그란데 2.5-3€ 정도였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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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알베르게는 저녁식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론세스바에스 알베르게는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면 제공해 주었다. 여행 첫날이고 또 지역적으로 많은 상권이 형성되어있지 않은 것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알베르게는 오래된 성당의 수도원을 개조한 듯 고풍스런 건물에 현대식 화장실과 샤워장이 갖추어진 안락하고 깨끗했다.

저녁은 스프와 샐러드 닭요리와 파스타 중 하나씩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난 콩스프와 닭요리를 맛나게 먹었다. 물론 까냐와 함께... 그리고 샤워하고 나서 여행기를 정리하려 누었서 메모공책을 꺼냈으나 눈떠보니 다음 날 새벽이었다.


2일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팜플로냐(Pamplona)-42km


순례자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보통 도보 순례자의 경우 5시 기상 5시 30분 출발 자전거 순례자는 조금 여우가 있다. 어두우면 걷기는 가능하지만 자전거의 경우 위험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 6시에서 6시 30분 출발이다. 그리고 알베르게에서도 이런 순례자들의 일정을 고려해서 조식을 6시쯤 준비해 준다. 순례자의 아침은 간단하다. 토스트와 커피나 우유 쥬스 중 하나 정도를 간단하게 먹고 출발한다. 처음 며칠간은 꼭 아침을 먹고 출발했지만 일정이 거듭되면 될수록 아침은 먹지 않고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양치하고 일정을 시작한 후 처음 만나는 카페나 바에서 카페콘레체(카페라떼)와 간단한 빵이나 과일로 아침을 대신한다. 나중에는 이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속도 편해서 계속 이렇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러나 자유여행의 묘미는 내가 하고 싶은 날은 그냥 아침 먹고 천천히 출발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난 단체 페키지 여행을 못가나 보다. 전날 피레네를 넘은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다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여간 고된일이 아니었다. 궁둥이도 아팠고 또 허벅지며 몸 곳곳이 알이베겨 있어서 고통스러웠지만 둘째 날부터는 스페인 작은 시골마을과 스페인의 리오아 지방의 아름다운 경치가 보상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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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세스바예스에서 시작되는 길은 내리막을 시작되었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기분좋게 출발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한국의 무더운 온도를 생각하면 스페인 전체가 거대한 에어컨을 돌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보통 800-900m정도의 언덕은 거의 대부분의 코스에서 만났던 것 같다. 그러나 수비리(Zubir)까지 가는 중간에도 에로(Ero)라는 언덕을 넘었다. 보통 도보여행자들이 숙박하는 수비리는 작은 마을이지만 슈퍼가 있어서 간식을 사서 먹었다. 스페인에서 첫 경험한 슈퍼는 정말 놀라웠다. 우선 가격이 너무 쌌기 때문이다. 생필품가격은 체감가격으로 우리나라의 70%이하로 느껴졌고 농수축산물의 경우 더 싸게 느껴졌다. 또한 과일의 맛이 일품이었다. 내리쬐는 작열하는 태양이 과일의 당도를 높여줬고, 비옥한 토지는 과일을 살찌우기 때문 인 것 같았다. 아무튼 여행자에게 과일이 맛이고 싸다는 것만큼이나 큰 행운이 있을까? 물론 과일을 좋아하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다른 계절은 잘 모르겠지만 필자가 여행한 한 여름에는 스페인의 납작 복숭아 맛이 일품이었다. 언젠가 우리나라 광고 카피에 유행했던 딱 그 말이 떠오른다. “못생겨도 맛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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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리부터는 나름 편안하게 달려 일정 중 짧은 구간에 속하는 팜플로냐(Pamplona)에 도착하였다. 우선 배가 너무 고팠다. 아침에 빵 한조각과 커피로 속을 달래고 복숭아와 물이 먹은 것이 전부인 터라 배부터 채워야 했다. 그래서 급하게 검색해서 찾은 식당인데 참 착한 가격과 맛도 좋았다. 에피타이저는 파에야와 스파게티 중 선택이며 메인디시는 생선과 스테이크 중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셔벗 중 택하는 코스인데 가격이 너무 착했다. 불과 17유로 그것도 와인 한잔까지는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와인은 하우스 와인이었지만 맛은 끝내줬다. 사실 필자는 술을 즐겨먹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와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일본 만화 중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 물방울 정도에 나오는 와인 몇 가지 정도 맛 본 수준이다. 하지만 확실한 한 지 단 와인은 싫어하고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 데 다행히 스페인의 리오아 와인은 대부분 드라이한 즉 약간 떫고 시큼한 우리 아버님 세대쯤에서 말하는 시금털털한 맛이었다. 모든 코스요리에는 와인 한잔은 포함되어있다. 물론 두 번째 잔부터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필자는 꼭 추가 요금을 냈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잠자리를 잡을 차례다. 필자가 산티아고 여행을 하면서 이용한 앱이 있다. 필자의 휴대폰이 안드로이드가 아닌 *플 이기 때문에 SimplyCamino 라는 앱을 사용하였는데 보통 앱에서 알베르게를 치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알베르게가 가장 인기가 있고 먼저 마감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연관단어로 bedbug를 떠올리는데 필자는 한 번도 빈대에 물리지 않았다. 엄청나게 숙소를 찾고 고민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가격과 보편적인 숙소에는 없다. 필자는 사용하는 앱에서 인기 순으로 알베르게를 찾아들어갔고 잘 씻고 잤다. 그리고 추울때는 숙소에서 주는 담요를 덥기도 했지만 한 번도 빈대에 물리지 않았다. 그건 내가 친구들에게 잘 빈대를 붙어서 같은 동족이라고 느껴서 안 물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숙소라 좀 헤메긴 했지만 구글맵이 있는한 두럽지 않았다. 여기서 한가지 꼭 말해주고 싶은 것은 휴대폰 밧데리를 100% 충전해도 구글맵을 사용하게 되면 굉장히 밧데리 소모가 많아서 보조밧데리를 꼭 필수로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큰 보조밧데리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므로 3000mA 정도의 용량이면 자전거 여행자는 충분하다. 아무튼 팜플로냐의 숙소는 Abergue Peregrinos 였다. 가격은 9유로 딱 알베르게였다. 엄청 큰 수도원 옛 건물을 조금 손봐서 알베르게로 꾸민 곳으로 중정이 있고 중정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 빨래를 말리고 독서하고 쉬는 곳으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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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전거로 42km를 이동하는 건 조금 짧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산티아고길의 매력은 자신이 보고 싶은 도시를 선택해서 묵고 쉬어갈 수 있다는데 있다. 팜플로냐는 스페인의 대표저긴 축제인 산페르민 축제가 열리는 도시이기도 하고 향후 일정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전날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후 체력을 보충하는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산페르민 축제는 9일동안 이어진느 축제로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 춤, 공연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드는 ‘엔시에로(Encierro)’라고 하는 소몰이와 투우경기가 유명하다. 비록 축제기간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방송을 통해서 축제를 보고 꼭 가보고 싶은 도시중에 하나로 점찍은 탓에 이곳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숙소에서 침대를 배정 받고 샤워 후 항상 낮잠을 잤던 것 같다. 물론 시차에도 영향은 있었지만 시차보다는 아침 일찍부터 자전거위에서 시달린 몸을 달레는 데는 낮잠만한 것도 없다. 필자의 경우 한 시간 정도 낮잠 후 세탁과 독서 도시 둘러보기에 나섰다. 팜플로냐 구시가지는 참 아름다웠다. 그냥 카메라를 들이대면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낮은 잔인할 만큼 뜨겁다. 그것또한 낮잠의 이유이기도 하다.

점심을 거나하게 먹은 관계로 그날 저녁은 컵라면으로 가볍게 떼우고 숙소앞 바에나가 까냐와 고로께 비슷한 음식을 먹었다. 어스름 저녁 바람 부는 골목길 바의 거리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스페인 사람들의 휴일 오후 일상을 바라보는 기분 또한 좋았다. 이것이 참 여해의 맛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스페인의 숙소중 가장 더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가장 더운 여름날이기도 했고, 또 2충의 2충침대 위쪽베드라 정말 더워서 많이 뒤척였던 기억이 난다. 여행의 팁을 하나 더 드린다면 여행 중에 잠을 자야하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필자는 그냥 안잔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들어 있곤 했다.


3일 팜플로냐(Pamplona)에서 에스테야(Estella)-45km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처럼 알베르게 안은 부산했다. 순례자들은 각자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도보여행자의 경우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발의 관리이다. 신발은 가장 편한 신발을 착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집이 생겼을 경우 발의 관리를 잘 못하면 염증으로 순례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보여행자의 경우 매일 아침 베이비 파우더를 발에 뿌리고 정성스럽게 신발 끈을 묶는다. 자전거 순례자의 경우 모든 짐을 페니어에 넣고 자전거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구동계 제동장치등 주요 부위에 고장여부 및 타이어의 상태등을 확인하고 나면 출발 준비완료다. 그리고 구글앱과 함께 출발 구글앱을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양한 정보와 위치 그리고 목적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 주지만 설정이 자전거로 되어있으면 10m라도 자전거가 지나가면 안 되는 길은 여지없이 돌게 하게 때문에 융통성과 방향감각은 필수이다. 팜플로냐는 산티아고 길 중 그래도 큰 도시에 속하기 때문에 도시를 빠져나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스페인의 도시들은 대부분 외적의 방어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분지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시를 빠져나갈 때 즉 아침 출발에는 여지없이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필자의 경우 오히려 굳은 다리를 풀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즐겁게 올랐다. 필자가 비교적 짧은 42km만 가고 팜플로냐에 숙속를 정한 이유중의 하나가 아니 2가지 이유가 오늘 일정에 포함 되어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팜플로냐 외각에서 만나는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이다. 팜플로냐 외각의 언덕으로 기념비에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을 지나”라고 적혀있는 비포장 언덕이다. 언덕 정상에는 철로된 순례자 조형물이 있어 색다른 느낌이 있다. 그리고 언덕을 오르는 길 중간중간 커다란 초지와 해바라기 받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곳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나타날 무수한 해바라기 밭을 알고 있다면 별것이 아니었을 텐데 그리고 이 언덕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The way”이다. 아무튼 유난히도 황사가 극심했던 올해 먼지 없는 푸른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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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이라고 해도 700m가 넘는 거의 등산수준의 길을 자전거로 그것도 짐을 싣고 오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의 휴식 끝에 그래도 끝까지 타고 올랐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를 진짜 용서한 적이 있는가?’ 대답은 아니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어야 하는데 나의 용서에는 늘 조건이 붙었다. 그 사람이 먼저 사과하면 이던가 아니면 용서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더하거나 해가 덜 할 경우에만 용서했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나도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나려했다. 사람은 참 다양한 곳에서 배운다. 그저 ‘용서의 언덕’이라는 명칭만으로도 내 삶 속에서 용서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배움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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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또한 재미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도 모두 용서라는 같은 의미를 각기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한국에 있는 우리 딸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우리 딸은 몇 년 전 성조숙증 초기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6개월마다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난 마음속깊이 기도했다. 딸을 낳고 키우면서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용서의 언덕은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워낙 걱정을 한 까닭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힘이 덜 들 정도로 체력이 괜찮았다. 그런데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내리막이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돌들이 쫙 깔린 길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이 길을 얼마나 힘을 주면서 조심해서 내려왔던지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그길 끝에 만나는 작은 마을 우테르가(Uterga)이다. 이곳에서 점심으로 파스타와 카냐를 4잔이나 마셨다. 이것이 실수였다. 점심먹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기도 했고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것도 있었다. 태양은 머리위에서 비추기 시작했고, 아차 싶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비포장 산길을 자전거로 오른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만난 동화처럼 아름다운 마을 푸엔타 라 레이나(Puenta la Reina)이다. 정말 입이 쓰고 숨은 턱에 차고 있었지만 마을의 전경과 너무 아름다운 오래된 아치형의 다리! 저절로 감탄이 나올만한 경치였다. 이곳에서 난 또 못 참고 맥주한잔과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낸다. 목마르던 차에 마시는 맥주 맛은 끝내 줬고, 마지막 입가심으로 마신 에스프레소 커피한잔도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휴식과 내 나머지 체력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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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연거푸 마신 결과 흙먼지에 입이 마르기 시작했고 입은 소태를 먹은 것처럼 썼다. 그리고 자전거 물병속의 물은 뜨거운 태양에 데워져 도무지 고무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슈퍼는커녕 작은 구멍가게도 찾을 수 없는 길을 2시간 넘게 달려서 드디어 산티아고 길 위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에스테야(Estella)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바에 문을 열어봤지만 잠겨있었다. 안에 주인은 있었지만 웃통을 모두 벗고 손짓으로 지금이 시에스타 시간임을 알렸다. 결국 흙이 으석거리는 입으로 동네를 몇바퀴 돌고 나서야 겨우 문을 연 바에서 콜라를 연거푸 2캔을 사서 모두 마시고 갈증을 달랬다. 몸도 피곤하고 오후 내내 힘들게 라이딩을 한 나는 잠자리를 좀 더 편한 호스텔을 찾았다. 오늘 오후의 피곤함 정도라면 도저히 알베르게에서는 숙면을 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숙소를 정하고 샤워를 하고 나자 나도 모르게 2시간 정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눈떠보니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밥이 먹고 싶었다. 한국을 떠난지 5일 정도 지났지만 한번도 밥을 먹지 못한 탓일 것이다. 결국 호스텔주인에게 마트를 물었고 가서 돼지고기 300g 쌀 양파 물과 마늘 과일 등을 샀다. 그래도 결코 10유로를 넘기지 않았다. 참 부러운 물가였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중 우연히 엔틱샵 안을 쳐다 보다 눈이 휘둥그레 졌다. 필자의 취미가 자전거와 여행 캠핑 말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오래된 석유랜턴을 모으고 고치고 불보는 취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필자의 집에는 오래된 석유랜턴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가 그토록 갖고 싶고 찾던 랜턴을 만난다. 혹자의 말에 의하면 가우디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고 말하는 랜턴이다. 스페인산 랜턴으로 이베이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나와도 보통 700유로 정도에 거래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는 정말 랜턴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랜턴인 Focus 랜턴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도 실재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2명 정도 밖에 보지 못한 랜턴이다. 귀신에 이끌려 들어가듯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오래된 물건에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가 가득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짐짓 별관심 없다는 듯이 랜턴을 들고 보니 상태가 너무 좋고, 연료통 안에는 아직 연료가 남아있었다. 이것은 최후까지 불을 본 실사용이 가능한 랜턴이란 소리가 아닌가? 기쁨을 억누르며 가격표를 보니 75유로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연료를 좀 빼달라고 말하자 프라이어로 연료 마개를 잡고 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소리치듯 하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다 연료마게가 망가질 것 같았다. Focus 랜턴의 연료 마게는 줄로 조각하듯 깍아서 만들어 놓은 나비모양이 달려있는데 그걸 집게로 잡아 돌리려고 하셨다. 얼른 말리고 윤활유를 뿌려 찌든 때를 녹여서 마개를 열고 그 안에 연료를 비웠다.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손짓 몸짓으로 디스카운를 설명했더니 종이에 무심히 60유로를 적어서 보여줬다. 올 커니 싶어 얼른 지불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랜턴을 이리보고 저리 들여다봤다. 틀림없는 내가 그렇게 갖고 싶던 Focus 랜턴이 맞는게 아닌가? 아 정말 너무 좋았다. 지금 그 랜턴이 우리집 장식장에 깨끗하게 세수하고 턱하니 앉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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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을 싸늘하게 식혀 준건 무게의 부피의 압박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다니는 짐의 무게도 버거운 상태에서 황동덩어리인 랜턴은 정말 무겁고 또 프레임이 상할까봐 겹겹이 싼 부피 또한 커다란 압박이다. 고민하던 차에 배가 고파왔다. 고민은 미루어두고 민생고부터 해결하러 주방에 내려갔다. 우선 쌀을 불려 놓고 돼지고기를 양념했다. 한국부터 챙겨간 귀한 고추장과 양파 마늘 그리고 약간의 간장으로 고추장 불고기 양념을 했다. 그리고 건조 김치를 이용해 김칫국을 끓였다. 필자의 경우 집에서도 모든 음식은 필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리고 정성껏 밥을 뜸들이고 고슬고슬한 냄비 밥을 지었다. 음식냄새 때문에 그 호스텔에 묵은 사람들이 주방으로 모여들었다. 한국음식의 위대함을 맛보여 주려고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고기는 거의 혼자 먹었다. 그리고 시큼한 김칫국과 고슬고슬 한 밥 한공기 이것만으로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배불리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일사천리로 끝내고 다시 내 침대로 돌아와 랜턴 수납을 위해 짐정리를 다시 했다. 간신히 랜턴을 페니어에 넣었고 결국 짐은 더욱 빵빵해 졌다. 그래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위에서 오늘 일정을 짧지만 이렇게 잡은 이유 두 가지 중 마지막 하나는 바로 이 에스테야(Estella)라는 도시이다. 도시 이름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유명한 맥주의 이름이 바로 에스테야(Estella)이다. 유럽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셔본 맥주일 것이다. 부드럽고 그윽한 향기가 그만인 맥주 그 맥주의 본 고장이 바로 이곳 에스테야(Estella)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아주 고풍스런 건물들과 선한 사람들 그리고 맛있는 맥주와 음식들 또 가격도 싸다면 이도시를 머물지 않고 지나갈 여행자가 몇 명이나 될까? 한식으로 배를 불린 나는 부른 배도 꺼트릴 겸 밤 산책을 나갔다. 오래된 도시의 밤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이었다. 그런데 너무 배가 불러서 그 맛난 맥주를 2잔 밖에 못 먹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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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에스테야(Estella)에서 로그로뇨(Logrono)-50km


간밤의 랜턴과 아름다운 에스테야(Estella)의 풍광과 랜턴과 맛난 맥주 맛도 아침의 피곤을 씻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자전거를 많이 타지 않아서인지 안장통은 극에 달했고 허벅지는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으나 무릎 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기뻤다. 이제 어느 정도 산티아고 길을 찾고 다니는 것이 부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에서 모르는 길을 찾아 여행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체력도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마음먹기 나름이다. 이고통과 이 외로움을 즐기러 온 것이라 생각하면 이내 기쁨이 된다. 리오와 지역의 길은 포도와 갖가지 야채들을 심은 밭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추수한 텅빈 밀밭들 사이를 달려야 한다. 쉴 곳도 마땅치 않다. 그저 묵묵히 페달을 돌리고 아름다운 풍광이 나오면 가끔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순례자를 만나면 인사를 건넨다. ‘부엔 까미노’하고 말하면 거의 100% 응답이 온다. 참 따뜻한 길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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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길을 나선까닭에 오늘은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후 1시경에 로그로뇨에 도착한다. 언젠가 산티아고를 다녀온 제자의 권유대로 구시가의 성당 옆에 알베르게에 숙소를 잡았다. 시내가 가깝고 순례길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다. 우선 샤워를 마치고 점심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갔다. 스페인은 점심먹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웬만한 식당은 씨에스타(오침시간)를 지켜 간단하게 먹으러 찾다가 문을 연 식당을 찾아 파스타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에스테야(Estella) 생맥주로 점심을 먹고 나도 씨에스타를 즐겼다. 이건 거의 반 강제적이기도 하다. 스페인 한낮의 태양은 정말 뜨겁다. 공기가 깨끗해서 인지 햇빛이 살을 파고드는 듯하다. 그래서 대부분 한 낮에는 집에도 셔터를 내리고 낮잠을 즐긴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도 길게는 아니지만 30분 정도 낮잠을 즐기는 편이어서 쉽게 적응할 수가 있었다. 한 숨 푹 자고 나면 내일 일정을 점검하고 침대에 누어 가족들과 카톡을 했다. 카톡을 주고 받는 동안은 가까운 이웃 동네에 온 느낌이었다. 새삼 통신의 발달이 고마웠다. 그리고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우는 5시 정도가 되면 어슬렁어슬렁 구경을 다닌다. 로그로뇨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요리인 타파스가 유명한 도시이다. 구시가지 뒤쪽 골목은 갖가지 타파스와 리오와 와인을 파는 가게들로 즐비했다. 타파스는 원래 스페인에서 와인과 함께 에피타이저로 먹던 것이 이제는 와인 안주로 사랑받는 요리로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간단한 스페인식 꼬치요리 이다. 단단한 바케트 빵위에 갖가지 해산물이나 야채를 튀기거나 양념해서 얹어 먹는 요리로 와인 안주로는 그만이다. 내가 찾은 타파스 가게는 양송이 타파스 가게로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가 사랑하는 에스테야(Estella) 생맥주와 버섯 타파스 한접시를 사서 먹었다. 향기로운 버섯 향과 올리브유 그리고 짭쪼롬한 빵까지 맥주 안주로도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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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로뇨 성당은 개방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산책 중 성당이 개방된 시간이어서 성당안을 둘러보았다. 스페인 성당은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건축학 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성당은 보지 못했고 또 성당마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저절고 경건한 마음을 갖게 했다. 조용한 성당의 의자에 앉아 이번 여행의 완주와 멀리 있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무교로 지내다. 아내의 오랜 설득과 기다림으로 교외에 다닌지 5년 정도 된다. 물론 세례도 받았다. 그러나 깊은 믿음은 글쎄? 하지만 기도를 드리고 났을 때의 뭔가 충만한 마음은 있다.


그리고 한참 동안 해지는 로그로뇨 거리를 걸어 다녔다. 참 여유롭게 보았던 아름다운 로그로뇨의 거리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그립다. 그리고 비싼 돈을 지불하지 않고서도 맛볼 수 있었던 다양한 타파스와 와인 맥주들... 그렇게 로그로뇨는 내 기억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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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로그로뇨(Logrono)에서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50km


로그로뇨는 알베르게는 조금 더웠다. 그래서 잠을 설쳤지만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왔고 또 길을 떠나야 했다. 조식을 신청했지만 우유한잔과 과일 몇조각을 먹고 빵은 가방에 넣고 길을 떠났다. 로그로뇨도 분지에 위치해 있어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목은 오르막이었지만 도시끝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어 지루함을 달래 주었다. 이구간의 대부분은 리오아 지역임을 확실하게 알수있게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많았다. 그 넓은 포도밭은 다 기계를 이용해서 기르고 수확하는 듯 했다. 가끔 보이는 농부들도 모두 트렉터 위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들 이었다. 약간의 구릉은 있었지만 특별한 오르막과 험한길이 없는 50km는 이제 정오 전에 도착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진걸 느꼈다. 그래서 다음 구간부터는 조금 더 거리를 늘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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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전에 도착한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는 매우 작은 도시였다. 오래된 작은 도시에는 알베르게가 많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제빨리 알베르게를 잡고 장부터 봤다. 일찍 도착했으므로 시간이 여유가 있어 경비도 아낄 겸 밥을 해먹을 작정이었다. 메뉴는 돼지고기가 맛있으니까 감자를 넣은 고추장 돼지고기 짜글이 찌개로 정했다. 물론 리오아 와인이 빠지면 안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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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슈퍼는 무게로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적은 양을 구매하기 쉽게 되어있다. 쌀과 돼지고기 200g 그리고 양파1개, 감자1개를 5유로 정도에 구입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는 이탈리아 아주머니 2분이 이탈리아식 양파밥과 닭고기 구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 틈에 끼어서 열심히 요리를 했다. 우선 쌀을 한번 씻어버리고 쌀뜸물을 받아 돼지고기와 고추장 그리고 감자와 양파를 넣고 푹 끓이고 소금 간과 마늘로 마무리해서 은근한 불로 졸였다. 그리고 냄비에 잘 씻어 불린 쌀로 밥을 하는 모습이 이탈리아 아주머니들에게는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유럽식 밥은 양파를 볶다가 올리브유와 불리지 않고 심지어 씻지도 않은 쌀을 그대로 넣고 자작하게 물을 넣은 후 소금 간을 하고 끓이고 뜸들여 밥을 했다.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어보고 요리법을 물어보고 한 참 수다를 떨었다. 어디에서나 아줌마들은 금방 친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이탈리아식 양파밥이 맛있어 집에 돌아와서도 가끔 해서 먹는다. 물론 쌀은 씻고 불려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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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다 되어갈 때쯤 구수하고 칼칼한 짜글이 찌개 냄새가 알베르게 중앙 통로를 통해서 퍼져나가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웅성웅성 하나 둘씩 한국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최인훈 선생의 광장에서 나온 남도 북도 선택하지 않고 제 3국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에서 브라질에 정착한 한 교포가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오로지 ‘어머니’ 한 단어만을 말했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는 고추장과 김치가 들어있었던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생각이 났다. 말은 잊어먹어도 음식은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음식은 머리의 기억이 아니고 몸의 세포가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짜글이 찌개 덕분에 모인 한국 사람들을 어찌 그냥 돌려보내겠는가? 그래서 조금씩 나누어서 먹었다. 모두들 너무 맛나게 먹는 모습에서 행복감이 묻어나왔다. 음식을 한 나로서도 여간 보람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 한국에서 카톨릭대학 신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방학을 이용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는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와 리오아 와인 한병을 모두 먹었다. 그리고 난 내가 음식을 하면 먹은 사람중에 설거지를 시킨다. 집에서도 모든 음식은 내가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집사람이 설거지는 모두 한다. 내 짜글이 찌개를 맛본 미래의 신부님께서 기꺼이 설거지를 해주셨고 난 즐거운 마음으로 씨에스타를 즐겼다. 2시간쯤 깊은 잠에 빠졌던 나를 깨운건 창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싱그러운 바람이었다. 낮 동안에도 알베르게는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어둡게 해둔다. 그리고 알베르게 안에서는 시끄럽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누가 시킨건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번 순례길 여행중에 시끄러워서 잠을 깬 건 정말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피곤해서 코를 고는 경우는 예외이다. 그건 나도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싫은 사람은 호텔에서 혼자 잠을 청해야 할 것 이다. 나는 비교적 소음에도 잘 자는 편이라 이렇게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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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난 귀중품들만 챙겨서 마을 구경에 나섰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는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은 유서 깊은 성당이 있었다. 물론 스페인의 대부분의 마을이 그렇지만 말이다. 이곳 성당은 특히 이 산티아고길과 관계깊은 야고보에 관한 유적이 많이 있었고 실재로 야고보의 상징인 흰 닭을 성당안에서 키우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성당에 딸린 작은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도 있었다. 그곳에서 묵주 몇 개를 구입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묵주 중에 하나를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오랫동안 앉아서 기도와 묵상을 했다. 그 묵상중에 가장 오랫동안 했던 것이 내가 믿는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반 타의에 의해 강요된 내 종교인 기독에 대해 난 반감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내가 기독교인임을 말하지 못하고 살았다. 왜 난 기독교인이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이 보통의 삶속에서 보이는 이기주의와 편협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사와 집사라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속에서 보이는 이기주의와 편협 그리고 편 가르기 등등 진짜 싫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부정하고 나의 삶속에 투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내가 본 무수히 많은 기독교 유적을 보면서 아니 이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의 성당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건 돈이나 어떤 권력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그런 건물이나 조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아내의 10년 기도보다도 더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난 건 아니다. 아직도 술 잘 마시고 담배 피는 날라리 신자임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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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나오자 슬슬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6시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호사가의 말처럼 酒자를 보면 삼수변에 닭 유자 즉 유시 17-19시가 술을 부르는 시간은 맞았다. 배는 그렇게 고프지 않았지만 술 한 잔 생각이 났다. 필자는 술을 즐기는데 안주를 먹기위해 술을 즐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안주 없이는 술을 안마시지만 맛있는 안주를 보면 술생각이 절로 난다. 그때 내눈에 들어온 바의 광고보드하나가 나의 위를 들썩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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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ETON’ 언젠가 산티아고를 먼저 다녀온 친구에게 들었던 그 단어다. 이게 스페인식 바비큐이다. 거의 생고기처럼 대충 구어서 나오면 화로를 놓고 손님이 직접 구어서 먹는 우리나라 갈비와 비슷한 음식이다. 내 머리에서 지시가 내려가기 전에 이미 그 광고판을 내건 바의 문을 열었고, 자리를 배정받아 ‘츌레톤’을 외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바케트가 나오고 오늘은 특별히 와인을 한병 시켰다. 리오아 지역을 거의 지나고 이제 얼마 안남은 탓에 제대로 된 와인이 한병 마시고 싶었던 터였다. 오랜만에 고기를 굽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권유받은 와인을 테스팅 후 반쯤 잔에 따른 와인을 원샷! 빈속을 타고 향기로운 포도향과 따뜻함이 전해졌다. 역시 첫잔은 원샷이다. 그리고 숯불과 고기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스페인은 낙농국가가 맞는 것 같다. 농축산물이 값도 쌀뿐더러 맛도 너무 좋았다. 오랫동안 앉아서 와인 한병과 맛난고기를 모두 구어서 먹었다. 그런데 아쁠사 알베르게는 취침시간 때문에 문을 잠그는 시간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 너무 늦게 도착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도 그시간에 문앞에 있던 순례자 한명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양치한 것과 함께 그날은 아무 기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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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일-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서 부르고스(Brgos)-73km


와인의 좋은 점은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거의 숙취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숙면을 취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다만 필자가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코를 골 텐데 필자는 들은바 없으니 다행이다. 이날은 거리가 70km넘어서 좀 일찍 출발을 했다. 그런데 출발하려 보니 너무 숙면에 취해서 휴대폰 충전을 잊었다. 머나먼 외국 그것도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휴대폰이 먹통이 된다면 정말 고립무원이 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보조 밧데리를 가져간 포장용 테이프에 붙여서 핸드폰 거치대에 구글맵을 켠 후 거치하고 길을 나섰다. 좀 이른 시간이라 한기가 느껴질 만큼 쌀쌀했다. 스페인의 여름 날씨는 새벽에는 거의 17도 정도에 머문다. 바람막이 정도는 입고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새벽 일찍 출발할 때는 어둡기 때문에 반드시 밝은 옷과 후미등 및 전조등이 있어야 했다. 필자의 경우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현지에서 충전해서 쓰는 전조등 겸 후미등을 구입했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을 이야기 하면 스페인의 일정규모 이상의 도시에는 데카트론(DECATHLON)이라는 스포츠 매장이 있고 이 매장에 가면 모든 스포츠 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산티아고 순례길에 드르는 대부분의 마을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큰 도시에서 숙박할 때나 지나갈 때 따로 시간을 내어서 들러야 했다. 칼사다에서 부르고스 향해 가는 길은 중간에 커다란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그 이름도 유명한 Montes de Oca 우리말로 한다면 까마귀 산이다. 1000m정도의 고도이나 차량통행이 많고 거의 부르고스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정오에 가까운 시간에 넘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힘이 들었다. 물론 가기 전에 이름도 잘 모르는 아름 다운 마을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샌드위치와 커피 그런데 아침 먹는 호텔의 바 옆에 너무 아름다운 성당과 그 뒤쪽으로 기도실인 듯 동굴을 파서 만든 시설들이 보였다. 이처럼 스페인의 곳곳에는 아름다운 건물과 성당들이 무수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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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휴식도 잠시 낮은 몇 개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드디어 Oca산에 다다랐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냥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거리는 3km밖에 안된다고 표지판에서 본 것 같은데 이건 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길은 워낙 교통량이 많았다. 그것도 집채 만 한 트럭들이 쉼 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스페인 사람들에게 페레그리노(순례자)들에 대한 배려는 생활화 되어 있는 듯 했다. 그 수많은 차들 중 내 자전거를 보고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었다. 혹시 내가 다칠까 쉬어가는 차들은 보았지만 참 부러운 배려였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반성했다. 조금만 나의 운전에 방해가 되어도 경적을 울려대던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사람은 평생 배운다고 했던가? 그 이후 한국에 와서 운전하면서 한 번도 경적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도 지극히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으려 다짐해 본다. 아무리 힘든 오르막도 끝은 있는 법 결국 까마귀 산을 넘고 부르고스의 위성마을 정도 되는 빌야프리아(Villafria)에 도착해서야 바를 만나 엔쵸비 타파스와 에스테야 까냐를 마셨다. 정말 오르막을 오르며 쌓였던 갈증이 한 번에 싹 날아간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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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머지 10km는 평지였다. 다행이었다. 거리도 먼데다 정오가 넘은 시간에 맥주 2잔 마신데다가 오르막까지 만났다면 난 또 사경을 헤맸을 것이다. 부르고스는 꽤 큰 도시에다 엄청난 문화유산을 보유한 보물 같은 도시여서 난 이곳에서 2박 즉 하루의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호텔의 아파트를 예약했다. 산티아고 순례여행 중 딱 2일의 휴식일을 넣었는데 그 중에 첫날이 부르고스였다. 부르고스의 첫 인상은 잘 정돈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호텔을 찾아 예약한 아파트(호텔과 따로 분리 되어있음) 키를 받고 아파트를 찾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아파트는 부르고스 성당과도 가깝고 순례길 바로 옆에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설은 우리나라의 콘도와 같이 되어있어 2층은 침실과 욕실 1층은 주방과 거실로 된 복층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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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고 에어컨이 나오는 방이 너무 좋았다. 마음껏 씻고 빌트인으로 되어있는 세탁기로 밀린 빨래를 모두 했다. 그리고 정말 좋은 햇빛에 뽀송하게 말려두고, 구글 지도를 이용해 슈퍼를 찾았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슈퍼로 장을 보러가서 먹거리를 샀다. 밥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가지고간 고춧가루와 건조 김치를 이용해 닭개장을 끓였다. 푹 삶아낸 닭에서 뼈를 분리하고 육수를 거른 후 닭고기를 양념해서(고춧가루와 마늘 간장) 구입한 야채와 함께 끓였다. 맛있었다. 그리고 맥주 한잔 한다는 것이 에구야 사온 6병을 다 마시고 늘어지게 한 숨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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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늦으막히 팅팅부은 눈으로 부르고스 대성당을 보기위해 어슬렁거리며 집을 나섰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영화 The Way에서 나온 후 유명해 졌지만 오래전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인류의 보물이다. 아치형의 문을 지나고 부르고스 대성당의 위용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동안 여행을 통해서 수많은 성당을 보고 놀라고 감탄했지만 정말 대단했다. 보통 웅장하면 아름다움이 덜하고 아름다우면 웅장함이 덜한데 부르고스 대성당은 필자의 눈에는 웅장하면서 세밀하게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정말 최고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항상 성당의 뒤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좋아 하는 나는 뒤쪽까지 모두 돌아다녔다. 부르고스는 대성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상점들과 식당들이 모여 있다. 또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정말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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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르고스 대성당 앞 레스토랑에서 먹은 신라면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런데 신라면 값이 코스요리 값과 비슷했다. 물론 죽밥이 같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아주 라면이 먹고 싶지 않으면 그리 권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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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기상에 대한 부담없이 늦게까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TV를 시청하고 늦잠을 잤다. 허걱 그런데 이상하게 늦잠을 자려하면 일찍 깨지는 이상한 병은 스페인에서도 발동이 되어 7시 정도에 일어나졌다. 그래서 아침빛에 부르고스 성당을 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역시 부르고스 대성당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직은 상가도 문을 열기 전이고 또 관광객과 순례자들도 별로 없는 거리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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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부르고스의 골목길을 일부러 돌아다녔다. 역시나 사람 없는 오래된 골목길은 느낌이 참 좋았다. 돌아와 어제 끓여놓은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고 쉬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공항에서 랜턴을 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이다. 항공사에 따라서는 연료를 비우고 연료통을 햇빛에 6시간 이상 열어둔체로 말리면 실어주는 항공사가 있는 반면 어떤 항공사에서는 아예 싣지도 못하게 하는 항공사가 있었다. 이거야 말로 항공사 맘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필요 없는 짐과 함께 우체국 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먼저 우체국을 검색하고 필요 없는 짐들을 챙겼다. 여분의 옷가지와 코펠 버너 침낭 등은 구지 갖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랜턴을 분해해서 각 부분별로 따로 포장해서 옷사이에 잘 넣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꼬레오스(Coreos) 검색해서 포장 상자를 사서 집으로 보냈다. 특송과 보통 중에 보통을 선택했다. 가격은 약 42유로 정도였다. 한국주소를 영어로 써주면 컴퓨터에 입력하고 내가 혹시 몰라 내가 쓴 주소를 박스표면에 붙여 줬다. 물어보니 10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재로는 내가 집에 도착하고도 2일 후에나 도착했다. 그래도 무사히 랜턴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짐의 무게와 부피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 자전거를 구입해서 마지막에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항공사 스포츠 페키지를 이용하면 자신의 자전거를 갖고 가서 마지막에 산티아고 우체국에서 보내는 방법도 있었다. 우체국에는 자전거를 넣을 수 있는 박스도 있었다. 비용은 약 20만원정도 들 것 같았다. 이것도 고려해 볼만한 방법이다. 짐을 보내고 나니 집이 그리웠다. 이런 그리움을 달래는 것은 맛난 음식을 해먹는 방법이 최고이다. 그래서 장을 보러 전날 갔던 슈퍼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해산물을 샀다. 커다란 한치 한 마리와 링아 와인 그리고 오이를 샀다. 스페인 슈퍼의 야채는 번호가 있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 야채를 들고 저울위에 올린 후 야채번호를 누르면 무게대로 가격표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꼭 그걸 해주시는 아주머니나 직원들이 상주해 있는 것에 비하면 훨씬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치 숙회와 육개장 국물 오이 고추장 무침을 했다. 앗 그런데 초장이 없었다. 궁즉통 그래서 후식으로 사온 오렌지를 잘라 오렌지 즙으로 초장을 만들었다. 적당한 단맛과 세콤한 것이 일품이었다. 역시 맛난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리고 또 씨에스타로 피곤을 날려버렸다. 저녁 무렵 아파트 근처의 동네 맥주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첫 번째 휴식일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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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부르고스(Brugos)에서 프로미스타((Fromista)-67km


전날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해서 일까? 늘상 만나는 도시에서 벗어나는 오르막도 가볍게 넘었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스페인의 광활한 대지를 벗 삼아 심한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길을 5시간 정도 달렸다. 이날 여정에는 전날 삶아서 넣어두었던 계란과 생수가 아침과 간식을 대신했다. 그런데 워낙 광활한 평원이라 마땅히 앉아서 쉴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름대운 대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정오 직전에 목적지인 프로미스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의 알베르게가 아직 문을 열기 전이라 난 호스텔로 숙소를 잡았다. 주말인데다 이곳 프로미스타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꽤 알려진 관광지 인 것 같았다. 방 잡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저렴한 30유로 정도에 욕실이 딸린 다락방을 구했다. 그 것도 프로미스타의 오래된 아름다운 성당 바로 앞 이어서 창을 열면 성당의 지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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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타는 스페인 중북부의 작은 도시이지만 이상하게도 스페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에 있는 2개의 성당이 상당히 중요한 성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프로미스타로 가기 전에 아주 오래된 수로가 있는데 너무 멋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때 마침 휴대폰이 먹통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흑흑! 오래된 프로미스타의 성당 2곳을 둘러보는 것은 오후로 미루고 씻고 점심식사를 위하여 나섰다. 검색해본 결과 이곳에 스테이크 집이 있어서 고민 없이 바로 선택했다. 체력소모가 많은 자전거 타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섭취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꽤 유명한 곳이었는데 내입맛에 스테이크는 별로였다. 양갈비를 먹을껄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의무감을 갖고 먹었다. 여행을 끝까지 마치기 위해선 잘 먹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의무사항이다. 그리고 성당앞 벤치에 누워 집에서부터 갖고 온 고 최인훈 선생님의 광장을 곱씹으며 끝까지 읽었다. 맨 마지막 이명준이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최인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광장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지식인으로서 갖는 고뇌와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좌절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다시 생각해 봤다. 나는 어떤 광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을 택하고 인도를 향해가는 배안에서의 인간 군상들의 원초적인 욕망과 충돌 이런 모든 문제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광장에는 없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참 오랫동안 벤치에 누어 플라타너스 잎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확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3번 정도를 읽었는데 이번여행직전 최인훈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없이 챙겨왔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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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뭘 해야 한다? 정답은 ‘까냐 그란데와 씨에스타’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에스테야 꺄냐를 그란데로 한잔 마시고 이 닦고 깊은 씨에스타에 빠졌다.

그리고 또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쯤 일어나 프로미스타 탐방에 나섰다. 먼저 프로미스타에는 오래된 2개의 성당이 있는데 첫 번째 성당은 프로미스타를 관통하는 국도변에 있다. 지금까지의 성당들이 높은 첨탑과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면 이 성당은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안쪽 박물관에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오래전 세계지도가 있었는데 한국을 좀 크게 그려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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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성당은 도로 옆 공원을 끼고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문을 닫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안쪽은 보지 못했지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날이 어두워져서 조명을 받으니 신비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을 고기를 먹은 탓일까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뭔가 그냥 들어가 잠들기에는 허전했다. 결국 성당 주변의 카페에서 까냐를 한잔 마시고 들어가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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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 프로미스타((Fromista)에서 사군(Sahagun)-58km

전날 일찍 잠들어서일까? 새벽에 잠이 깨서 뒤척이다. 이럴 바에는 일찍 출발하자는 생각이 들어 6시쯤 서둘러 출발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출발한 탓에 어둠을 헤치고 달려야 했다. 물론 어둠은 곧 빛에 의해 옅어져 갔지만 말이다. 출발 후 2시간 후 쯤 첫 번째 마을에서 카페콘레체(라떼)와 시나본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그 말을 지나려는데 불현 듯 일요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내 삶에 주어진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주시고 직업을 주시고 또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주시어 내 삶을 단단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깊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참 돌이켜보면 많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난 늘 불평과 불만에 쌓여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불평 속에는 잘못된 것이 내 탓이 아닌 남의 탓 혹은 내가 운이 없어서라고 치부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머나먼 이국에서 오랫동안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 난 것이 ‘내 삶속에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하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도 감사했고,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햇빛도 감사했다. 그리고 전형적인 메세타 지역을 지났다. 넓은 들판을 지나다보면 20km가깝게 마을을 만날 수 없는 구간도 만나게 된다. 그런 구간이 도보순례자들에게는 가장 힘든 구간이다. 몇 시간 동안 물 한병 사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전거야 1시간 30분 정도만 참으면 되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날 이런 구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순례자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포장마차를 놓고 과일과 음료를 파는 곳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져 있었다. 참 고마운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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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칠 때마다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대지를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기회에 내 삶속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자 힘들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페달 한페달이 소중하고 아깝게 생각이 들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참 쉽게 쓰는 말이지만 진리였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덕에 사군(Sahagun)에도 정오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사군에서 꽤 유명해서 자리 잡기 힘들다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순례자로 버글거려야 할 알베르게가 한산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일러서 인가? 생각하고 제일 좋은 자리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것도 2층침대가 아닌 싱글베드로 말이다. 그리고 목을 축이러 내려가 에스테야 까냐를 한잔 마시고 자전거를 넣어두는 창고에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이 알베르게의 주인이 그동안 틈틈이 모아놓은 오래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참 갖고 싶었지만 그림의 떡일 뿐... 참 이 머나먼 곳에서 비슷한 취미의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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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베르게는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점심은 코스요리(스테이크)를 먹고 침대로 돌아가 이것저것 검색하다 나도 모르게 씨에스타로 빠져들었다. 순례길을 여행하는 내내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하는 버릇이 생겨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엄청 힘들었다.

그리고 석양으로 해가 기울쯤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사군(Sahagun) 탐색에 들어갔다. 이곳역시 작은 스페인의 마을이지만 철도가 지나가고 있고 수많은 유서깊은 건물들이 있었다. 이런 건물들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안다면 훨씬 더 감명이 깊겠지만 난 그냥 있는 그 자체로의 모습을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내 계획대로라면 차를 빌려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산티아고 길을 다시 여행할 생각인데 그때는 건물 하나하나 성당 하나하나의 역사적 의미와 건축양식을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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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쯤 되니 체력이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먹는 것과 자는 것에 신경을 써야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군(Sahagun)의 거리를 돌아보고 해지는 철로를 다리 위에서 바라보며 갑자기 가족에 때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새벽시간 잠든 가족을 깨우기 싫어 나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일차 사군(Sahagun)에서 레온(Leon)-55km


사군(Sahagun)의 밤은 길었다. 일찍 잠자리에 든 탓도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더웠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고 또 일찍 잠에서 깼다. 그래도 일정을 소화하려 일어나서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새벽에 길을 나서서 길 위에서 맞이하는 새아침의 해는 정말 싱그러운 에너지 충전이었다. 특히 지평선 위에서 떠오르는 해는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을 만들어 준다. 해의 기운을 받아 신나게 페달을 밟다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또 도착지의 킬로수가 줄어드는 것을 볼 때마다 힘이 났다. 그렇게 페달을 밟다 만나는 마을에서 아침식사를 하려는 데 뜻밖에 한글로 된 간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외국인 순례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물음이 “왜 이렇게 한국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오느냐?”였다. 그래서 필자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참 말하기 부끄럽지만 필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한국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쓸데없는 경쟁심과 유행에 민감함이 수많은 사람을 산티아고 길로 이끈 것이 아닐까? 비단 이곳뿐이 아니라 필자가 처음 2005년 1월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을 때 그다지 많지 않던 한국 사람들이 2007년 다시 갔을 때는 거의 청계산에 온 듯 한국 사람들이 붐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메스컴 이다. TV프로그램에 한번 나왔다 하면 바로 실시간 검색 1위 그리고 유행처럼 번져 나간다. 이것이 필자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의 좋은 점이기도 또는 나쁜 점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2가지였다. 한국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많기도 하고 또 하나는 유행(TREND)라고 대답했다.

아무튼 한국어 간판은 라면을 판매하고 또 즉석밥도 판다는 내용의 간판이었다. 주인에게 당신이 썼냐고 물으니 손님에게 부탁해서 썼다고 말했다. 반갑기는 했지만 아침에 라면은 아니다 싶어서 카페 콘레째와 카스테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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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내쳐 달려 레온(Leon)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오늘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정오 직전이었다. 레온(Leon)은 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도시 중 가장 큰 도시이다. 큰 도시는 작은 시골마을에 비해 덥고 복잡했다. 그래서 3성급 정도의 호텔을 예약했다. 제법 규모가 큰 호텔이어서 찾기도 쉬웠고 시설도 매우 좋았다. 넓은 광장 쪽으로 창이 나 있었고 호텔옆에는 바로 알베르게가 있어서 순례자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런데 호텔에는 마땅히 자전거를 둘만한 곳이 없었다. 호텔 바깥쪽 주차장에 자전거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난 자전거를 잠그는 열쇠를 소지 하지 않고 있다고 프론트 직원에게 말했더니 따로 마련된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작은 기도실 같은 곳을 알려줬다. 기분만이라도 성모마리아가 나의 여행을 지켜줄 것 같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오랜만에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궜다. 역식 여행의 피로는 욕조 목욕을 해야 풀리는 듯 했다. 욕조물이 빠지기 전에 간단하게 입었던 옷을 빨아 발코니에 널고 침대에 그대로 누워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낮잠을 매일 자기는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자지 않았다. 물론 습관이 그리 들어서도 있겠지만 밤잠을 깊게 자야 다음날 라이딩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낮잠에서 깨어나 기운이 쭉빠진 상태에서 레온의 볼거리를 검색했다. 레온은 중세 까미노 안내서에 ‘모든 행복이 넘치는 곳’이라고 표현 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볼거리 가득한 레온이지만 고작 하룻밤 머무는 순례자에게는 2-3곳 정도가 적당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레온 대성당과 가우디의 까사 보티네스로 정했다. 한낮의 기온이 남아있는 도시는 후끈했다. 큰 도시답게 관광객들로 넘쳐났고 도시의 활기찬 모습이 지금까지 지나온 작은 마을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 였다. 호텔에서 나와 구글 지도를 검색한 후 방향을 정해 걸었다. 작은 레온의 골목길에는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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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자 산 마르셀로 광장이 나오고 눈앞에 까사 보티네스가 펼쳐졌다. 참 단순한 디자인 같으면서도 디텔일이 살아있는 흔하지 않은 디자인 한눈에 봐도 가우디의 작품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앞 광장에는 가우디의 동상이 만들어져서 자신이 만들 건물을 영원히 바라보고 앉아있다. 레온이 중세시대의 도시임을 감안해서일까 지금껏 화려함과 독특함을 내세웠던 기존의 건물과 달리 중우한 매력이 넘치는 건축물이었다. 지금은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아래층에는 전시실을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다. 건물 외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단순한 외관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한 디테일한 조각들에 이내 맘이 빼앗겨 버린다. 참 부러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지금도 실재로 사용하고 또 전국 곳곳에 갖고있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가우디를 만난 기념으로 3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1층 전시실에 들어가서 내부를 보았다. 내부 역시 단순하게 아니 단정하게 만들어진 창과 기둥들 그리고 그 기둥을 연결하는 아치들이 마치 나야 가우디!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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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입구를 지키는 인상 깊은 조각이 호르헤 성인이 용을 내리치는 (San Jorge y el dragon)이라는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뛰어난 작품은 몰라도 좋아 보인다’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길건너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건물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참 좋았다. 가우디의 감동이 잦아들 때까지 꽤 오랜 시간 앉아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상점들이 가득한 도로를 지나 레온 대성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페인은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 정도의 대도시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도보나 자전거로 도시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까사 보티네스에서 레온 대성당까지도 도보로 5분이면 충분했다. 양쪽에 즐비한 상점들의 전시된 물건들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도 재미있었다. 각종 기념품과 패션 소품들 옷과 음식을 파는 가게와 수많은 관광객들 산티아고 길에서 처음 느낀 들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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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골목길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하면 스페인의 크고 작은 골목들은 양쪽으로 상점과 아파트가 있고 가운데로 약간 기울어 가운데가 우수가 빠지는 곳으로 되어있다. 돌로된 빗물길이 반질반질 윤이 나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한다. 커다란 골목을 빠져나가자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풍의 레온 대성당이 나타난다. 부르고스 대성당이 약간 안쪽에 감추어진 매력이 있다면 레온 대성당은 윽박지르는 웅장함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때 시간이 오후 3시경 생각해 보니 점심도 먹지 않고 낮잠을 잤고 또 일어나서 레온 구경을 나온터라 배가 고팠다. 그런데 어느 도시나 관광지 앞 식당은 비싸고 별로라는 인식이 있어 참을까 하다 결국 레온성당이 보이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레온성당을 마주 보고 앉아서 주문을 했다. 스페인의 식사는 프랑스처럼 복잡하지도 또 영국처럼 단순하지도 않은 아주 간단하면서 합리적이다. 에피타이저 메인디시 디저트 3개의 요리가 순서대로 있어 그 코스에 있는 요리 중 선택을 하면 되고 와인이나 맥주를 주문하면 주문 끝이다. 난 이날 샐러드와 생선(스페인어를 몰라 영어로 하다가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저것 달라고 했음) 샐러드는 각종 야채와 과일 그리고 마요네즈로 버무린 내가 좋아하는 사라다(크크)였다. 그리고 생선은 이면수어 비슷한 잘 부서지면서 비리지 않고 맛은 고소해서 맛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까냐그란데 역시 스페인 생맥주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레온 대성당을 앞에 두고 먹는 점심은 정말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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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레온의 성당과 맛난 음식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유쾌한 이야기 소리 물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이것이 여행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가 착한 음식가격까지 참 기분 좋은 점심을 먹고 고딕풍의 레온 성당의 내부를 보러 들어갔다.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고딕건축물의 상징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기 위해서라도 입장하고 싶었다. 레온 성당의 입구에서는 무선으로 성당 곳곳을 설명해주는 기계를 모든 입장객에게 대여해 주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었다. 잘 못 알아듣지만 영어를 선택하고 맵에 있는 번호를 누르면 자세하게 설명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은 부질없다는 듯 정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 정말 입장료를 아까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이 미안했다. 하나도 같은 문양이 없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작렬하는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만 모든 스테인드글라스에 의미가 있는 듯 했으나 그걸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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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이외에도 수많은 조각과 심지어 오래된 파이프 오르간까지 정말 멋진 자태를 뽐내고 었다. 한 동한 넋을 놓고 앉아서 천정을 바라보았다. 또한 높은 천정과 돌로 만들어진 성당은 정말 시원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또 기도하기에 좋았다. 이곳에서도 무사히 순례를 마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길 간절하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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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나자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새벽 라이딩은 어둠을 뚫고 달려야 해서 낮보다 훨씬 집중을 해야 하고 또 그만큼 체력소모도 많았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한 시간 정도 쉬었다. 그리고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 도시 입구에 보이던 미국 프렌차이즈 치킨가게 건물이 생각났다. 자전거를 꺼내서 타고가면 금방이겠지만 말하고 꺼내고 다시 말하고 넣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또 걸으면서 레온을 둘러볼 수 있어서 걷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커다란 성곽이 레온이 중세의 도시라는 걸 말해주었고 곳곳의 노란 화살표는 레온이 산티아고 길의 중심에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누가 말했던가. 촛불은 다 타고 꺼지기 직전이 가장 밝다고 해가 기울기는 했지만 마지막 발악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자전거로는 10분 정도면 될 거리였는데 거의 40여분을 걸어서 왕복했다. 치킨을 무려 5조각을 샀고, 리오아 와인한병을 치킨과 꾸역꾸역 먹고 밤새 후회했다. 설사와 복통으로 엄청 고생했다. 한동안 한국에 와서도 치킨을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그렇게 레온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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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레온(Leon)에서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78km


어느 여행이나 그렇듯 여행은 예측할 수가 없다. 전날 치킨과 와인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섰다. 조식은 포함되어 있었지만 조식시간이 아침7시라 포기하고 자전거를 꺼내어 나가려는데 호텔직원이 방 번호를 보더니 아직 열리지도 않은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아침 먹고 가라고 해주었다. 이처럼 스페인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호의적이다. 참 고마웠다. 하지만 밤새 배탈로 설친 내가 아침이 들어 갈리는 만무하고 쥬스 한 잔과 생수 한 병을 챙겨 넣고 커피를 마시고 나서자 카스테라를 몇 개 집어주며 넣고 가라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호텔직원의 호의에 전날 밤잠을 설친 것도 훌훌 털어내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원래 이날의 계획은 아스트로가(Astroga)까지 58km 정도를 이동하려 했으나 너무 열심히 페달을 밟았나? 아스트로가에 도착하니 11시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이 1500m정도의 폰세바돈을 넘어야하는 오르막이 심한 길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스트로가 외각의 투우 경기장 앞에서 휴식 겸 호텔직원이 챙겨준 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일찍 일정을 마치고 아스트로가에서 머무느냐? 아니면 내일 일정 중 일부를 오늘 더 달려 내일 편하게 일정을 보내느냐? 이게 보기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이 만약 오늘 아스트로가를 점프해서 넘어가면 이 도시 자체을 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스트로가는 제법 규모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지만 여기서부터 산을 넘을 때 까지 그리 큰 도시는 없다. 하지만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오르막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결국 아스트로가는 패스하기로 결정한다. 결정을 하고나니 맘이 더 급해진다. 결국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을 머리위에 얹고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에게 아스트로가는 투우장 사진 한 장을 기억되고 내년 가족과 차로 여행할 때는 꼭 둘러보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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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가부터 폰세바돈까지는 지루한 오르막이다. 거의 25km정도의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다행이 급경사는 아니지만 계속 오르막이 지속되는 말 그대로 진을 빼는 길이었다. 거기다가 맘이 급해서였을까 길을 잘못 들어 완전 황무지를 1시간 넘게 헤맨다. 산티아고 자전거 순레여행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를 구글은 계속 가라하고 도무지 길도 아니고 모레 밭도 아닌 길을 뜨거운 태양아래 달리면서 ‘만약 내가 여기서 자전거가 고장 나거나 다치면 나갈 수 있을까?’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나오고 같은 길의 반복은 꼭 내가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려웠다. 원래 무서움을 잘 타는 체질이 아닌데 가족이 생기고 나서부터 무서움이 생겼다. 내가 잘못되면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한 시간쯤 헤매고 났을 즈음 커다란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한참을 공포에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그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러자 손짓 발짓을 하며 길을 알려줬고 그 방향으로 한참을 더 가서야 집이 보였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을 마셨다. 그동안 목이 말랐지만 맘이 급해서 물 마실 생각도 못했다. 언젠가 박범신 작가가 쓴 촐라체라는 작품에서 조난당한 주인공이 야크 똥을 보고 엄청 기뻐한 장면이 떠올랐다. 야크똥을 발견한 순간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필자의 경우 조난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 혼자여행이 이런 어려움이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집을 발견하고 집을 향해가니 길이 이어지고 그래서 다시 길을 제대로 잡았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길까지 헤매고 나니 날은 더욱 뜨거웠다. 내가 오늘 목표로 삼은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까지 17km정도의 은근한 언덕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안도감에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참 마음가짐이 이렇게 몸을 지배함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리고 폰세바돈 정상까지 6km전인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 도착을 하였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햇볕은 뜨거웠지만 공기는 시원한 전형적인 고원지대의 날씨였다. 건조하고 기분 좋은 시원함이 마을의 느낌까지 좋게 해주었다. 누군가 여행은 정보와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여행은 좋은 기운과의 싸움이다. 즉 운이 정말 많이 작용한다. 왜냐하면 정보력은 무한할 수가 없다. 아무리 디지털기기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지역과 모든 사람의 정보를 알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운이 따라야 여행을 순조롭게 할 수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알베르게는 4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전혀 정보의 검색 없이 도착한 터라 정말 고민스러웠다. 지금까지는 베드버그(bedbug)에 물리지 않고 여행을 했는데 지금 이 순간이 베드버그(bedbug)와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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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무조건 사람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라!’혹시 관광지에서 맛있는 식당을 모를 때 쓰는 원칙을 적용해서 알베르게를 찾았다. 그러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우리나라나 스페인이나 모두 같았다. 가격도 6유로로 저렴했고 건물은 허름했지만 주방도 또 화장실도 깨끗했다. 숙소를 정하고 나자 안도의 한숨과 피곤이 밀려들었다. 우선 씻고 싶었다. 배정받은 침대를 찾아들어가다가 얼핏 보니 한국 분들 같은 분들이 계셨다. 부부이신 것 같고 연세도 지긋해 보이시기에 말을 붙였다. 그렇게 인연이 만들어지고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고 바쁜시간을 보냈다. 배는 고픈데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두 부부가 나오셔서 맥주를 권했더니 처음엔 맥주를 많이 마셨는데 계속 먹으니 몸의 문제가 생겨서 안 드신다고 하셨다. 그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점심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밥이 먹고 싶어서 잠시후 슈퍼에 가서 쌀사서 밥 해석 먹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셨다. 도보로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지 30일 가까이 되었지만 밥을 해먹을 생각을 못하셨단다. 그래서 그 길로 동네 조그만 슈퍼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다가 밥을 해서 대접해 드렸더니 너무 맛있게 드셨다. 반찬이라고 해야 감자볶음과 고추절임과 간단한 셀러드가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호구조사에서 남자 분은 모 대학의 교수님이셨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를 위한 여행이라 말씀하셨는데 내가 자전거로 여행한다고 하니 다시 자전거로 한 번 더 오시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설거지를 교수님께 미루고 난 시에스타(낮잠)을 자러갔다. 버릇없다 말씀하실 분들도 계시지만 내 원칙이 ‘요리하는 사람은 설거지에서 제외해 줘야 한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푸하하!. 역시 순례길의 맛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해가 서쪽으로 기울쯤 나가는 산보에 있다.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는 작은 산골마을이어서 동네를 전부 돌아보는데도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성당과 멋진 풍광 그리고 꼭 우리나라의 가을같은 날씨는 충분히 매력적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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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낮에 음식 재료를 샀던 슈퍼에 가니 교수님 부부가 계셨다. 그래서 내가 낮에 해놓은 밥이 있으니 참치하나만 사서 내가 갖고 있던 마지막 남은 건조 김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자고 제안했다. 기뻐하시면서 참치를 사셨다. 그리고 계란을 사서 삶아서 나누어 주신다고 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계란을 주로 삶아서 간식으로 드신 것 같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밥이 적은듯해서 쌀을 불려서 냄비에 밥을 올리고, 건조 김치를 불려 참치기름에 볶다가 은근하게 끓여 찌개를 만들고 계란을 이용해서 소금으로 간해서 계란마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알베르게 바에 가서 까냐 그란데를 주문해서 갖고 들어와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역시 음식음 나누고 같이 먹어야 맛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설거지를 마치실 때 까지 기다려 두 분께 아까 마을 탐방을 하면서 봐 두었던 멋진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와 후식으로 초코 케이크를 사드렸다. 너무 고마우셨는지 지갑 안쪽에 고이 넣어두었던 명함을 한 장 꺼내 주셨다. 그 명함을 지금도 갖고 있지만 아직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인연을 만나지만 산티아고에서 헤어짐은 언제나 일상이다. 모두의 생활리듬이 다르고 출발시간도 다르다. 그리고 도보와 자전거는 하루에 도달하는 거리가 달라 한번 헤어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은 0%이다. 그런데 이상하리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설사 같이 여행을 시작해도 따로 여행을 한다. 각자의 능력과 체력에 맞추어서 필자도 여행은 친구와 같이 떠났지만 혼자서 여행했다. 물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만난 날짜만 약속하고 말이다. 알베르게의 침실안은 항상 어둡다. 아니 어둡게 해둔다. 순례자들 중 쉬는 사람을 위한 배려이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더라고 혹은 맥주를 마시더라도 항상 침실밖의 식당이나 바를 이용하는 것이 메너이다. 그리고 요즘은 세태를 반영해새 항상 휴대용 디지털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들이 침대 옆에 1-2개씩 마련되어있다. 순례도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잠자기 직전 사모님이 계란을 삶아서 3개 싸주셨다. 나도 미리 인사를 드리고 교수님과 뜨겁게 악수를 나누고 깊은 잠에 빠졌다.


12일차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서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55km


전날 잠자리 직전 맥주를 마신 탓에 수면 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날씨가 어떤지 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하늘을 바라본 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그렇게 많은 별을 보지 못했다. 20여 년 전 인도의 시골 마을인 마호바의 하늘보다. 또 네팔의 고라파니의 하늘 보다. 지리산 장터목의 하늘보다도 더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결국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별들을 목이 아플 때까지 쳐다 보다 들어갔다. 아쉽게도 휴대폰을 충전중이어서 사진이 없다. 다시 휴대폰을 들고 나가 찍을 수도 있었지만 깊은 잠에 빠져있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참기로 했다. 그리고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오늘의 일정을 살펴보다 고민에 빠졌다. 그날과 다음날 연이틀 1400m 고지를 2개 넘어야 하는데 좀 빨리 움직이면 오늘 첫 번째인 폰세바돈을 넘어 다음날 일정에 있는 오세브레이로(O Cebreiro)까지 갈 수는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커다란 언덕을 하루에 2개 넘는 것과 그러면 그 다음날 아침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리막을 내려가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난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그날은 조금 쉬어가는 의미에서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늘 길을 조금 짧게 정한 이유는 단순하게 오르막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지난번 그냥 지나온 아스크로가에 대한 아쉬움이 작용하기도 하였다. 오늘 오르막을 오르면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라는 아름다운 마을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깐 눈을 붙였는데 사방에서 조심스럽게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지 않아도 순례자들의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일어나서 교수님 부부의 자리를 보았더니 역시나 일찍 출발하시고 계시지 않으셨다. 무사히 순례를 마무리하시길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출발 준비를 했다. 이제 습관처럼 전날 아침에 입을 옷과 양말 그리고 팔토시 등을 준비해두었다. 웬만한 어둠속에도 빠진 물건없이 잘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알베르게를 나선 시간이 6시 30분 정도 되었다. 아직 어둠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온은 대략 10도를 밑도는 듯했다. 추웠다. 그래도 잠바를 입지는 않았다.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폰세바돈(정상)까지는 6km가 남아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추웠던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밤새 굳은 근육이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계속되는 오르막을 어둠을 가르고 오르며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여행을 할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나처럼 24년 정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학교를 6번 옮겼고, 20명이 넘는 교장을 모셨으며 700여명의 제자를 두었다. 처음 발령을 받던 그때의 교육환경과 지금의 교육환경은 너무도 다르다. 나에게 교무실의 첫 이미지는 담배연기 가득하고 수많은 교사들과 교감선생님의 근엄한 표정이다. 그리고 신도시에 첫 발령을 받은 난 누구보다 열심히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때는 어느 정도 교사의 체벌이 허용되었던 터라 아이들을 사랑의 매라는 포장으로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였다. 그러한 결실로 제법 많은 제자들이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고 아직 주례를 서기는 이른 나이이지만 여러 번 주례를 부탁받아 직접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하였다. 당시만 하더라고 학부모들은 교사에 대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바뀌고 또 교육현장도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체벌은 말할 것도 없고 조그만 말실수가 빌미가 되어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 하여 고욕을 치루는 교사를 여럿 보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언젠가부터 난 빨리 퇴직을 하고 싶어졌다. 도무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찾을 수 있는 보람이 없었다. 세월을 한탄하며 어서 빨리 정년을 맞이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 길은 새로운 생각을 안겨주었다. 난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으면서 편안한 집이 아니라고 한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난 변하지 않고 25년전의 생각과 방법을 고집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탄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또 후회가 되었다. 묵직한 생각을 하면서 오른 탓일까 어느새 등줄기로 따뜻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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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 일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난 지금까지 어떤 잘 못된 일이나 상황을 내 잘못이 아니고 세상이 변해서 혹은 남이 잘못해서라고 위안을 삼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내가 정체해 있고 공부하지 않고 변화를 귀찮아하며 세상이 바뀌어서 교육이 힘들다고 말해왔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너무 관대하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교단에 들어섰던 해에 썼던 시가 떠올랐다.


선생님 그리기


정광준

괴성과 노래가 혼재하는 스물다섯평 공간

초록벽을 뒤로하고 선 난 행복하다

한켠으로 몸을 기울인 채 작은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하얀 도화지위로 드러나는 내 모습

난 코 끝이 찡해져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다.

손가락 10개를 곧추 세우고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라고 묻는 아이들의 선생님인

난 참 행복하다.


정말 그 때(초임시절)는 아이들이 무작정 좋았다. 처음 6학년 담임을 맡고는 퇴근하고 난 후까지 아이들과 축구하느라 늦게 집에 가곤 했다. 그 녀석들이 지금 35세의 나이이니 참 세월이 빠르긴 빠르다. 산티아고 순례 여행은 수없이 많은 유적과 아름다운 스페인의 자연환경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긴 시간동안 자신과 주변의 일들을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특히 내리막은 힘이 들지 않는 대신 속도 때문에 생각을 집중해야 하지만 오르막에서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낮고 힘들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면서 오를 수 있었다. 어느새 날이 많이 밝아지고 정상에 다다랐다. 그리고 많은 순례자들을 폰세바돈 머물게 만드는 철의 십자가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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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십자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순례자들은 폰세바돈에서 숙박을 결정한다. 물론 자전거 순례자들은 내가 묵었던 라바날 데 까미노(Rabanal del Camino)묵은 후 일찍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폰세바돈 알베르게는 일찍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철의 십자가 이곳에서 보통 자기가 버리고 싶은 것들을 버리고 온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자신이 버리고 싶은 크기만큼의 돌을 가지고 가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려면 난 1톤 정도의 돌을 지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영원히 지켜 달라는 의미로 산토도밍고 성당에서 산 묵주를 걸어놓고 오랫동안 기둥을 붙잡고 기도를 올렸다. 언제나 그랬지만 기도를 드리고 나면 가족이 진짜 많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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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십자가 옆에는 대피소가 마련되어있었고 명성만큼이나 많은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몇 시간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살아갈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번여행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의 십자가가 나에게 주는 또 하나의 기쁨은 이제 내리막이라는 사실이었다. 정말 신나게 달렸던 것 같다. 오르막에서 깊이 있는 생각의 연속이었다면 내리막에서는 속도 때문에 집중하느라 가벼운 생각을 해야했다. 언제쯤 맥주를 마시나? 혹은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등 주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생각을 했다. 워낙 긴 내리막이라 정말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리막이 거의 끝날 쯤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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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나세카(Molinaseca) 마을뒤쪽을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계곡과 아름다운 다리까지 그냥 달력 속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은 풍경이었다. 만약 오후에 이 마을을 지났다면 분명히 하루 묵고 지나갔을 것 같다. 다음에 아내와 아이와 차로 올 때는 일정을 조정해서 꼭 묵고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달려가자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인 폰페라다와 만난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겸 휴식을 위해 카페에 들러 어제 교수님 사모님이 정성껏 싸주신 삶은 계란과 카페콘레째를 한잔 시키고 사과까지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쉬지 않고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까지 내쳐 달려갈 생각 이었다. 30여 분의 휴식을 끝내고 길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배도 든든했고 무엇보다 오르막이 아니고 평지를 가면 된다는 것이 마음도 편했다. 그때 눈앞에 너무나 멋진 성이 나타났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너무 멋진 중세의 성채의 모습이 나를 자전거에서 내리게 했다. 잠깐 둘러만 보고 갈 요량으로 자전거를 잠그지도 않고 성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보다 성은 아름다웠고, 나도 모르게 성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성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자전거를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자전거를 잠그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고 뛰듯이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다행이 자전거는 그대로 있었다. 정말 십년감수 했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긴장의 끈을

놓게 된다. 다시 한 번 여행의 마지막 날 자전거를 기부하는 순간까지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커다란 사건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망쳐버리기 일수이다. 항상 조심하고 집중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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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아름다운 마을들이 많은 스페인에서 유혹은 여자도 술도 아닌 아름다운 풍경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약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서 오늘의 목적지인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에 도착했다. 그리고 역시나 알베르게를 선택하는 시간을 좀 보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알베르게에 숙소를 잡았다. 대충 분위기를 통해서 정했는데 나름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알베르게였다. 처음에 들어선 알베르게의 느낌은 아주 오래된 스페인의 전통가옥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의 딱딱한 응대가 부담스러웠다. 신발을 벗으라는 말을 너무 사무적으로 했고 예약을 했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기다리라고 했다. 이건 뭐 묵으려면 묵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었다. 기분은 조금 언짢았지만 뭐 우선 까냐그란데를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때 주인 할머니가 물으셨다. 올리브를 먹겠냐고? 필자는 올리브를 아주 좋아해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직접 담은 올리브 장아찌를 주셨는데 이게 짜지도 않고 맛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페니어에서 젓가락을 꺼내서 올리브를 집어먹었다. 이 모습이 스페인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꽤나 신기해 보였나 보다. 이사람 저 사람이 와서 구경을 하더니 이윽고 로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한 번씩 도전해 보는 이벤트가 열렸고 결과는 아무도 올리브를 집어 올리지 못했다. 한바탕 웃음잔치가 벌어졌고 분이기는 이내 아주 흥겨워졌다. 새삼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 식습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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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웃음의 파도가 지나가고 침대를 배정 받았는데 대부분 예약을 하고 온 순례자들이어서 필자는 2층 작은 방의 위쪽 침대를 배정 받았다. 허걱! 그런데 내 아래쪽 침대에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남미 아줌마가 예약을 한 것이다. 아줌마는 힘이 들었는지 오후 내내 누워있었다. 그 아줌마가 움직일 때마다 침대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날 이후로 절대로 2충 침대의 위쪽 침대에는 자리를 잡은 적이 없다. 낮잠을 청하려던 나는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 장을 봐다 점심을 해먹기로 결정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봤지만 침대가 너무 부실하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자 기온은 30도가 훨씬 넘을듯했고 햇빛은 너무 강해서 눈을 뜨기 어려웠다. 마침 배도 고프고 또 단백질이 먹고 싶어서 정육점에 가서 스테이크용 쇠고기 등심을 샀다 조금 넉넉하게 왜냐하면 밥과 국물이 먹고 싶어서 집에서 가져온 미역국을 끓여서 먹기 위해서다. 이어서 슈퍼마켓에 가서 리오와 와인과 마늘 쌀과 내일의 오르막을 위해서 에너지 바를 조금 샀다. 원래 단 음식을 즐겨 먹지 않지만 체력소모가 많은 날은 단 음식이 엄청 땡겼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스테이크용 고기를 프라이팬에 굽고 미역을 불렸다. 그리고 쌀도 씻어서 불려놓고 쌀뜨물도 받아놓았다. 그때 한쪽 식탁에서 과자를 먹고 있는 청년이 보였다. 이상하게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말을 붙이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혼자 왔냐고 물었더니 아버지와 왔다고 했다. 내가 스테이크를 권하자 미안했는지 괜찮다며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불린 미역을 올리브유에 쇠고기와 같이 볶다가 쌀뜨물을 붓고 푹 끓이며 밥을 안쳤다. 미역국이 뽀얀 국물을 만들며 끓고 있을 쯤 마늘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비록 집 간장이 없어서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아주 맛난 미역국이 완성될 쯤 밥에서도 구수한 냄새가 났다. 뜸을 들이기 위해 제일 약한 불로 낮추고 2층 침실로 올라가 아까 보았던 청년을 찾았다. 침대가 몇 개 되지 않아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아래층 침대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한국분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같이 식사하시자고 말씀드리니 괜찮다고 하시면서도 흔쾌히 내려오셨다. 그래서 미역국과 고추절임 따뜻한 밥으로 조촐하게 상을 차려서 먹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기념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신 멋진 아버지였다. 오랜만에 밥을 먹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기어이 저녁은 당신께서 대접하겠노라 하셨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듯하여 그러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설거지는 역시 대학생인 아들에게 맡겼다. 흔쾌히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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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배부름은 공포도 잊게 하는가 보다 아까 두려워서 못 잤던 잠을 너무 쉽게 깊이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스페인의 옛날 가옥은 거의 70-80cm 정도의 돌로 벽을 만들어서인지 한낮에도 정말 시원했다. 그리고 참에 나무문을 닫으면 밤처럼 깜깜해서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이 씨에스타를 즐길 수 있나보다. 주섬주섬 휴대폰과 백팩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마침 아까 함께 식사를 했던 청년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다 읽은 최인훈 선생의 ‘광장’을 선물로 줬다. 예쁘게도 굉장히 감사해 하며 받았다. 참 요즘 젊은이들의 밝음이 새삼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기운 것을 확인하고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 탐방에 나섰다. 비아블랑카 데 비에르소(Villfranca del Bierso)는 산 아래 자리 잡고 있어서 아름다운 강이 마을 가운데로 지나가고 비탈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리고 어찌된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성당과 수도원 건물이 마을 규모에 비해 많았다. 그리고 마침 수요일이어서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드리는 시간이어서 미사를 드리는 본당의 뒤쪽의자에 앉아 얼마남지 않은 여행의 순조로움과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언제나 그렇듯 기도를 드리고 나면 다소 마음이 편해 졌다. 내 마음속에도 작은 믿음의 씨앗 한 알이 떨어져 떡잎정도를 피운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소나기가 잠시 내렸던 듯 하늘은 꼭 우리나라 가을 하늘처럼 맑고 기온은 선선하다 못해 약간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때 한국의 날씨는 아마도 40도를 며칠째 웃돌고 있다고 스마트 폰에서 봤던 것 같다. 참 같은 지구별에 살아도 이렇게 다르다니 하는 새삼 무식한 생각이 들었다. 숙소 옆 성당을 나와 성당 뒤쪽에 마련된 애완견 놀이터와 아이들 놀이터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집에 있는 우리 딸 생각이 나서 얼른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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