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주 독서일기

by 쇼쉐이

1. 켄 리우,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전작 읽기를 하는 작가 중 하나가 켄 리우인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은 이 책 빼고 거의 다 읽은 상태라 꼭 읽으려고 민음사 하반기 패밀리데이 때 산 책이다.

한국 독자를 위해 여러 군데에 소개된 켄 리우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의 싱귤래리티 3부작에 이은 포스트휴먼 3부작이 등장하는데 이게 싱귤래리티 3부작의 프리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를 읽고 이 책을 읽어서 이해하기가 더 좋았다. 프리퀄이지만 왠지 시퀄 같기도 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켄 리우의 단편들답게 다채로운 문화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인 책이다. 이번 책은 특히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는데, 기계와 로봇 중심으로 전개되는 미래의 전쟁을 다룬 "루프 속에서"부터 임진왜란을 주제로 쓴 대체역사물 "북두"까지 다양한 시간대를 넘나들며 윤리와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게 인상깊었다.

이번 책에는 판타지 장르에 가까운 단편들이 많아서 흥미로웠는데, 특히 슈퍼히어로 장르를 변주한 "카산드라"가 재밌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어주지 않는 카산드라라는 신화 속 인물의 특징을 적절히 이용해 히어로와 악당의 쫓고 쫓기는 서사를 만든 게 흥미진진했다.

켄 리우 책에서는 흔치 않게도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놀랍고 재밌었고, 종교를 주제로 한 "1비트짜리 오류"는 종교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켄 리우 특유의 감성적이지만 냉철한 SF 장르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와는 약간 다른 스타일을 채택한 단편들까지 볼 수 있어서 켄 리우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

가즈오 이시구로를 좋아해서 하반기 패밀리데이에서 산 책인데,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지금까지 읽어온 가즈오 이시구로와는 결이 많이 달랐지만, 그 다름에서 오는 매력이 좋았다.

이 책은 갑작스레 시작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주인공 라이더 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이고, 지금 어느 도시에 투어를 위해 와 있다는 것뿐이다. 그곳의 호텔에서 시작해 점차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마치 우리가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는 듯이 시작한다. 심지어 라이더 씨조차도 몰랐던 과거를 갑자기 툭툭 꺼내 놓으며 전개될 때는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가즈오 이시구로보다는 카프카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고뇌에 빠진 주인공,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일들, 독자에게 불친절한 과거의 설명들까지. 아무런 대비도 없이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 듯한 분위기가 서정적이고 담백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평소 문체보다는 카프카적 문체에 가깝게 느껴졌다.

분명히 뭐가 뭔지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책인데, 묘하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궁금증이 드는 스타일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사건의 연속일 뿐인데도 갑자기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흐름이 기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달까. 2권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3. 가즈오 이시구로,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

다 읽고나서도 무슨 이야기인지 썩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다. 색다른 가즈오 이시구로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 책의 모든 기억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생판 남처럼 대하던 인물이 사실은 알고보면 가족이거나 어릴 때 친구인 경우가 종종 등장하는데, 주인공조차도 기억을 못하기에 독자는 아주 갑작스럽게 이런 사실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운데 읽다보면 조금씩 익숙해져서 문체의 맛을 느끼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곳에 공존하는 것 같은 이 세계에서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위로를 받지 못한다. 아내와의 마지막 결합을 기원하는 사람은 결코 마지막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남편이 부디 자신과 아이의 곁에 머물길 바라는 사람의 곁에는 결국 남편이 머물지 않고 떠나간다. 조용한 연습실을 원하는 음악가에게 그런 장소는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버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가 튀어 나와도,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도 굴하지 않고 살아간다. 위로란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이지만 다함께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따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어깨에 진 짐을 나눈다는 것이 유일한 위로가 되어 이들이 끝없는 반복의 고리를 견디게 해준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위로는 이를 찾기를 멈추고 나서야 찾아온다. 계속해서 순환하는 감정과 기억의 연속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어깨의 짐이 가벼워지고,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는 위로가 찾아온다.

어쩌면 위로는 찾아 헤맨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다가올 때를 기다리며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고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걸 작가는 혼란스럽게 반복되는 기억들과 그 안에 내던져진 인물들을 카프카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내려던 게 아닐까. 쉽지는 않은 책이지만 한 번은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4.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0년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인데, 번역이 별로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이번에 알라딘 리커버가 나오면서 번역도 고쳤다기에 사서 읽게 된 책이다.

읽기 전에는 "악의 평범성" 개념이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이 중심인 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악의 평범성은 책의 극히 일부분이었고, 인간 심리보다는 인류 전체의 질서와 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도 했고.

아렌트는 굉장히 중립적인 시각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룬다. 나치의 악행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법적인 시각에서 왜 나치의 행위가 처벌받아야 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아이히만과 같은 전범들을 처벌할 자격이 있는지도 살펴본다.

아렌트에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인류의 질서를 유린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을 살해했으니 당연히 그 재판권이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법적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었다. 보통 법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곳을 관할로 하니까. 만약 피해자의 국가를 관할로 한다고 해도, 당시의 유대인들에겐 적용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유대인들의 국적이 분명 이스라엘은 아니었으니까.

독일 전범들을 본인들의 손으로 처단하려는 이스라엘의 마음만큼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들을 국제재판소로 넘기지 않으려고 펼치는 주장은 분명 논리적이지 못하다. 아렌트는 나치의 만행이 단순히 "유대인들을 죽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 인간 집단이 인간들 간의 질서를 깨고 다른 인간 집단을 학살한 문제였다. 아렌트는 그렇기에 나치 치하의 학살은 인류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류 전체가 동의한 질서를 깬 이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들은 재판을 받는 중에 자신들은 그저 복종했을 뿐이란 말을 자주 한다.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아렌트는 당시 독일 나치에서 일한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걸 입증한다. 충분히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있었고,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좌천당했을진 몰라도 죽지는 않았을 거였으니까.

이들은 아렌트가 보기에는 악의 평범성을 절대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악을 절대적인 것, 강력한 것, 특이한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악은 생각보다 평범한 곳에 존재한다. 악을 저지르는 이들은 특별히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악이란 건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누구나 악한 일을 저지르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악이 만연하기에 일상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의미의 평범성이 아니라는 거다. 그저 악이 일어나기 위해 엄청나게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일 뿐. 악은 특이 현상이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평범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논지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악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면 아이히만처럼 악한 일에 복종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생각한 것보다 주제가 엄청나게 크고 깊었지만, 철학서보다는 역사서 혹은 홀로코스트 논픽션 같은 느낌으로 글이 전개되어서 많이 어렵지는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개정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의 분량도 적절하게 조정한 것 같아 읽기도 꽤 편안했다. 아렌트의 깊은 고찰이 돋보이는 책이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5.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1』

같은 작가의 『집으로 날아가다』와 이 책 중 뭘 살까 고민하다가 긴 거 좋아하는 내 취향에는 이 책이 더 잘 맞는다는 제미나이의 말에 사게 된 책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아예 인지하지 못한다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프롤로그가 굉장히 흥미로워서 도입부부터 눈길을 확 끌었다. 왜 사람들은 주인공을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걸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게 된다.

주인공은 미련하다고 할 만큼 성실하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운좋게 대학에 들어가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의 삶은 노력의 결실이 아니었다. 그저 백인들의 변덕으로 대학에 가게 된 거였어. 대학에 가서도 자기 나름대로 백인을 도우려 했던 건데 오히려 오해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암울하디 암울한 이 주인공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꿈도 많고 열정도 많던 흑인 청년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벽에 부딪혀 점차 희미해져가는 과정이 1권에서는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조금씩 암시되는 게 보여서 서글픈 마음으로 읽게 됐다. 정말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절을 베푼 것도 무식하고 멍청한 짓이 되고, 솔직하게 군 것이 예의없는 짓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읽는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꼿꼿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려는 주인공이 애처로웠다. 언젠가는 저 꼿꼿함이 꺾여 프롤로그의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릴 거란 걸 알고 있어서 주인공이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안타깝고 슬펐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주인공의 과거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달까.

과연 2권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 맑고 올곧은 주인공이 프롤로그의 시니컬하고 풍자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2권도 곧장 읽어보려고 한다.


6.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2』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 차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책이다.

흑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은 흑인에 관한 이야기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백인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려다 자신의 빛깔도, 목소리도, 자아도 잃어버린 흑인을 통해 억압하는 사회가 어떻게 한 인간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끝내는 지워버리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투명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었지만 오직 투명한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은 이들을 위해 말하고 발버둥치고 있다. 우리에게도 보일 자격이 있다고, 지워버린다고 해서 지워질 존재가 아니라고.

처음에는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깊고 근본적인 고찰에 빠져들게 된다. 다만 번역이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대사톤이 부자연스러웠고, 나, 저와 같은 대명사가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기에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제가 굉장히 좋아서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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