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은 이번 여름에 읽었는데, 교환독서를 계기로 재독하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재독해보고 싶던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재독하게 되어서 좋았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우라스라는 사회와 이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오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뭉쳐 사회주의적 신념 아래 건립한 아나레스라는 사회를 병치하고 있다. 시간 물리학 이론의 새로운 장을 열 아나레스 출신의 물리학자 쉐벡을 주인공으로 두 세계를 비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비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두 세계가 비슷한듯 다르다는 걸 보여주며 소유라는 개념에 의해 모두가 억압당하는 우라스의 참극을, 공동체라는 이상에 의해 짓눌리는 아나레스의 비극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아나레스의 시선에서 본 우라스는 지옥과도 같다. 모든 것이 소유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되는 곳. 화려한 껍데기 속은 썩어버린 곳. 사람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곳. 아나레스는 그런 우라스에서 사람들을 구해내어 깨끗한 사회를 일구어나가는 곳이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척박한 땅에서 나는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는 곳. 자신의 적성에 맞추어 일하는 곳.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나레스가 천국인 것은 아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아나레스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직업을 "선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들 중앙 컴퓨터 디브랩이 배정한 곳으로 일을 하러 간다. 선택은 존재하지만, 결코 실행되지는 않는다. 선택을 하는 순간 공동체의 눈밖에 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이처럼 르 귄은 결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둘 중 무엇이 "우월"한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두 가지의 사상이 한 사회를 지배할 때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상세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어떤 한 가지가 극단으로 달려간다면, 그 사회는 이상의 구현이 아니라 뒤틀린 이상이 되어버린다는 걸 보여준다.
르 귄의 통찰력은 정말 너무나 뛰어나서 아름다울 정도다. 이 책은 분명 먼 우주의 이야기를 다루는 SF이지만, 우리의 사회와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우라스와 아나레스 모두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 덕에 우리 자신을 비판적이고 객관적으로 성찰해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말고도 자유와 소유에 대해 그리고 시간의 연속성과 동시성이라는 측면에 대해 아주 치밀하고 깊게 다룬다. 인간에게 저 두 개념이 갖는 의미를 탐구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살펴본다.
자유와 소유는 반대의 개념처럼 보인다. 소유된다는 건 자유롭지 못함을 뜻한다. 하지만 자유와 소유가 아나레스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반대되는 것일까? 인간에게 소유하지 말 것을 강요할 수 있을까? 소유한다고 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소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아나레스인들은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공동체에 얽매여 자신의 자유를 선택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시간에도 적용된다. 쉐벡에게 시간은 연속되는 것이자 동시에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하나로 흐르지만 통째로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에서 현재를 떼어낼 수는 없다. 과거의 결과와 미래의 가능성이 현재를 형성한다. 시간 속의 그 무엇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시간은 서로 간섭하고 참여하며 형성되는 것이니까.
이 책은 자유와 소유에 대해서 시간에 대한 관점과 같은 선택을 한다. 쉐벡은 소유하는 자가 아닌 나누는 자가 되기를 택한다. 자유롭기 위해 모두와 소유를 나눈다. 모두가 소유한다면, 모두에게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자유와 소유는 서로를 고려하고 나눈다면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은 소유를 나눌 수 있고, 자유롭게 나눔을 택함으로써 능동적이고 탁 트인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수많은 주제에 대해 깊고 섬세하게 고찰하게 될 것이다. 르 귄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길잡이 삼아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해, 시간의 연속성과 동시성에 대해, 도덕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이 책을 통해 르 귄을 사랑하게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