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일치를 기다리며 내가 노래를 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

by 쇼쉐이

이 책은 정말 단순하게 "20세기의 디킨슨"이라는 문구와 앞의 시 몇 편을 미리보기한 거에 반해서 산 책이다. 시집은 취향이 아닐 경우가 많아서 웬만하면 빌려보는 편이다. 근데 이 시집은 보자마자 이건 완전 내 취향일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그냥 고민 없이 샀다.

​크릴리의 언어는 디킨슨과 많이 닮아 있다. 아름답게 비튼 문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처음 봤을 때 단번에 머릿속에 들어오거나 이해되도록 쉽게 쓰인 시는 아니다. 단어와 쉼표의 나열로 보일 만큼 짧게 끊긴 문장들은 연과 연 사이를 넘나들며 아름답게, 심오하게 흘러다닌다.

하지만 이 흐름이 너무나 반짝거려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렵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데, 그 흐름이 내 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것도 온몸으로 느껴진다. 머리가 아니라, 눈이 아니라 온몸을 다해 읽어야만 하는 시라는 게 약간의 전율과 함께 전해진다.

디킨슨과 크릴리가 시의 형식과 문법의 측면에서 많이 닮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크릴리가 디킨슨의 답습인 건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 예술에 천착하던 디킨슨과는 달리 크릴리는 유머러스하고 재치있게 사람 간의 관계와 사랑에 천착한다. 디킨슨이 뚝뚝 끊기는 시로 홀로 있음의 아름다움과 고독함을 노래했다면, 크릴리는 뚝뚝 끊기는 시로 함께 있음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같이 있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 노래한다.

당신이 그녀를 / 사랑한다고 해서, 그녀도 당신을 / 사랑한다는 걸 어찌 증명하겠어요, 그냥 / 일어나는 일, 아주 희박한 가능성에 / 당신 자신을 거는 수 / 밖에요? ("비즈니스", 41페이지)

사랑한다는 건 사실 일방향적인 거다. 내가 사랑한다고 상대가 나를 사랑하리라는 법도, 상대가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상대를 사랑하리라는 법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하는 행위를 시인은 자신을 희박한 가능성에 거는 일이라 말한다. 돌아올 것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을 바치는 일. 함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걸고 임하는 일.

"절망하는 남편의 발라드"에서는 이런 일방적인 사랑의 절박함이 잔뜩 묻어나온다. 다투고 집을 나간 아내를 "가장 어여쁜 여인"이라고 칭하며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다투었음에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말한다. 그러니 "오 여인아, 제발 시간을 줘, / 제발, 이 노래를 마칠 수 있게." (59페이지) 라고 말하며 이 노래를 들어달라고, 끝까지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시인의 사랑은 원활한 소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언어는 이 사랑을 타인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예 말하지 않는다면, "모든 욕망은 / 추상적으로 변하고 / 결국에는 죽어" ("사랑", 191페이지) 버리기에 우리는 언어로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한다. 시인은 "무심히 주고받는 소통 속에서도 / 뭔가가 깨어나기 마련이지요." ("공모", 39페이지)라 말하며 그 어긋나는 소통의, 이따금씩 일어나는 우연한 일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뚝뚝 끊어지는 언어만이 전할 수 있는 깊은 진심과 외로움을 크릴리는 재치 있는 조합을 통해 전달한다. 시인 개인의 외로움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 모두가 느끼는 본질적인 외로움으로 확장해 전달한다. 사랑하기 어렵고 소통하기 어려운 것은 그대 하나가 아닐지니, 언젠가 찾아올 우연의 일치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말하라고. 그러면 언젠가는 그 단절적인 언어가 가닿는 타인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그렇지 못해도, 말하지 않고 내 안의 것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뚝뚝 끊어지는 소리로라도 노래하는 것이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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