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2.
"잠깐만, 진짜로 도넛이라고?"
모두의 어리둥절함을 대변하듯 라희가 말했다.
"발신지가 도넛 맞아."
그 사이에 간단한 분석을 끝낸 민강이 답했다.
"그러면 리더기, 아니, 아현이 도넛으로 가야 하는 거야?"
모두가 황당하긴 했나보다. 마침내 라희가 나를 본명으로 불렀다.
"일단 위에 보고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이안이 말했다.
"그러다 대처가 늦으면?"
"일단 메시지는 받았다고 답하고 대화는 나중에 하자고 하면 되지."
내가 라희의 질문에 답했다.
아 그러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메시지를 수신했다고 답하고, 대화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곧장 상부에 보고를 했다. 담당 공무원은 도넛이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가 녹음한 걸 들려주고 나서야 약간 믿는 눈치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마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오늘이 조사 끝인데, 이어서 하는 걸까?"
내가 물었다.
"예산 다시 배정받고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혜린이 말했다.
"그렇다고 조사를 포기할 수는 없을걸. 일단 아현은 계속 남아 있어야겠다. 도넛이 원하는 게 아현이잖아."
이안이 말했다.
"나 혼자? 난 할 줄 아는 게 책 읽는 것밖에 없는데?"
혼자만 남을 거란 생각에 당황한 나는 불쑥 말했다.
"뭐 어쨌든 너는 있어야지. 우리도 같이 남을 수도 있고. 일하던 사람이 계속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라희가 말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메시지를 계속 분석하느라 전화기에 가장 가까이 있던 민강이 전화를 받았다. 민강이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뭐래?"
"우선 정부 측에서 접촉 시도한다고 우리는 대기하고 있으래."
혜린의 물음에 민강이 답했다.
"아현이 여기 있는데 얘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낸다고? 도넛이 원하는 건 얘잖아."
이안이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정부에서는 격식을 갖추어 총리를 보낸다는데. 일단 지켜봐야지. 누가 TV 좀 틀어봐."
민강의 말에 우리는 모두 방송실 한구석에 있던 TV를 켰다. 모든 채널에서는 정부의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담화를 하는 중이었다.
"... 도넛이 5년 만에 우리에게 응답하였고, 우리는 곧 총리를 보내 그들의 접촉에 답할 생각입니다. 도넛은 우리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으로 보이며 조사단이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그냥 여기 있으면 되는 건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도넛으로 가야 해? 내일부터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학교에 못 간다고 연락해야 하나. 강의 준비도 다 했는데. 도넛은 왜 이제 와서 답한 거지? 그 마지막 인사 때문에? 아니 말을 할 줄 알면 진즉에 답을 하지. 그럼 이런 문제도 없잖아. 지금까지 라디오 다 듣고 있던 건데 뭐라 말이라도 해주지. 말도 깨쳤으면서 왜 입을 다물고 있었담?
온갖 생각을 하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톡톡 쳤다. 뒤돌아보니 혜린이었다.
"아현, 저것 좀 봐."
혜린의 손끝을 따라가니 창 밖의 도넛이 보였다. 도넛 가까이로 비행체 하나가 다가가고 있었다.
"저게 정부에서 보낸 건가봐."
도넛 앞에 도달한 비행체는 영상을 송출했다. 영상을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뉴스에서 동시 방송을 하고 있어서 TV로 보았다. 영상 속의 총리는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대화를 하기 위해 왔으며,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당신들이 왜 여기 왔는지이지 당신들을 당장 쫓아내거나 공격하려는 건 아니라며 문을 열어달라 말했다.
나는 도넛이 문을 열어줄 줄 알았다. 근데 도넛은 문을 열지 않고 아까의 그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우리는 라디오 하는 인간 외의 그 누구와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비행체에 그 인간이 타 있다면 그 인간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 인간을 데려오길 바랍니다. 그 전까지는 문을 열지 않을 거고 대화도 하지 않을 겁니다."
총리는 그 인간, 즉 나에게는 정부를 대리할 권한이 없어 당장은 여기로 오지 못하니 나를 데려오기 전에 자신과 대화하자 말했다. 하지만 도넛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총리는 몇 마디 더 했지만 여전히 도넛은 답하지 않았고, 결국 비행체는 되돌아갔다. 그리고 비행체가 행로를 바꾼 순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모두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도넛 연구조사단 소속 영문학자 아현입니다."
"아 네, 박사님. 여기 총리실인데요. 지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속보 보셔서 아시겠지만, 도넛이 아무하고도 대화하려 하지 않네요. 박사님이 오셔야 해결될 것 같아요."
"어... 그럼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 혼자 가나요?"
"저희가 모시러 갈 거고요, 조사단에 생물학자랑 언어학자 두 분만 일단 동행할게요. 연구 자료를 최대한 모아야 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전화 내용을 넷에게 전했다. 민강과 이안은 그동안 도넛의 메시지를 분석해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다 찾아보겠다 했고, 혜린과 라희는 필기구를 챙겨 나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며 우리는 도넛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생명체들은 우리처럼 생겼을까에 대해 빠르게 대화를 나눴다. 혜린은 직립 보행은 맞을 것 같다 말했고, 라희는 팔이 여러 개 달린 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나는 키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문을 나서자 우리를 데리러 온 차가 보였다. 우리가 차에 타자마자 차는 곧장 비행장으로 향했다. 비행장으로 향하는 동안 정부 관계자들은 온갖 안내 사항을 쏟아냈다. 도넛이 문을 열어주더라도 안에 있는 걸 함부로 만지지 마라, 말은 최대한 정중하게 해라, 우주복을 줄 건데 갑갑해도 헬멧 벗으면 안 된다, 생명체의 외관을 최대한 정확하게 스케치해라, 대화를 길게 끌어가서 왜 지구에 왔는지 알아내라 등등. 혼자 왔다면 다 기억하지도 못할 지침들이었다. 우리에게 우주복을 입혀주는 동안에도 지침은 쏟아졌고, 우리는 이걸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불안이 앞섰다.
지침의 홍수가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비행체에 올랐다. 직접 도넛으로 가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책을 읽어준 게 영 헛된 건 아니었나보다. 그 사이 말을 다 배우고. 왠지 내가 도넛을 키워낸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말을 하다니, 감격스러웠다. 근데 왜 나하고만 이야기한다고 하는 거지? 익숙해서 그런가. 설마 진짜 낯가리는 건가?
내가 고민하는 사이 비행체는 도넛의 문 앞에 다다랐다. 모두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조종사가 건네준 마이크를 잡았다.
"어... 안녕하세요, 도넛. 제가 그 라디오 하던 인간인데요.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대화 가능해요?"
와, 내가 한 말이지만 정말 미치도록 간단하고 어색했다. 도넛도 어색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혹시 내가 뭐를 실수해서 도넛이 또 벽창호 상태로 돌아간 거면 어쩌지 싶어 긴장하던 찰나, 도넛이 말했다.
"반가워요. 괜찮다면 안에서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괜찮나요?"
"네 괜찮아요. 근데 제 동료들도 같이 가도 될까요? 함께 연구하는 동료 두 명이에요."
도넛은 잠시 망설이더니 동행으로 두 명까지는 괜찮다며 문을 열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우리 셋은 천천히 문을 나서 도넛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