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처럼 놓인 보도블록 몇 개를 밟고 가야 나오는 그 화장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아홉 살, 열 살의 가을밤을 불러온다.
우리집 마당 구석에 버려진 듯, 숨겨진 듯 놓인 그곳에 가려면 파리나 나방 같이 매일 다른 먹이가 걸려 있는 거미줄을 최소 3개 이상 지나야 했고, 자꾸만 사람 다니는 길로 줄기를 내미는 앵두나무와 기분 나쁘게 종아리를 스치는 잡초들을 뿌리쳐야 했다. 맨드라미와 사루비아가 보이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화장실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을 찰칵 켜는 순간, 우글우글 많을 때는 열 마리도 넘는 귀뚜라미들이 하던 얘기를 딱 멈춘다.
헉! 많기도 한 그 숫자에 나도 기가 딱 막힌다. 들으나마나 내 뒷담화였을 텐데 짐작해보면 대략 이렇다.
“얘들아, 이 집에 사는 그 겁 많은 여자 애 알지. 너무 웃기지 않니?”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이리 피하면 지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 지도 그쪽으로 움직인다니까. 그래 놓고 소리는 지가 다 질러.”
“아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지 생각해서 피해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죄밖에 없잖아. 그것도 목숨을 걸고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진짜 어이가 없다니까!”
귀뚜라미들의 비난과 야유에도 모른 척 엉덩이를 척 까고 똥을 누는 아이였으면 참 좋으련만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야, 빨리 들어가라니까. 내가 왜 맨날 니 똥 싸는 거나 기다리고 있어야 하냐고. 추워, 춥단 말이야.”
억지 춘향이로 동행한 언니의 짜증과 협박에 못 이겨 엉거주춤 자세를 잡아도 신경은 온통 그들에게 가 있었다.
‘더듬이는 왜 저렇게 길어? 움직이는 게 너무 징그럽잖아.’
‘45도로 꺾어진 저 뒷다리를 쫙 펴면서 튀어 오르는 거겠지? 다리 끝에 난 털 좀 봐.
내 엉덩이로 튀어오르는 거 아냐?’
‘불빛에서 보니까 속에 이상한 무늬까지 다 들여다보이네. 으악, 소름 끼쳐’
두려움 속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한 놈 한 놈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어느새 귀뚜라미는 나만해지고, 나는 귀뚜라미만해져 있었다. 똥이 쏙 들어간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럴 거면 왜 오자고 했어. 또 오자고 그러기만 해봐. 응?”
언니의 핀잔을 들으며 아무 성과 없이 징검다리를 되짚어와야 했다.
밤보다 밤똥이 무서워 밤이면 밤마다 조마조마했고, 그래서 더 밤똥이 마려운 것만 같았다. 참아도 참아도 참을 수 없는 날에는 아빠, 오빠, 언니 중에 그날 컨디션이 가장 좋아 보이는 한 사람을 골라 앞을 세웠다.
제 아무리 늦둥이 귀염둥이 막내라도 내 밤똥은 온 식구의 불청객이었다.
어제 아침,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 변기에 앉았는데 화장실 문틈에서 은색 좀벌레 한 마리가 불빛에 놀라 움찔하는 게 보였다.
‘잡아? 말아? 애들 옷에라도 들어가면? 그건 절대 안 되지!’
재빠르게 오른 손에 붕대를 감듯 화장지를 칭칭 감아 온 힘을 다해 그 작고 반짝이는 생명체를 짓이겼다. 짓이기고 또 짓이겼다. 그런데도 나의 벗은 허벅지에는 순식간에 닭살이 올라왔다.
‘아, 이게 대체 이럴 일이냐고’
벌레와 나, 나와 벌레 사이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도무지 진전이 없다.
마주하는 순간, 30년 전 그 화장실로 go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