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호주 멜번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by 마틴

이곳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야간 근무가 없어지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간 근무만 한 지가 10개월째 되었을 때이다. 풀타임이다 보니 아침에 이곳 비스트로(상설 레스토랑)에 오면 종전의 디시와시 일보다는 셰프들이 런치나 디너에 쓸 음식 재료들을 만드는 일(일종의 프렙)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곤 하였다.


요즘 그 보조 역할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레스토랑 키친에서의 일이란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고 많은 일을 하나하나 천천히 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치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야 하듯 말이다. 그러다 보니 ‘천 리 길도 한 걸음’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속담이 자주 머리에 떠오른다. 젊었을 때는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고 쉽게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 와서는 일이라는 것이 순서가 있는 것이고 하나하나 인내를 가지고 해야만 성과가 난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처음 이곳 3층 펑션에서 캐주얼로 일했을 때는 저녁 6시에 키친에 들어가면 오전에 셰프들이 저녁이나 다음 날에 쓸 음식들을 만들며 사용했던 각종 트레이며 포트와 도구들이 싱크대 위에 산더미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이걸 어떻게 다 치우나 싶어 숨이 턱 막히곤 했지만, 처음부터 하나하나 손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큰 싱크대에 더운 물을 채우고 세제를 넣은 다음, 트레이에 묻은 기름과 찌꺼기들을 먼저 제거했다. 그것들을 물에 불린 뒤 하나하나 솔로 문질러 씻어고 깨끗한 물로 헹구어 제자리에 배치하고나면 두어 시간 이후 저녁 음식 배분이 시작되고 이후 웨이팅 스태프들이 각종 플레이트와 스픈및 포크들을 가지고 오고 한편에서는 음식을 만든 추레이며 포트들이 또 들어오기 시작한다.


플레이트와 포크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팀원들이 식기 세척기에 넣어 세척하는데 추레이며 포트들이 우리 장소에 들어오면 숨이 또 탁탁막히는데 나랑 같이 일하는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키가 큰 흑인 아이조차 엌엌하면서 숨쉬기를 힘들어 하였는데 내가 등을 툭툭 두드려주면서 ‘그래 큰소리로 소리쳐라’ 말하곤 하였다.


이후 퇴근 전 마지막으로 바닥을 스위핑하고 모핑하는 것으로 일을 마쳤는데 숨이 턱 막혔던 처음의 순간이 하나하나 손질되어 끝났을 때의 그 시원함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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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타임으로 전환된 후 아래층 비스트로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셰프들이 음식을 만들기 위한 보조 재료 준비를 시키곤 했는데, 이것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가는 일이었다.


아침에 키친에 도착하자마자 한 시간 먼저 온 셰프들이 이것저것 만들고 난 도구들을 손으로 닦아 디시와셔에 넣는 작업을 하며 약 한 시간을 보낸 후, 셰프들이 만들어 싱크대 위에 열기를 식히기 위해 널어 둔 각종 파스타와 리조또(밥)를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1인분씩 담아 스티커에 날짜를 일일이 적어 붙인 뒤 냉장실에 차곡차곡 보관하는 데 40분 정도가 걸린다.


그다음에는 대형 박스로 들어온 파슬리 잎을 물에 깨끗이 씻은 후 마른 수건에 겹쳐 물기를 제거하고, 잎을 하나하나 떼어 큰 볼에 담았다가 다시 꺼내 도마 위에서 차핑(다짐)해 컨테이너에 담아 냉장실에 보관하면 또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때부터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면 음식 만들고 난 팬과 각종 도구, 웨이팅 스태프들이 서빙한 접시들이 들어오고, 이를 와싱 머신에 넣어 세척하며 두 시간 반 정도를 보내면 어느덧 오후 3시 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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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과 함께 30여 분 점심을 먹고 잠시 쉰 후(이때 셰프들은 약 2시간의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다), 남은 식기들을 세척하고 서너 군데의 쓰레기를 모아 버린다. 각종 원재료 종이 박스들을 납작하게 만들어 밖에 내놓고 키친 바닥을 쓸고 모핑하면 거의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보통 5시 50분쯤 일을 마치고 나온다. 이것이 나의 통상적인 하루 일과였다.


어느 날은 한 바스켓의 머슬(홍합)을 물에 서너 번 박박 씻은 뒤, 홍합에 달린 실 같은 줄기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마리나라(해물) 파스타에 쓰이는 재료로, 이 작업만도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그다음에는 냉동 상태로 들어온 새우를 씻는 작업이 있었는데, 베트남에서 들여온 새우가 상하지 않도록 잘게 다진 마늘을 잔뜩 섞어 냉동해 온 것이어서 대형 봉지 일곱, 여덟 개를 풀어 찬물에 해동한 뒤 마늘을 일일이 제거하고 컨테이너에 다섯 개씩 나누어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


이어 마늘 한 봉지(약 200여 개)를 강판으로 슬라이스하는데, 한 개당 열 조각 정도로 얇게 썰어야 한다. 파스타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다. 한국에서는 절구에 빻아 쓰지만 이곳에서는 슬라이스를 한 것을 음식만드는 팬에 넣어 요리한다. 이렇게 썬 마늘은 플라스틱 컨테이너에 담아 올리브 기름을 붓고 날짜를 적은 스티커를 붙여 냉장고에 보관한다.


또 베트남산 매운 작은 고추 한 봉지(약 200여 개)가 들어오면 이것 역시 하나하나 칼로 열 조각 정도로 슬라이스해 컨테이너에 담고 기름을 부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다 보면 몸이 비틀리고 매운 고추 냄새에 눈물이 나지만 손으로 눈을 비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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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슬, 새우, 파슬리, 마늘, 고추 작업은 대부분 서서 손으로만 하는 일이라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시큰거리지만 셰프들이 모두 젊다 보니 그들이 저장해 온 노래를 틀어 함께 듣기도 하고,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장난기 많은 셰프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한다. 여성 셰프에게 농담을 던져 웃기면 무슨 말인지는 잘 몰라도 따라 웃곤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게 되었고, 처음 일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20년 이상 나지만 늘 친구처럼 대해 주면서,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플리즈” 하며 어른을 대접해 주는 마음씀씀이도 잊지 않았다.


일주일 지난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보면, 전날 사용한 모든 파이어탑(불판) 도구들이 기름 제거 화학액에 담겨 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조심스럽게 눈에 튀지않게 솔로 닦고 물로 세척하면 두 시간가량이 훌쩍 지난다. 예전에는 월요일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니 짜증도 한결 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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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선별 작업, 파슬리 차핑, 머슬 불순물 제거, 마늘과 고추 슬라이스, 키친 청소 등은 모두 손대는 순간부터 시작이고,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하다 보면 어느새 일이 끝나 간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잡생각 없이 일을 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이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준 초기의 셰프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레이시아 셰프는 예전에 나에게 한국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당시 부인과 별거 중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 친구가 한국 여성과 결혼했는데 남편에게 그렇게 잘해 준다며 부러워했다.
5년 전 키친핸드로 우연히 나를 선택한 이유도 한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 역시 여기서 일하며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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