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 비타민 같은 제자들 2

by 단단씨

아이들이 다 가고 상처 치료한 쓰레기를 모은 봉투를 버리러 가다가 하늘을 보았다. 속마음까지 들킬 것 같은 파란 하늘. 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오늘처럼 기운 솟게 하는 제자가 떠올랐다. 긍정으로 뚤뚤 뭉친 제자! 스승의 날에 유일하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는 제자였다. 이 제자를 처음 만난 지 이십 년이 되어간다.

정식발령을 기다리다가 기간제로 중학교 보건교사 일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천식으로 고생하여 침대에서 발작적인 기침을 하다가도 어느새 콩알콩알 떠들어댔는데. 그 학생이 말하면 열심히 들어주고 적절히 받아주기만 했는데. 그런 나에게 고맙다고 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학생이 나를 찾아 경기도에서 인천까지 온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뭘 하면 가장 좋을지 고민하다가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을 찾아뵙기로 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참으로 기특한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다들 들떠서 난리일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좋았던 선생님을 찾아뵙는 거라고 하니. 그때는 신종플루(현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난 뒤라 심신이 지쳐 쓰러질 정도였는데 제자의 뜻깊은 방문으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대부분의 병은 마음의 병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말을 몸소 체험한 귀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만두고 난 뒤에도 몸이 아파 공부를 못해 일반고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에 정신을 차렸다고.

“이번 역은 젊은이들이 가는 대학… ○○대학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나라고 못가라는 법 없지. 나도 대학이라는 데에 가야겠다.’라는 오기가 들었다면서. 여전히 긍정 발동! 정말 잘 자라주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인성이 반듯한 청년으로.


이런 제자라 더 보고 싶고 소식이 궁금했다. 그동안 문자를 받기만 하다가 유일한 제자에게 잘 지내고 있냐는 문자를 보내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자 퇴근길 종소리마저 서운하게 들렸다.

저녁 무렵 문자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반갑게 울렸다. 전화기를 두고 나왔다는 답변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오늘 폰을 놓고 나갔다 오는 바람에 이제야 봤네요. 저는 졸업하고 모교 대학에 자리 잡고 좋아했는데 불과 넉 달 만에 국립대학 통합문제 나오면서 학교 직원들이 잘리게 되는 바람에 ㅎㅎ 현재는 백수요…”

지금은 잠시 백수로 있다는 문자. 어엿하게 직장인으로 잘 지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잘렸다고 하니… 요즘 청년 취업이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데… 걱정이 걱정을 물고 또 걱정이 되어 밀려왔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자의 일이 잘 풀리지는 않겠지만, 보고 싶다. 조만간에 보자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 하나에도, 학생들의 작은 정성에도 신이 나는 이런 내가 교사가 됐다는 게 신통방통하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들과 거리를 뒀는데. 선생님을 잘 만나지 못해 인생이 꼬였다는 탓을 하며 보냈는데. 이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교사가 되었으니 어찌 보면 운명은 모순이 아닐까? 보건 선생님을 잘 만나 ‘내 몸이 좋아졌다!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언행일치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스트레스 덜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애들을 대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중에 나를 떠올리며 학창 시절이 덜 아팠고, 덜 힘들었고, 더 즐거웠다고 말하는 학생이 생길 수도 있을테니.


“비타민 같은 제자들아, 모두 사랑해! 너희같이 착한 아이들을 만나서 너무 좋단다. 앞으로 고민 있으면 찾아와서 털어놔. 잘 들어줄게. 단, 엄살은 사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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