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 도망자가 1등이 된 까닭은?

by 단단씨

살아오면서 웃음과 눈물이 엉켜 있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며 찾아온다는 것을. 심지어 도망 다니던 아이가 100미터 달리기 1등이라는 부딪치는 경험이 나란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작은 촌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논과 밭, 기다란 둑과 그 길을 따라 바다까지 이어지는 강줄기가 평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노을이 주황색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일 때쯤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올랐고, 부모나 형제자매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겨운 마을이었지만, 우리 집 안은 늘 팽팽한 긴장과 차별이 가득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남아있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들이 아닌 막내딸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게다가 내가 평생 기억하는 아빠는 뇌졸중으로 한쪽 몸이 불편한 모습이었다. 몸이 아픈 아빠 대신 엄마가 돈을 벌러 다녀야 했다.

발음이 어눌한 아빠는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지저분한 것을 못 보고, 역정을 자주 내셨다. 말을 조금이라도 안 들으면 매를 들었다. 매는 ‘사랑의 매’처럼 정해진 매가 아닌 손에 잡히는 데로 아무거나 들어 때리곤 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맞았는데, 아마 고집 세고 청소를 안 한다는 이유였던 거 같다. 그러면 나는 신발도 안 신고 후다닥 도망치기 일쑤였다.


나보다 세 살 위인 오빠도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누나에게도 지지 않고 박박 대들던 반항을 일찍 시작한 오빠였다.

“네가 나 대신 청소 좀 해!”

“왜 내가 청소를 해? 오빠 일이잖아, 오빠가 해!”

오빠가 시키던 일을 안 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으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나는 신발도 안 신고 후다닥 도망가거나 앞마당에 자라고 있는 키가 훌쩍 자란 들깨밭으로 들어가 바짝 엎드려 숨어 있곤 했다.

“빨리 나와라, 열 받기 전에. 내가 찾으면 너 죽는다.”

마치 공포영화처럼 인상을 잔뜩 쓴 오빠가 끝까지 깨밭을 뒤지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귀찮은지 마당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아빠랑 오빠에게 매를 맞을라치면 번개처럼 재빨리 도망간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숨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가운 비가 후드득 내리는 날은 최악이었다. 비를 흠뻑 맞으며 담벼락 밑에서 또는 뒷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 위로 올라가 오들오들 떨며 기다려야 했다. 친구들이 볼까 봐 몸을 최대한 웅크리면서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도망갔다고 매를 더 맞을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날은 이상하게 도망간 기억이 적다. 아마 그때는 엄마가 곁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결혼한 둘째 이모가 모시고 살던 외할머니는 차별 대우가 심했다. 딸 셋만 낳았던 외할머니는 나랑 나이가 같은 남자 사촌에겐 사탕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오호, 공부를 잘해서 상을 받았어? 잘했다, 잘했어! 이제 겨울 방학이니 공부 더 열심히 하거라.”

나한테는 주름진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내셨다.

“여자애가 상이 뭐가 필요해? 너 때문에 쟤가 상을 못 받으면 어떡해?”

“왜 나는 칭찬 안 해줘요? 공부 열심히 했는데. 할머니 미워!”

나는 할머니에게 밉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겨울 둑길을 뽀드득 나는 소리로 가르며 집을 향해 힘껏 달렸다. 조금 뒤 둑길이 보이는 집 마루에서 눈에 익은 옷차림을 한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씩씩거리며 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힘이 넘치는 할머니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외할머니는 나만 미워해. 같은 여자이면서 여자를 더 싫어하는 게 말이 돼? 정말 모를 일이야. 흥, 아들이 뭐가 그리 좋다고. 할머니, 메롱!”


같은 또래인 사촌이 학교를 1년 일찍 간다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빨리 보내달라고 떼를 쓰며 엄마를 조르고 졸랐다.

“나이가 같은데, 내가 왜 오빠라고 해야 해? 나도 보내줘, 보내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보건지소에 데리고 가 학교를 보내도 되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렇게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간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달리기 시합에서 5등을 도맡아 하곤 했다.


도망가는 내 실력이 시나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옷자락을 잡히기도 해서 더 맞았다. 다음에는 신발을 신는 시간에 잡혀 신발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고무신을 신으면 벗겨지기 일쑤여서 신발을 들고 뛰었다. 4학년이 되자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갑자기 1등을 하기 시작했다. 출발이 번개처럼 빨랐고, 바람을 가르는 순간 몸이 시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질을 피하려고 도망 다녔던 내 실력이 달리기에서 1등을 선사했다. 운동회에서 손등에 ‘1’이라는 도장이 행여 지워질까 봐 손을 씻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도망 다녔던 나만의 축적된 경험이 단거리를 잘하게 된 아이로 만들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차별과 같은 부당함이 언제나 상처로만 남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 속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힘, 버틸 수 있는 체력, 그리고 언젠가 웃으며 꺼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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