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 백의의 천사와 어울리지 않아

by 단단씨

삶은 참 얄궂은 녀석이다. 아무리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고 애써도 결국, 지나고 나서야 열쇠를 내 손바닥에 올려주니 말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꾸로 돌리며 회상에 잠긴다. 이제 중년이 된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나의 반항은 고등학교 때 절정으로 치달았고, 성적은 밑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래도 많은 꿈을 꾸었다. 달콤한 꿈은 사춘기를 달래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내가 가진 꿈 모음집엔 ‘간호사’란 직업은 없었다. 사람을 병원에서 만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싫다는 나에게 엄마는 가정 형편상 취업이 잘 되는 전문대학인 간호학과로 무조건 가라고 명령했다. 길을 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몇 대 처맞은 느낌이었다.


지방대학 합격 통지서와 고등학교 책, 필기했던 노트들을 꽁꽁 언 앞마당에 한데 모았다. 부모님에게 보란 듯이 불을 질렀다. 고등학교 3년이 재가 되어 눈앞에서 겨울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고개를 들어 암울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기 싫은 간호대학을 억지로 다녔다. 성미가 급하고 덜렁이는 내게 기본 간호학 과목에서 침구 정리 실습은 진짜 별로였다.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간단한 침대 시트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 다른 과목은 암기 과목이라 할 만했다. 간호대학은 일정이 빡빡해서 주말에도 수업을 듣는 날이 많아 내가 대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어느 정도 적응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앞에 진짜 최악이 시커먼 입을 쩌억 벌리며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주사를 귤에 몇 번 찔러보고, 정해진 파트너와 팔을 교환하며 혈관에 주삿바늘을 찔렀다. 파트너는 한 번에 내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정확히 찔러 성공했다. 왼손잡이인 나는 하얀 피부를 가진 파트너의 가느다란 팔을 만지며 주삿바늘을 찔렀다. 1차 실패. 다시 시도했다. 2차 실패. 마음 좋은 친구는 통증을 참아가며 팔을 다시 대줬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눈앞이 하얗고, 식은땀을 흘리던 나는 3차 실패. 하얀 친구 팔뚝에 시퍼런 멍이 세 군데 또렷하게 생겼다. 그날 주사 트라우마가 생겼다.

실습 교수님은 오른손으로 재차 설명했고, 왼손잡이인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들 팔을 실험 삼아 여러 번 찔렸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재능 없는 왼손잡이인 내가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물음표가 생겼다.


초를 들고 엄숙하게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면서도 동기들 사이에 있던 나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간호사로 잘할 수 있을까?’

‘주사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간호사가 아니면, 뭐하고 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구석으로 몰고 갔다. 하지만 뛰쳐나갈 방법이 없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을 그만둘 수 없었다. 수업료를 벌기 위해 방학 동안 공장 아르바이트, 마트 아르바이트에 조카 과외도 모자라 근로장학금도 신청하며 다녔다. 그만두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더 열심히 공부할걸. 그랬으면 달라졌을 텐데. 그땐 왜 몰랐을까?’


의심의 꼬리를 미처 자르지 못하고, 꾸역꾸역 학교와 실습 현장을 다니다가 졸업을 하게 됐다.


고등학생들이 나처럼 후회하는 진로를 선택하지 않으려면 결국 공부해야 한다.

“공부 말고도 다른 방법은 많잖아요?”라고 되묻는다면 덤덤하게 말해줄 것이다.

“…네 말이 맞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너의 시간과 고통으로 값을 치러야 할 거야. 그러니 남들 공부하는 시간에 차라리 같이 공부해. 내 말이 믿기지 않지? 더 살다 보면 이해가 될 거야.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이, 꼰대처럼 말하시네요."

"내가 말하는 공부는 시험을 잘 보는 공부도 있지만, 자기가 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야. 노래는 노래. 춤은 춤. 요리는 요리. 시험은 시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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