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 늦었지만, 사직서를 제출했다

by 단단씨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잠시 멈추고 다가오는 신호를 기다리길 바란다. 원치 않는 시작이더라도, 거기서 얻은 깨달음은 결국 당신을 새로운 출발로 이끌어 주리라 믿는다.


병원 실습을 하면서 정신과를 알게 되었다. 정신과라는 공간이 어린 시절 상처가 있던 나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기가 네 자리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졸업하면서 인근 병원을 지원하면서 1순위를 정신과로 적어서 제출했다. 운 좋게, 정신과로 발령받아 서른이 될 때까지 근무한 곳이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일부 기억은 아무리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다.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의 병명은 다양하다. 알코올 중독, 품행 장애,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 불안 장애 등등.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개방 병동이나 폐쇄 병동으로 입원하게 된다. 폐쇄 병동은 말 그대로 문이 닫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입원하는 환자들의 짐에서 인화성 물질이나 술 같은 약물 등이 있는지 조사를 한다. 인권을 침해하는 면도 있지만 폐쇄된 곳이라 불이라도 나면 대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폐쇄 병동으로 입원한 환자들은 상태가 좋아져야 개방 병동을 통해 퇴원 절차를 밟게 된다.


주사를 놓을 기회는 적었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실패할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나는 완벽했을까? 아니었다. 한마디로 허점투성이 자체였다. 망상이 있는 환자에게 금기시되는 망상에 대해 언급했고, 우울증이 있는 환자에겐 지나치게 밝게 굴었다. 십 대 청소년이 오면 내 과거가 떠올라 더 잘해주다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하나하나의 실수가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동시에 한 개씩 배워 갔다.


매번 떠나야지 하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던 나였다. 간호직 공무원, 산업간호사를 기웃거리며 이런 저런 책들도 공부하며 면접도 보았지만 실패했다. 막상 그만두면 먹고 살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나는 사직이란 관문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그러다 존경하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다.

“새로운 걸 배우면서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는 건 어때?”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뭘 배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문학을 배우고 싶었지만, 근무를 조정하기가 힘들어 결국 간호학을 선택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사회복지로 유명한 계명대를 가서 교수님도 만나고, 서울로 가서 정신질환 환자 가족 모임에도 참여했다. 근무하면서 잠을 쪼개가며 다녔던 나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를 처음 알았다. 정신과 간호사로 정신 간호학에 대해 배워서 그랬을까.


펄떡이는 활력을 주던 대학원을 졸업하니 다시 멍때리게 되었다. 9년을 눈앞에 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사 실력이 꽝이었고,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어 실수가 잦았다. 그리고 반복 입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내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음에 돌멩이를 던질 때 생기는 주먹만 한 파문이 일었다.

‘넌 뭐 하는 얘니? 아직 주사도 제대로 못 놓고. 저 환자들은 좋아질 수 있을까? 내가 입원실에만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작은 물음표가 점차 커지더니 나를 밧줄처럼 옭아매었다. 답답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만둘 시점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내 나이 서른에 품고 있던 사직서를 꺼내 수간호사에게 폼나게 제출했다. 그리고 가운을 벗어던지며 병원을 두 발로 성큼성큼 빠져나왔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또는 억지로 가야 하는 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처럼 ‘그 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았으면 한다. 그리고 신호등이 아직 빨간불이라면, 잠시 숨을 고른 후 헤어지는 것에 폼나게 이별을 통보하길. 왜냐하면 초록불은 반드시 켜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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