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결핍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힘들다. 내가 그랬다. 나 자신을 미워한 비혼주의자였던 내게 사랑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랑을 아프게 한 뒤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내가 만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이상형’을 물어보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없다. 모른다. 연예인 이름. 큰 키에 얼굴은 강아지상을 하며 시크하면서도 나만 챙겨주는 남자. 긴 생머리에 귀여운 얼굴이며 나랑 대화가 통하는 여자 등등. 이상형을 나열한 포스트잇을 제출한 학생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선생님 이상형은 어떻게 돼요?”
“선생님 이상형은 원빈이야. 너희들은 잘 모를 텐데 <아저씨>란 영화에 나왔던 주인공이지.”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 남편은 이상형에 가까운가요?”
“…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단다. 하지만 내게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지.”
뭐라 말할까, 고민하다 꺼낸 답이었다.
“하하하! 에이, 그게 뭐예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귀엽다.
사실 난 결혼을 꿈꾸지 않는 비혼주의자였다. 엄밀히 따지면 젊은 시절의 난 사랑은 하고 싶지만, 결혼은 하기 싫은 부류에 속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랑을 꿈꾸면서도 막상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남몰래 짝사랑을 시작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마음이란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사춘기 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내가 여주인공이 되어 소설 속 문장 사이사이로 뛰어들었다.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3일 동안 반복해서 꾸었다. 잠에서 깬 후 그런 사랑은 내게 오기 힘들다는 걸 받아들이는데,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거렸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 못났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가 결혼을 꿈꾸지 않은 이유를 밝혀야겠다. 행복하지 못한 부모님의 결혼생활. 바락바락 악쓰는 큰소리와 집안 물건이 던져지고 박살 나는 익숙한 광경에서 어린 나는 바들바들 떨며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이 모습이 나를 결혼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뜨렸다. ‘저렇게 살려면 결혼을 왜 했지?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백 번, 천 번 낫겠어!’라며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단추를 잠갔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로 두지 않은 마음은 시커먼 구름이 되어 천둥과 번개를 불러왔다. 마음이 요란하게 시끄러웠다. 자기를 사랑하기도 바쁜 날에 나를 미워하며 남도 미워한 겉으로만 푸르른 20대를 보냈다.
하지만 인생이란 물줄기는 정해진 길이 아닌 어디로든 뻗을 수 있었다. 나에게 구두쇠처럼 인색한 신이 한꺼번에 몰아서 준 선물이 바로 ‘남편’이었다. 남편과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만남은 아니었고, 엄마 등쌀에 떠밀려 친척 소개로 이루어진 자리였다.
때마침 추석 당일 근무가 쉬는 날이어서 그때 만나자고 했다. 사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 명절 대이동으로 제시간에 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바람을 맞힐 계산이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그는 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아마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을 거라 짐작했다. 첫 번째 작전 완전 실패!
추석 당일 문 여는 가게가 많지 않다는 것을 떠올려 두 번째 작전을 짰다. 만나자는 사람이 아무 준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목적이었다. 인근 대학 캠퍼스로 자리를 옮겨 벤치에 앉아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두 시간 그와 이야기를 나누니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새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두 번째 작전도 실패. 그날부터 내 마음속 ‘1일’이었다.
남편과 맞이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행복했다. 초콜릿 같은 달콤함을 알아버렸다. 서로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남편은 언제나 내게 친절하고 따뜻했다. 직진 운전만 할 수 있던 내가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몇 시간을 달려 남편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혼자 하는 밤 근무 때 꽃다발을 들고 온 남편과 간호사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몰래 데이트하기도 했다. 사귄 지 1년이 될 무렵, 내가 좋아서 남편에게 이벤트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나랑 결혼해 줄래요?”라고 프러포즈를 했다. 서른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결혼은 동화 속 결말처럼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이 아니었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는지 생략된 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뒤늦게 아차 싶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배운 탓인지 나도 모르게 의미 없는 싸움을 걸고 있었다. 한때 유산이 되고 게임중독에 빠져 아주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 이런 내가 보건교사 되겠다고 하니 시험 뒷바라지 3년을 엄마보다 더 열심히 도와주었다. 남편을 제대로 사랑하게 된 시점은 첫째를 낳고 나서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학교로 출근한 뒤부터였다. 경제적인 불안이 줄어 마음이 편해진 건지, 철이 든 건지 모르겠지만, 내 안의 가시가 사라졌다. 나 자신과 화해하게 된 뒤 남편을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20년 넘게 살면서 남편과 내 성격이 바뀌었다. 나는 부드러워지고, 남편은 별일 아닌 일에도 욱하게.
어느 날 남편이 무심코 내게 말했다.
“난 다시 태어난다면 새로 태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거야.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을래.”
내가 남편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집보다 사이가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와의 결혼생활이 남편을 서서히 망가뜨렸나 싶다. 유산, 게임중독, 시험 3년 도전, 전세 사기, 내 입원, 개성 뚜렷한 세 명의 아이 키우기 등등.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면 새로 태어나 날고 싶다는 남편을 붙잡지 않을 것이다. 자유롭게 날게 해주리라.
비혼주의자였던 나는,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비혼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 사랑이 당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나아가면 빛나는 사랑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