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가 되는 임용고시 시험에 3번 도전했다. 첫 시험은 2차에서 탈락, 재수 때는 중간 포기, 삼수 때 최종 합격이었다. 삼수라고 하면 말은 쉽지만 1,095일을 투자한 것이다.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자존감은 하락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나갔다. 나처럼 떨어지는 사람은 끝까지 자신을 믿었으면 한다. “할 수 있다!”라는 말. 힘이 되는 이 말을 계속 되뇌길 바란다.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다가 임용고시에 도전하기로 했다. 눈이 녹고 따뜻한 봄이 오자 같이 공부할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젊고 병원 근무 경력도 있는 준비생이었다. 그 스터디 동기 덕에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결정하는데 도움을 얻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스터디 동기 집 근처에 있는 대학 도서관으로 가서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이 밥을 먹었다. 다만 쉬는 스타일은 달라서 서로 쉬는 시간은 각자 보냈다. 유명한 강사가 지방으로 내려온다고 하여 같이 강의를 들으며 서로 암기한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학원을 가니 나와 나이가 같은 다른 준비생을 알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한 주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도전에서 그 친구는 바로 합격. 축하를 핑계로 따로 만나 합격 비결을 물으니 학원 강사가 알려주는 내용을 무조건 외우지 말고,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암기하라는 충고를 건넸다.
첫 도전에서 2차 논술․면접 시험에서 떨어졌다. 실패한 후 인생의 쓴맛, 아니 그보다 더한 독한 맛을 맛보았다. 임신한 줄 모르다 알게 된 첫 임신이었는데 불합격의 충격으로 유산했다. 내 마음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점차 게임중독에 빠져 들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 밤새도록 게임을 하느라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고, 한낮에 몰아서 잤다. 2개월 동안 레벨 등락에 따라 내 인생의 레벨도 변화하는 것처럼 감정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우리 이혼하자! 유산은 나도 슬퍼. …근데 이건 아니야.”
지쳐버린 남편의 최종 이혼 통보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했던 나는 벽면 여기저기에 ‘왼손을 자르겠다’라는 무시무시한 글을 써 붙여놨다. 손가락을 자르는 대신 때리는 노력 끝에 중독이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재수는 첫째를 임신하고 과감하게 중도에 포기했다. 입덧이 심해 공부를 할 수도 없었고, 시험 스트레스로 지금의 첫째를 잃고 싶지 않았다.
삼수는 5월 말경 첫째를 낳고 7월에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이 있는 도시로 무작정 따라 올라갔다. 이사하고 인근 도서관으로 다니며 앉아 있는 습관을 한 달간 들이고 나서 독서실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마지막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아침 9시에 문 여는 독서실에 가서 새벽 12시까지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목차만 보고 당일 외운 내용이 맞는지 떠올리다가 잠이 들곤 했다. ‘너를 믿어! 넌 할 수 있다!’라는 마법의 글귀를 책상 여기저기에 써 붙여놓고 잠이 올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날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 돈이 없던 내게 인터넷강의를 무료로 듣게 해준 학원 원장님, 독서실 갈 때 항상 태워준 독서실 사장님. 합격하고도 고마워서 떡을 들고 학원으로 찾아가 인사도 드리고, 독서실 사장님에게도 따로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남편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온 우주의 기운이 내 합격을 도와준 것일지도.
삼수 끝에 보건교사 시험 합격.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이토록 간단한 문장을 3년 동안 기다리며 피폐해진 나를 돌아본다. 가슴이 찡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합격 성적은 좋지 않아 1년 뒤에 발령을 받았지만, 꼴등이라도 합격은 합격이었다. 발령받고 지금까지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큰 감염병인 신종플루(현 신종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가 퍼질 땐 솔직히 너무 힘들어 사직이란 글자가 눈 앞에 아른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어서니 3년의 노력 끝에 얻은 보건교사 자리가 너무 좋다. 쑥쑥 크는 해바라기처럼 쭉쭉 자라는 학생들을 보는 재미가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