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 불을 지른 나쁜 아이래!

by 단단씨

어린 시절의 실수나 서툰 행동 때문에 ‘나는 나쁜 아이야’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어본 적이 있을까? 그 낙인이 몸서리치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한때 나쁜 아이라고 여긴 나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불이야! 불이야! 얼른얼른 물을 퍼 와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발만 동동 구른 나 대신 옆집 어른이 마을 사람들을 다급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양동이가 한 줄로 선 어른들의 큰손으로 옮기고 또 옮겨졌다. 남자 어른들이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에 있는 볏짚에 물을 세차게 끼얹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이 비웃기라도 하듯 훅훅 불 때마다, 불은 조정당하는 뱀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며 옮겨 다녔다.

이제 난 정말 죽겠구나 싶었다. 말을 안 듣는다며 아빠에게 자주 맞는 매질로도 감당이 안 될 거 같았다. 죽음이 뭔지 몰랐지만, ‘국민학교 2학년 짧은 인생으로 끝’이라는 글자가 어른거렸다.


도대체 난 20분 전에 무슨 일을 저질렀던 것일까. 밥을 짓기 위해서 또는 추운 겨울에 군불을 지필 요령으로 마당 한쪽에 지그재그로 잘 쌓아둔 불과 몇십 분 전의 볏짚은 말짱했다. 그 근처에서 3살 어린 사촌 동생에게 성냥불로 초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당당하게 자랑하지만 않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누난 성냥을 켤 수 있다. 넌 못하지?”

콧방귀를 뀌는 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흥, 거짓말! 누나 말 못 믿겠어. 직접 보여줘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잘 봐, 이렇게 성냥을 성냥갑에 긋고. 성냥불 보이지?”

동그랗게 커진 동생 눈에서 타오르는 성냥불이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와! 누나 말이 진짜네.”

“여기서 끝이 아니야. 자, 이 불을 초로 옮기면 돼. 봤지?”

동생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바람이 휙 불더니 마구 흔들거리는 촛불이 볏짚으로 옮겨갔다. 쉽게 끌 줄 알았는데 옮겨간 불은 순식간에 쌓아진 볏짚 꼭대기까지 퍼졌다. 불이 날름거리는 뱀 혓바닥처럼 옮겨붙는 걸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난 신기하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불을 끄려고 양손을 수없이 휘저었지만, 실패했다.


하마터면 우리 집은 물론 옆집까지 불이 옮겨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합심해서 불을 다 끄자, 외출했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선 부모님은 충격으로 눈을 깜빡이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계셨다. 볏짚은 거의 타 버려 일부만 남았고, 그마저도 물에 흠뻑 젖어 쓸 수가 없었다. 내 일처럼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부모님은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들던 이웃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마자 두 눈을 치켜뜬 엄마는 내게 자초지종을 물으며 꾸짖기 시작했다.

“넌 도대체 누굴 닮아 그러니? 아빠 말 안 들어 매일 혼나고. 하마터면 집이 홀라당 탈 뻔했잖아. 못된 놈 같으니라고! 동네 어른들이 사고뭉치라고 하면서 가더라. 이번 기회에 다시는 안 그러게, 혼꾸멍이 나야 해. 저기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마!”

불을 낸 장본인인 여기저기 그을린 난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에 갇혔고, 성냥을 켜는 법을 알려준 오빠는 화장실 옆 비어 있는 돼지우리에 갇혔다.

“너, 밖에 나가기만 하면 죽을 줄 알아. 내가 불을 낸 것도 아닌데…. 하, 억울해. 난 집에도 없었는데 왜 혼나야 하는 거야? 하여튼 알아서 해! 여긴 사방에 구멍이 있어 춥단 말이야. 으흐흐, 추워!”

“…오빠, 정말 미안해. 이번엔 진짜 잘못했어. 나도 불이 날지 몰랐다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오빠 말을 들으며 구역질 나는 냄새가 풀풀 올라오는 화장실에 갇힌 나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갑자기 해가 떨어졌고, 새까맣게 타버린 저녁이 찾아왔다. 그때 풀려난 나와 오빠는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그해 겨울은 내 마음속에 검은 자국으로 남았다.

그런데 불 사건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2남 4녀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어느 날 친척들 모임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어른이 나를 보며 호되게 나무랐다. “쯧쯧, 젓가락을 천한 왼손으로 들다니.” 그날 이후, 왼손을 쓰는 나 자신이 잘못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바보, 천치, 머저리’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쏟아부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아닌 미워하는 법을 매일매일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내 몸 어딘가로 들어온 벌레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갉아먹으며 점점 커졌고, 결국 난 ‘나쁜 아이’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가슴에 달아준 꼴이었다.

커 가면서 안을 향한 손가락질은 밖을 가리켰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긴 세월 나를 정면으로 보는 눈을 감고, 내 목소리를 듣는 귀를 닫고 살았다. 하지만 정신과 간호사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더 깊고 오래 아프다는 것을.


마음이란 악기가 내는 소리를 무시한 나는 찢어진 마음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나서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 나는 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여기게끔 키워졌을 뿐.

그래서 이제는 결핍으로 가득 찼던 어린 나를 떠올린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따스하게 안아준다.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나를 적시도록. “너는 잘못된 존재가 아니야”라고 속삭여준다.


지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못났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한 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당신 역시 결코 나쁜 아이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