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걷다 흔히 보이는 세잎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미처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바로 옆에 있는 소소한 일상이 건네는 평범한 행복들을 놓치지 말라고.
일이 끝나고 학원이 끝난 딸을 데리고 개봉하는 영화(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를 보러 갔다. 영화관으로 걸어가면서 신이 난 막내는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주문한 달콤 팝콘과 콜라를 받아 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명탐정 코난은 덕후가 많은지 영화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딸을 보니 10년 전 일이 떠오른다.
“과학 선생님, 119를 불러주세요! 출혈이 있어요. 출혈이 멈추질 않아요.”
화장실과 최대한 가까운 과학실에 있는 선생님을 핸드폰으로 불렀다. 화장실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하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임신 5개월, 내 머릿속을 유산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여기예요! 빨리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 옆을 지키던 과학 선생님이 다급하게 119대원을 불렀다. 들것에 실려 가는 나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켜 줬다. 그렇게 난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고위험 산모실로 입원하게 됐다. 내 연락을 받은 남편은 일하다 말고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왔다. 흥건한 피가 묻은 바지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받은 새하얗게 질린 남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고위험 산모실은 처음이었다. 언제라도 뱃속에 있는 태아가 아기로 나올 수 있는 곳. 그 아기가 신생아중환자실로 갈 수 있는 곳. 나는 3개월 동안 입원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당시 주치의는 내게 말했다.
“산모의 나이가 40을 넘어서 나이 자체로도 고위험인데 개인병원에서 진단받은 것처럼 전치태반이에요.”
“….”
“모든 전치태반이 하혈이 있는 건 아닌데 지금 산모의 상태는 위험해요. 지금이라도 아기가 나올 수 있어요. 일단 임신 유지 주사를 맞아보죠. 이게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상태가 심각할 수 있어요. 나중에 출혈이 심하면 수혈받을 수 있으니 가족 중에 엄마 혈액형 있는지 미리 알아보세요.”
내 병명은 ‘전치태반’. 태아가 나오는 경로 근처에 자리 잡은 태반으로 언제라도 혈관이 파열되어 출혈이 동반될 수 있는 상태였다. 천만다행으로 임신 유지 주사가 효과가 있어 심한 출혈은 멈췄다. 하지만 퇴원할 때까지 작은 출혈이 반복되곤 했다.
빈혈 수치는 뚝뚝 떨어져 보건소에서 받은 철분제제를 많이 먹어야 했다. 철분제제의 부작용으로 변비가 생기지 않고 혈관도 튼튼해지라고 남편이 믹서기로 간 연근과 요구르트를 섞은 주스를 주말마다 통에 담아 갖다주었다. 의료진과 상의하지 않고 몰래 마셨다. 뱃속에 있는 생명을 미치도록 지키고 싶어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었다.
절대 안정인 다른 고위험 산모처럼 나도 움직임이 제한되었다. 식사 후에 소화 시키려고 쉬엄쉬엄 그 안을 걷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맞은 편에 먼저 입원한 중국인 산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았다. 중국에서 세 번의 유산 끝에 다시 찾아온 임신. 이 아기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국으로 온 새댁이었다.
“오늘은 어때요? 뭉침 증상은 없지요?”
“우리가 밥 잘 먹으면 뱃속 아기 몸무게가 늘겠죠?”
맞은 편에 자리 잡은 우리 둘은 서로의 안부를 3개월간 물었다.
낮에는 불안감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지만, 밤이 되면 악몽으로 나타났다. 회진하는 주치의에게 계속 악몽을 꾼다고 하니 안심하라고 등을 두드려줬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8개월이 넘자 다시 하혈이 비쳤다. 주치의는 버틸 만큼 버텼으니 이제 제왕절개 수술을 받자고 권했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눈을 떴는데 배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여보, 나 수술받은 거 맞지? 왜 이렇게 아파?”
“아기는 어때? 건강하지?”
인상을 찌그리며 묻는 내 말에 남편은 뜸을 들였다.
“…아기 보러 갈래?”
“못 일어나겠어. 건강하지?”
“…지금 인큐베이터에 있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내일 보러 가자.”
다음 날부터 셋째인 막내딸을 보러 통증을 참으며 갔다. 태어났을 때 울지 않아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막내가 너무 작아서 안쓰러웠다.
2주 뒤에 퇴원한 막내는 그 뒤 각종 검사를 받았고, 걷기가 느려 재활의학과까지 1년을 다녔다.
그런 막내가 10년이 흘러 건강한 초등 3학년이 되었다. 흐뭇하게 딸을 보며 과거에서 벗어나니 영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얼른 기념품 창구 앞에 줄 서라는 딸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쿠키 영상을 포기한 나는 기다리다 포토 카드 2장을 받았다.
집에 오니 밤 9시가 넘어 아침부터 일찍 일어난 나는 몸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딸과 함께하는 추억이 저금통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엄마, 나 떨려! 남도일 카드면 좋겠는데, 누가 나올까?”
영화관에서 받은 포토 카드 봉투 가장자리를 가위로 조심조심 자르는 막내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코난은 없었지만, 유 탐정과 코난 친구들 사진 2장만으로도 딸아이 얼굴이 기쁨으로 밝게 빛났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내 이야기는 별것 아니다. 그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단순한 기념품으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내겐 행복이다. 불행하다며 행복을 찾아 떠나는 이에게 말하고 싶다.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하루가 주는 평범한 행복을 느껴봐. 그 하루가 전혀 다른 날로 네게 다가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