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만든 관계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관계.
“엄마 아빠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
혹은 “엄마/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여러 번 있다.
하지만 정말 자식이 부모를 ‘선택’해서 오는 걸까?
그 말속에는 가족만의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운명이 만든 인위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택했다는 그런 믿음이.
어쩌면 그건 아직 사랑이 고픈 어른이 아이에게서 찾는 안정일수도 있고,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자신이 저지른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만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태어날 때를 결정하지 못한다.
어떤 집의 불빛 아래서 울음을 터뜨릴지,
누구의 손에 안길지 알 수 없다.
그저 세상으로 ‘던져진다’.
마치 조작법도, 프롤로그도 없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몇몇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책임을 묻는다.
부모의 기대, 가문의 이름,
그들이 채워 넣지 못한 꿈의 잔여물까지.
그 모든 것을 ‘효’라는 이름으로 대물림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묻는다.
“그럼에도 사랑해야지, 부모잖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이 의무가 되는 순간,
그건 사랑이 아니라 증오가 된다.
태어난 것이 죄가 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의 잘못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는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것’뿐인데, 그들의 세상은 그들을 '부모 말도 안 듣는 불효자'라는 낙인을 찍고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나는 믿고 싶다.
그 누구도 태어났다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아니라,
그저 자신으로 존재할 자격이 있는 하나의 세계라고.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 부모들도 자신이 만들어낸 가족을
자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저 존재만으로 담담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작은 한걸음을 때려고 한다.
감히 이 작은 글이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