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영혼들을 위하여
붉은 꽃잎이
흙 위에 고요히 내려앉을 때,
바람은 이름을 잃은 영혼들을
조심스레 들쳐 안고 날아간다.
누구도 읽지 못한 편지처럼
젖은 땅속에 눕혀진 목숨들이
봄이 와도 다시 피어날 수 없다면
양귀비꽃들이
그 자리에 대신 피어난다.
양귀비는 울지 않는다.
누가 먼저 바스러졌는지.
누가 마지막까지 불탔는지
생존자들에게 증언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보면
잠시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지워진 발자국 사이에서
잔향처럼 머무는 화약냄새를
기억해야 하니까.
오늘도 붉게 흔들리는 그 꽃잎은
죽은 이를 부르는 주술이 아니다.
그 꽃잎의 작은 춤은
산자들이 죽은 자를 잊지 않게 하는
그들만의 경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