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나무

껍질과 과육이 반대되는 자몽, 그리고 내지르지 못한 비명들

by 살랑살랑

자몽나무 하나가 자라났다.

입을 다물고 있는데도
어딘가에서 온 씨가 뿌리를 내려
성대의 연한 살을 찢으며 파고들고
또한 그 싹은 목을 타고 올라가
내 편도를 건드리며
내 코와 입 밖으로 탈출한다.

자몽나무 하나가 자라났다.

말을 삼킬 때마다
씨앗이 기도에 달라붙어 꿈틀거리고
침은 미지근한 양수처럼 고여
그것을 썩지 않게 보호한다.

그 열매의 겉은 달콤하게 젖어 있고
속은 바스러질 듯 마르니
다른 이들은 내 자몽나무에서 나오는 열매의 겉에 피어난 과육을 가져가고
그 안에 있던 껍데기는 씨와 함께
내 입 안으로 다시 쑤셔 넣었다.

자몽나무 하나가 자라났다.

입을 벌리면 소리 대신
가느다란 가지들이 먼저 튀어나와
공기를 더듬었고
껍질이 내 안쪽을 긁어대고 벗겨지자
안과 밖이 마치 주머니처럼 뒤집히며
모든 것들이 한치의 가림도 없이 보이니,

더 이상 비명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자몽 나무 한그루가 자라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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