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란 무엇인가
1945년,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는 ‘평균적인’ 미국 남녀를 대표한다는 두 개의 조각상이 전시되었다. 수만 명의 젊은 남성과 여성을 측정해 만든 이 조각들은 ‘노먼(Norman)’과 ‘노마(Norma)’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해, 노마의 살아 있는 모델을 찾기 위한 콘테스트도 열렸다. 당연히 평균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노마와 일치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겠지만,놀랍게도 4천 명 가까운 여성 참가자 들중 단 한 명도 노마와 일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평균’과 ‘정상’은 이렇게도 찾기 어려운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노마와 노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 마음, 감각을 설명하는 ‘정상’이라는 기준은 역사를 통틀어 거의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 시스템, 의료 기준, 사회 규범 등 수많은 영역을 이 ‘정상’ 개념 위에 세우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묻게 된다. 정상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정상이라는 단어에 집착이라는 수준으로 매달리는것일까?
통계학에서 ‘정규 분포표’는 산 모양의 곡선을 따라 평균과 표준편차의 값들이 분포하는 패턴을 그린 표를 말한다. 평균은 곡선의 한가운데에 있고, 대부분의 값들은 이 평균 근처에 몰려 있다.
가장 대표적인 '평균'은 키가 있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생인 한국 남학생은 약 173.2cm, 고등학생인 한국 여학생은 약 161.7cm이 평균적 키라고 한다. 키가 150대인 사람도, 키가 180대인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저 범위 근처에 본인의 키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정규 분포’의 의미를 종종 잊어버린다. 이 분포는 다양성 전체의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지, ‘이 한 점이 가장 올바르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곡선의 한가운데, 가장 두툼한 부분에서 뽑아낸 단 하나의 숫자를 ‘정상’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가지고 ‘정상’ 여부를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정상’은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비틀린 좁은 문이 되고 만다.
BMI(체질량지수)는 이 문제를 보여주는 다른 지표다. BMI는 키 대비 체중의 비율을 계산하여 저체중, 정상, 과체중, 비만을 나누는 지표인데, 일반적으로 ‘정상 체중’ 범위를 벗어나면 건강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BMI는 체지방률, 지방의 분포, 운동량, 혈압 같은 건강을 좌우하는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BMI 기준 하나로 체중 감량이나 증량을 권유받는다.
물론 BMI에 따른 오해가 일어날수 있다는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BMI를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인류 전체의 기준처럼 사용하려는 태도다. 잘못된 표본에서 나온 숫자를 ‘보편적 정상’으로 선언해버리는 것; 이는 마치 전혀 다른 종류의 분포에서 평균을 하나 뽑아 ‘이게 정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행동 과학이나 심리학 연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견된다. 연구의 상당수가 ‘WEIRD’- 서구권(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한(Rich), 민주적인(Democratic)-
집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 표본은 전 세계 인구를 대표하지 않지만, 많은 연구에서 이들의 행동과 인식 방식이 ‘정상’으로 간주된다.
유명한 뮐러-라이어 착시도 그렇다. 미국 대학생들은 두 선의 길이가 같아도 한쪽이 더 길다고 착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칼라하리의 산족은 이 착시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우리가 ‘정상적인 착시’이라고 배워온 것조차 사실은 특정 문화의 산물일 뿐이라는것이다.
역사적으로 ‘정상’의 개념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권력의 도구가 되어왔다. 20세기초 나치 독일은 우생학을 무기화해 부적격, 즉 '비정상'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배제하고 제거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지금도 장애, 정신 건강,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 다양한 특성을 이유로 사람들은 차별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누구도 평균값에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초반에 말했듯 평균을 바탕으로 만든 ‘노마’조차 실제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상이라는 개념은 실재하는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만들어낸 상상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진짜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정상’이 무엇인지 찾는것이 아닌,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포용력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하나의 중심값이 아니라, 수많은 점들이 만들어내는 넓고 풍부한 분포 그 자체니까. 우리는 평균이 아니라, 편차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정상이라는 좁은 문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려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