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이 된 큰 아이를 위해서라도 대도시의 모습을 자주 보여줘야겠구나.. 생각했던 찰나였다.
낮에는 서울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저녁이 되어 아이들과 숙소 근처 남산 산책로로 산책을 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저녁의 활기참에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남산의 공기 내음을 따라 들려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 대화 소리, 줄줄이 서있는 자동차의 모습, 식당과 카페의 네온 불빛을 눈과 귀에 담으며 걸으니 어느새 용산도서관에 발길이 닿아 있었다.
용산도서관은 우리가 귀촌 전 살았던 동네에 위치해 있는 국립도서관이다. 집에서 걸어 2~3분 거리여서 큰아이와 자주 들렀던 곳이기도 했다.
용산도서관 맨 위층은 남산과 바로 이어지는 곳이라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빌딩들이 뿜어내는 불빛과 세련되고 화려한 건물들은 조화로웠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도시 살 때 항상 봐오던 모습이었는데 나는 새삼 그 아름다움에 취해 서울 야경에 넋을 잃었다.
정적인 시골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동적인 도시의 아름다움.
"내가 이곳에 살았었지...."
그 사실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서울에서 양양으로 귀촌하던 시기, 큰아이 2학년이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방문한 옛 동네, 후암동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면 바로 볼 수 있었던 서울타워, 남산 밑 용산도서관의 위치며, 도서관 앞 카페, 계단 등 주변의 모습들을 더듬으며 가보고 싶어 했다.
말은 안 했지만 아이가 향수에 젖어있던 건 아닐까.
아이는 자기의 기억이 맞는지,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들이 맞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게 그 자리에만 있는지 보고 싶어요."
외부로 이어지는 도서관 1층으로 내려가 도서관 맞은편에 있는 분식집과 계단을 확인하더니 "내 기억이 맞구나!" 하며 흡족한 얼굴로 돌아온다.
귀촌 당시 귀여운 꼬마였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그다음 날 우리는 큰아이가 서울 오면 꼭 가보고 싶어 했던 긱블 전시관을 방문했다.
긱블은 "쓸모없는 도전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러 가지 다양하고 기발한 발명품들을 만드는 젊은 회사다.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긱블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긱블 공학도들이 만든 여러 가지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긱블 전시관에 갈 생각을 하니 설렌다는 아이, 그 설렘의 들뜬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아담하고 작은 전시관이었지만긱블 공학도들이 만든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며 아이는 행복해했다.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귀촌 당시 큰아이 2학년, 쌍둥이 5살이었다.
아이들이 적정한 시기에 참 잘 왔다 생각했고 아이들은 맘껏 뛰놀고 자연을 향유하며 자랐다.
내가 원하던 바였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고 있었고 몸과 마음이 커가고 있음을, 나는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버스가 1시간에 1대가 오는 마을에 위치해 있다. 사실 읍내를 제외하고 양양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마을들은 버스가 1시간에 1대 정도 오간다.
학교를 오갈 때도 학교버스가 등, 하원을 시켜주고
편의점, 마트를 갈 때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학원을 갈 때도, 성당을 갈 때도, 도서관을 갈 때도 엄마나 아빠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아이가 가고 싶은 곳, 원하는 곳에 가려면 꼭 엄마, 아빠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일주일에 한 번 유일하게 다니고 있는 읍내 영어 공부방이 끝나면 공부방에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까지 꼭 스스로 걸어오겠단다.
무더운 여름에도 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곤 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아이를 위한 과연 잘 한 선택이었을까..'
물론 이곳에서의 삶,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고 작은 학교에 보낸 삶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기에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이들도 사랑과 관심, 배려를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음을 안다.
여름이면 매일 갔던 바다,
해가 어스름이 질 때쯤이면 보이는 붉은 노을,
귀뚜라미, 반딧불이, 장수하늘소를 만날 수 있고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에게 물을 주고
오며 가며 나무에 달린 대추, 앵두를 따먹던 이곳.
여기에서 자연과 함께했던 풍성하고 귀한 추억과 경험이 아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자산이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연 잘 한 선택이었을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림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을 팔고 이사 온 것,
양양의 깊숙한 시골마을에 땅을 사고 집을 지은 것,
그럼으로써 유동자산을 남김없이 다 써버린 것,
바로 이것, 현실적인 것들이다.
아이들이 커간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아차.. 싶은 생각.
현실과 이상의 간극. 난 무수한 점들로 된 그 간극들을 하나하나 메우며 언제나 고민한다.
서울 집을 전세 놓고 왔어야 하나..
아이들이 혼자 왔다 갔다 하기 좋은 읍내에 살았어야 하나..
집을 짓지 말았어야 했나...
생각해 보지만 귀촌 전으로 돌아가 다시 결정의 시간이 온다 해도 나는 또다시 양양 북분리, 아담하고 소박한 이 마을에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다만 조금은 더 "커가는 아이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우리 삶을 계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닥치지 않고서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게 우리 삶, 인생이 아닐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과연 이곳에서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신랑과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 혼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읍내 쪽이 낫지 않을까?'
흘리듯 했던 말들인데 어느새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모든 걸 몸으로 부딪히고 겪어봐야 알 수가 있다.
"귀촌"이라는 조금은 다른 상황 속에서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나는 또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