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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에너지 옥랑 Oct 29. 2022

작은학교가 좋아!

작은학교에서 정서적 강렬함을 만들어볼까?

유치원에서 6학년까지 전교생이 15명인 초등학교.

귀촌 후 우리 아이들이 다니게 된 초등학교의(병설유치원 포함)  인원은 15명 정도였다.

유치원 5명을 제외하면 10명 정도인 작디작은 시골학교.

우리 아이들 3명, 각 가정이 2,3명의 아이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 있었으니 사실 4~5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 학생들의 전부였다.

생각보다 더 적은 학생수에 이곳에 보내는 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전학 전 상담 때 뵀던 교장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열정과 적극적인 모습에 나의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학교의 모든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유치원부터 전교생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챙겨주는 모습이 봄날처럼  포근하고 살가웠다.


전학 다음날, 마침 <밴드 발표회> 학교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이 드럼, 기타, 피아노 등 악기 하나씩을 연주하고 보컬을 맡은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밴드 활동을 학부모들과 지역 어르신들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였다.

발표시간에 앞서 체육관 앞 운동장에는 선생님들께서 준비해주신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마련된 테이블,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치던 봄바람, 삼삼오오 학부모들이 모여 앉아 서로를 맞이했던 따뜻한 시간.  학생수가 적으니 학부모님들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었고 금세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함께 자리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가족 같은 학교, 그런 게 이런 거구나!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밴드 연주 발표시간이 되자 전교생 아이들이 나와 한 명 한 명 맡은 악기를 가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학부모와 선생님들 앞에서의 발표라 아무래도 긴장을 한 탓이었던 것 같다. 보컬을 맡은 두 아이중 한 아이가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자 다른 아이가 “괜찮아~괜찮아~!” 다독이며 입으로 가사를 알려주었고, 가사를 잊었던 아이는 다시금 금방 제자리를 찾아 노래를 불렀다. 연주가 끝나고 잘했다며 서로 포옹해주던 아이들.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고 사랑스러웠다.


저녁에는 초등학생들만 남아 학교 체육관에서 텐트를 치고 아빠와 함께 별을 관찰하며 1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난 후로는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별로 없던 큰아이는 학교에서 아빠와 함께 텐트를 치고 별을 봤던 그날이 참으로 특별하고 뜻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전학 오자마자 이런 활동들을 한 아이들은 금방 학교에 적응했고 학교를 좋아했다.




아이들의  학습적인 공부에는 크게 신경을 쓰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인성교육, 먹거리 부분, 학교가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지 등등.. 아이들 “교육”에는 항상 관심이 많은 엄마였다.(교육이 주관적 기준이긴 하지만..^^;)

사실 귀촌을 결정하고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이들 학교, 교육 부분이었다.

귀농, 귀촌인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카페에서 시골 작은 학교에 대해 검색을 하면

작은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전혀 신경을 안 쓴다, 똑같은 아이들과 6년 내내 같은 반이어야 한다, 학습적인 부분이 너무 떨어진다 등등 부정적인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작은 학교의 분위기에 대해 내가 올려놓은 질문에 대한 답변도 90% 이상이 작은 학교 보내면 후회한다 였으니  귀촌을 걸정하고도, 이사할 집을 계약하고도,  나는 사실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적인 부분도 만족하고 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학교를 보낸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신 교장선생님 덕분에 학교 분위기는 활기차 졌고 선생님들도 아이들과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신다. 매년 폐교를 논하던 학교에서 이제는 대기자를 받아야 하는 학교가 되었다. 아이들은 인성과 체력, 학습적인 부분을 뛰어나진 않더라도  균형 있게 배우고 있고, 작은 학교의 장점들을 만끽하고 있다.


귀촌 초기, 나는 작은 학교이니 공교육에서 모든 걸 해결해 주겠지… 하는 안일한 기대감이 있었다.

아무리 작은 학교라도 학습적인 부분은  부모가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그 부분까지 학교에서 해결해주리라 생각했고, 집에서 부모의 역할을 간과했다.

내 아이의 성향과 학습의 습의 중요성을 알게 된 지금은 나름의 주관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최소한의 학습만을 시키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바른 인성”을 가지고 “행복한 경험”으로 충만히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충만함을 바탕으로 회복탄력성을 가진 이로, 이웃과 함께 잘 살아가는 이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 아이들의 학교는 교육철학이 잘 맞았다.




봄이면 다 함께 쑥을 캐서  떡을 찌고  여름이면 학교 텃밭에서 농사지은 감자와 옥수수가 간식으로 나오고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인라인과 두 발 자전거를 땀을 흘리며 타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로 하이킹을 가고, 100년도 더 될 것 같은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 줄을 매달아 트리클라이밍을 하기도 한다.

교실에서 기르는 달팽이와 직접 캔 고구마를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선생님, 반 친구들과 1박 2일 캠핑을 떠나  집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하고 추억을 쌓는다. 여름이면 서핑을, 겨울이면 스키캠프를 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악기들을 배우고 여러 가지 경험과 체험들로 아이들의 삶을 채우고 있다. 공부를  많이 시키진 않지만 교과내용은 다 하고 있고 신경 써서 봐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에 나는 학부모로서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학교의 이러한 방향성을 환영하고 지지한다.

최대한 많이 놀고, 즐기고, 경험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다.


로라 밴더캠의 <시간 전쟁>에 이런 글이 있다.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많은 것들을 처음 마주하며 매 순간 삶을 파악하는 과정에 놓인다. 따라서 어른들은 감당하지 않을 위험도 감수한다. 그런 정서적 강렬함이 시간을 깊게 만든다.>

이렇게 시간을 깊게 가진 아이들이 자라났을 때 조금 더 풍성하고 따뜻함으로 추억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바라본다.


작은 학교의 혜택을 온전히 받은 첫째는 어느새 고학년이 되었다.

학교에 만족하며 보낸다 할지라도,

시골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뚜렷한 가치관과 소신 없이는 어렵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얼마 전 다녀온 서울의 모습에서 잠시 고민도 했음이다.

다른 이의 말에 갈대처럼 귀와 마음이 흔들렸고 아직도 흔들린다. 쉽게 휘청거리던 그 갈대들은 이제 작은 바람에는 일렁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작은 학교에서 쌓은 삶의 자양분이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아이의 하얀 도화지가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 길을 축복한다.

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건 아닐지라도, 매번 수정하고 바꿔갈지라도, 나는 이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아이의 지도를 수정해가며 아이를 믿고 최선을 다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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