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온천
그곳을 처음 방문했던 건 온천물이 특이하다는 유명세 때문이었다. 등산을 하고 난 후라는 것도 있었지만, 온천물이 얼마나 색다른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산 설악산은 여러 지역으로 줄기가 뻗어 있는데, 그중 한 자락이 오색약수터가 있는 오색지구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주말이면 이른 아침부터 관광버스를 대동한 인파가 모여들지만, 12시가 넘는 시간에 가면 이미 하산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마주칠 수 있다. 오색지구 등산로는 산책로처럼 평탄해서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부터 가벼운 나들이객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걷는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색약수터가 있다. 커다란 바위틈에서 약수가 흘러나오는 신기한 광경. ‘오색’이라는 이름은 1500년경 오색석사(성국사) 사찰의 스님이 발견한 이 약수에서 유래했는데, 사찰 후원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자라 그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새로운 경험을 놓치지 않는 편이다. 이 약수의 맛이 일반적인 약수와는 다르다는 것은 익히 들었기에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도전해보았다. 하지만 탄산수 특유의 톡 쏘는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비릿한 철의 맛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결국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고 뱉어내고 말았다. 그 입 안에 남은 쇠 맛이 오색과의 첫 만남이었다.
철분과 탄산이 많은 오색약수의 특징은 오색온천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여타의 탕은 다른 온천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탄산탕만은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백미다. ‘오색’의 톡 쏘는 탄산스러운 맛을 입으로 느끼는 것이 약수라면 탄산탕은 온몸으로 그 기운을 체험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탄산탕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시각적인 충격이 다가온다. 투명한 일반 온천수와는 달리 이곳의 물은 시간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다. 내가 주로 찾는 오후 시간대의 물은 마치 바닥에 진흙이 깔려 있을 것만 같은 진한 갈색이다. 꼭 머드 축제 광고 영상 속 그 걸쭉한 색에 물을 조금 섞어놓은 느낌이랄까. 처음 보면 왠지 ‘이 물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듯 평온하게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탄산탕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탕 안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벽을 등지고 앉아 앞만 멀뚱멀뚱 쳐다본다는 것이다. 일행이 있다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혼자 온 사람들은 그저 눈을 감거나 바닥을 보거나, 혹은 먼 산을 바라보며 각자의 침묵에 잠겨 있다.
적당한 빈자리를 찾아 조용한 탕 안으로 발을 넣는 순간,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일제히 집중된다. 낯선 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쑥스러운 것은 매한가지, 애써 그 시선들을 모르는 척 나 역시 시선 둘 곳을 찾는다. 그러다 결국 벽에 크게 걸린 안내문을 읽고 또 읽게 된다. 지하 470m에서 끌어올린 27도의 저온 온천이라는 설명부터 혈압 강화, 신경통, 관절염, 통풍 등에 좋다는 효능까지. 안내문을 정독하며 몸을 조금씩 물속에 담근다.
생각지도 못한 차가운 감촉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지만 잠시뿐이다. 조금씩 몸을 적시며 바닥에 주저앉으면 탄산의 뽀글뽀글함이 피부를 간질이기 시작한다. 그 느낌은 어느 순간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전신이 화해지는 기분으로 변하다가, 신기하게도 피부 깊숙한 곳에서 조금씩 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차가운 물속에서 후끈거리는 온기를 느끼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드높은 설악산의 푸르름과 상쾌함이 나를 맞이한다. 탄산수로 세포 하나하나를 깨운 후라 그런지, 온몸으로 맞이하는 산 공기의 향긋한 내음이 코를 지나 머릿속까지 선명하게 전해진다.
입 안에 남은 박하 향처럼, 양양의 이 톡 쏘는 기분들이 내 일상에 작은 숨구멍이 되어준다. 이 시원한 기운을 챙겨서, 나는 다시 내 하루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