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 출간일 25년 2월 10일.
꿈을 꾸었다.
길 건너 시장 골목 정육점 앞에 엄마가 서 있다.
"돼지고기 한 근 주세요."
고기 한 근 주문하고 서 있는 엄마 뒷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엄마...'
엄마 얼굴이 보인다.
영혼 없이 앞만 응시하는 눈동자.
텅 빈 공허한 엄마 눈동자가 나를 울린다.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남편 옆에 누워서 말한다.
"엄마 꿈을 꿨어. 하필 오늘. 책이 나오는 오늘. 엄마가 나를 찾고 있나 봐.
꿈에서도 나를 보지 않지만 공허하고 텅 빈 눈동자가 가슴 아파.
오늘 엄마, 아빠를 용서하고 안아줘야 할 것 같아."
눈물이 난다.
남편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어본다.
지워버린 친정 전화번호.
바로 떠올릴 수 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2년 넘게 눌러보지 못한 단축번호 4번에 친정 번호는 없다.
예고 없이 친정으로 간다.
공동현관 앞에서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누른다.
8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대문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른다.
"누구세요?"
"엄마 나야."
소파에 누워있던 아빠가 일어난다.
"아이고.... 희승아!! 보고 싶었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는 아빠가 운다.
살이 많이 찌셨다.
턱살이 늘어지고 얼굴은 부어있다.
다리는 가늘고 배는 하체에 비해 무거워 보인다.
집에서 입는 파란색 조끼도 그대로 입고 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내 나이 열다섯 살, 할머니 돌아가신 날 우셨지.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우우우우...
손을 잡고 '우우' 우는 아빠를 안아드린다.
키가 작다.
산처럼 커 보였던 아빠가 내 품 안에 들어온다.
아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이제 용서한다고.
한참을 흐느껴우는 아빠 손을 잡은 채 말한다.
"용서한다는 말, 전하려 왔어요.
아빠를 용서해요.
이제 죄책감 느끼지 마시고 남은 인생 마음 편히 사세요."
"널 못 보고 죽을까 봐 겁이 났다.
와줘서 고맙다.
이제 죽어도 괜찮아."
바닥에 앉아 있는 엄마가 나를 보고 있다.
"엄마 보고 싶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다.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를 보다가 불쑥 생각나면 네 아빠가 짐승처럼 보인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고 산다.
난 티브이 없으면 못 버텼다."
엄마를 안는다.
아빠를 안아줄 때 흐르지 않던 눈물은 엄마를 안고 흐른다.
"엄마 사랑해."
저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자전적 에세이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출간하는 날, 저는 친정에 가서 부모님을 안아드리고 용서했습니다.
가족이 없을 때마다 딸을 성추행한 아빠.
그런 사실을 묵인하는 엄마.
회피하는 오빠들.
23년 3월 저는 가족에게 제 이야기를 고백하고 스스로 고아를 선택했습니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나왔습니다.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 살면서 나를 외면한 가족을 용서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글로 써보려 합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저를 트라우마 생존자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생존자입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살아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음지에 숨어 울고 있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를 꺼내어 안아주세요.
그리고 함께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