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
오늘은 오래간만에 영화를 봤다.
어제는 야근을 11시까지 하느라 가벼운 일기만 작성하고 잤지만, 오늘은 그렇게 넘기기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 영화는 꽤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조금은 매니악한 내용과 연출이 난무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사실 나 역시 그러한 소문을 듣고 지금까지도 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친구가 인생 영화라며 강력 추천하기 전까진 말이다.
귀 얇은 나는 바로 영화를 결제했고, 샐러드를 와작와작 씹으며 영화를 틀었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 내용인가 싶었다. B급인 것 같은데, 묘하게 나를 울리는 메시지들이 영화 속 연출처럼 혼란스럽게 내 감정을 뭉근히 반죽질하기 시작했다. 대혼란 속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강렬하고 따뜻한 메시지는 나를 울리기에 넘치도록 충분했다.
극 중 에블린은 자신이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때 가질 수 있었던 화려한 미래를 선망하고, 자랑스러워했지만, 결국 본인이 후회하던 원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나 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더 나은 버전의 내가 있는 세계들이 존재하고, 우리 인생이 아주 작은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내게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는 이 세계를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기에.
웨이먼드의 "Be kind"도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혼돈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빌런을 상대할 더 강력한 무기나 더 나은 버전의 내가 아닌, just be kind였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친절해진다면 더 나은 오늘이 찾아온다는 것. 내가 엉망이어도 그 부족함을 메꿔줄 다정하고,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꽤 나쁘지 않을 수도.
살다 보면 내 주변의 누군가가 멍청하고, 비참하고, 쓸모없고, 밉고, 한심해 보이는 순간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내 소중한 사람이라면 티끌만도 못한 아주 찰나의 순간 속에서도(오히려 아주 작은 찰나의 시간이기 때문에) 더 다정하게 그리고 더 소중하게 여겨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오늘 밤도 외치는 이너피스 이너피스. 회사를 나갈 수 있는 육체와 정신에 감사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때려치울 것 같긴 하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나 갈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니까 말이다. 지금도 후회로 충분히 가득찬 삶이지만, 앞으로도 더욱 맘껏 후회하며 동시에 거침없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참 좋겠다.
to me ever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