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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May 01. 2023

홀로서기

중간관리자 없는 팀에서 견디기

사수의 부서 이동 발령이 확정되고 나의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사수이자 파트장이었지만 같은 나이 또래에 성향도 비슷해 참 친하게 지냈고, 의지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저번 송별 회식 때는 울기까지 했다. 눈물이 많은 여자가 아닌데 참 희한한 일이다. 고작 세 달 같이 지냈는데 마음이 지나치게 좋지 않은 것을 보니 그녀가 나에게 참 좋은 사람이었나보다.


우리 팀에서의 마지막날 사수의 짐 이동을 함께 도와주고 나서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옆자리의 빈 책상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이게 이렇게나 넓은 책상이었구나.' 싶었다. 


팀장님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파트원들을 지켜주던 수호천사 같은 (그나마 있던) 중간관리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정말 실전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꿋꿋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며, 내 자리에서 내 몫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무척 두렵고 불안하다. 그녀가 하던 업무들을 그녀 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걱정스럽다. 



다른 팀원들이 사수의 빈자리를 함께 채우자며 의기투합했지만 탐탁지 않은 이유로 그녀를 보내야만 했던 우리들이기에 순간순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내가 속한 이 팀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팀장에 대한 신뢰는 이미 곤두박질 쳤다는 것이고 또한, 회사는 믿을 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회사의 이익을 생각할 뿐이다. 


쓰다 보니 화가 나지만, 흔치 않은 듯하면서도 흔한 일이 나에게, 우리 팀에, 내 사수에게 벌어진 것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벙벙하다.




그래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는 오래 못 갈 수도 있겠다. 일단,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회사가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 그럼에도 일이 들어오면 열심히 하긴 할 것이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회사가 직원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몸소 겪은 지금은 그냥, 너무 열심히 일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분명 길게 가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냥, 또, 그런 기분이 들었다. 회사란 대체 뭘까?

즐겁고 나름 뿌듯하고 재밌었던 지난 달의 회사 생활이 꿈같이 아득해졌다. 


회사 놈들, 가만두지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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