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대지에 퍼지는 봄기운에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도 줄어드는 시기가 왔다.
이 시기에는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학습환경 개선, 각종 파티, 국가기념일 등의 이유로 학부모 참여활동이 발생하는데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과 정서적 발달을 중시하는 북유럽답게 학부모들의-조부모까지도- 참여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맞벌이 비율이 높은 이 나라에서는 11개월쯤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에서 넉넉히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아기 a는 18개월이 되던 여름학기부터 어린이집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어린이집이라니!
그것은 사랑스럽고 감격스러운 순간이면서 그 감동을 만끽하기도 전에 나도 학부모로 업그레이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참 뜻밖이었다.
사실 성장하면서 학부모로서 우리 엄마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나도 내가 엄마가 된 순간에서야 부모역할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벌써 학부모라는 역할이 주어지는것이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국어도, 영어도 쓰는 나라가 아닌 곳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 나라'에서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가장 첫 과제는 아이의 적응이었다.
출산하고 병실로 옮겨 회복을 위해 복도에 나와 걷던 나에게간호사가 달려와 지금 해외에서 퍼진 전염병이 이곳에 도착했으니 빨리 병실로 들어가서 소식을 기다리라 했던 그때부터 아기 친구를 만들어 줄 기회가 흔치 않았고,앞서 말했듯 우리 가족은 막 한국에서 돌아왔던 터라아기 a는 언어부터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이 다른 친구들을 더더욱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근 한 달간 a와 함께 등원하며 느낀 점은뭣도 모르는 이 아기들이 사람이 되도록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것..그리고 초보 부모가 학부모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지해주심에 진심으로감사를 드린다는 것.
두 번째 과제는 도시락 싸기.
이 나라의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활동(야외) 및 집에서 보내는 오전간식, 보통 과일-원에서 제공되는 점심 1-낮잠-집에서 가져오는 도시락, 점심 2-오후 활동
으로 하루가 진행되는데
내가 생각하는 도시락-한국식 도시락은 그저 바쁜 아침을 더 정신없게 만드는 말 그대로 과제일 뿐이었다.최선을 다했지만 매번 꽉 찬 채 돌아오는 도시락을 여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첫 한 달은 나보다 먼저 어린이집을 보낸 또래 엄마들에게 '도시락은 뭘 싸주세요?', '여기서는 뭘 먹여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녔다.그렇게 한동안 사람들과 In스타그램, 9글링의 도움을 받은 바,아이는 파프리카/오이/그냥 삶은 파스타만/등등..으로도 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잡할 일이 전혀 아닌것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을..
그리고 세 번째 과제는 언어이다.
서두에 학부모의 참여활동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나라에서 영어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에도 자신들의 언어가 존재하고 영어는 어디까지나 제2외국어 이기 때문에 논-현지어 스피커는 환영하기 참 어려운 대상이다.무엇보다 학부모 참여활동을 하게 되면 나를 위해 누군가는 영어 통역을 해야 하는데타인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지도, 부탁을 받는 것도 어려운 이들에게 통역을 요청하는 것은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원의 학부모로서 제 역할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행사에 참석하고 한강의 모래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흔적을 쌓고 있다..
이밖에도 행사가 있는 날이면 준비해야 하는 케이크 베이킹(살면서 베이킹 용도로 처음 오븐을 써 보았다)이라던가학부모회 산하에서학부모들의 주도로 이끌어 가야 하는 각종 이벤트 준비-환경 꾸미기, 주변 상가에서 용품 협찬받기, 간식 준비 등등. 이 모든 학부모 활동이 그들도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당혹감은 되려 그들을 당혹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