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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 Jan 24. 2022

살기 위해 먹기 혹은 먹기 위해 살기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매일 한 번씩 비슷한 시간에 나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테씨, 우리 오늘 뭐 먹어?'


나는 음식이 있기 때문에 먹는다고 할 정도로 편식이 없고 취향도 없는 편인데 그렇기에 메뉴를 정하라는 요구는 항상 어렵기만 다. 나는 그저 살기 위해 먹는다.



아시아 태평양 어드메(이하 '그 나라')에 처음 입성했을 때 취업을 연결해주는 현지 에이전트의 가이드로 룸메이트와 지낸 적이 있다. 룸메이트 친구는 낯선 타지에서도 자신의 입맛을 찾아 과감히 음식을 탐방하는 일명 '미식가'였다. 룸메이트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살기 위해 먹니, 먹기 위해 사니?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낯선 곳에서의 초반을 께했던 그 친구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생각난다. 열정적인 것도, 스스로 행복하게 하는 법을 아는 것도.


나는 한식을 고집하는 편은 아니지만 현지 음식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었다. '그 나라'에 입성한 후 한 달 내에 6kg 정도가 빠졌었고 4개월 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치과들렀을 때는 영양실조로 인해 어금니가 썩은 것을 확인했으니..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 나라'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수입도 조금씩 나아지면서 나도 간사해지더라. 어쨌든 내 입에 맞는 음식은 있고 서러운 타향살이 먹는 것만큼이라도 잘 먹고 다니자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실천했던 것 같다. 사진첩 속 지난날의 나는 확실히 튼실하다.




남편 A와 결혼 후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로 이주한 뒤, 첫여름이 시작되던 때나는 a를 임신했. 산모가 잘 먹어야 아이도 큰다던 말을 듣는 것이 버릴 정도로 정말 끌리는 음식 하나 없고 크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다시 살기 위해 먹는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현재보다도 미래가 더 걱정스러웠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산모의 회복을 위해 더 잘 먹어야 한다던데. 도와줄 사람 하나 없어 스스로를 챙겨야 했던 당시의 나는 불안했다. 출산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미역국과 호박죽을 끓여 얼렸던지 지금도 냉동실에는 그때의 샛노란 호박죽이 그 어떤 재료보다 단단하게 얼어있다.


내 요리의 결과물이 <그래도 먹기에 나쁘지 않은 맛>이라고 자부한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은 모두 대장금이라는데 확실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 나라'에는 한식당이 많아 한국에서 먹던 맛을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는 초밥집에서 김치찌개를 판다. 아시안 식당에서 한식, 중식, 일식, 타이식 구분 없이 베지테리안, 치킨, 비프, 포크 메뉴로 통틀어 묶여있다. 가격도 비싸거니와 예상한 맛이 아니기에 섣불리 도전했다가는 실망이 큰 편이라서 직접 요리해먹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제법 맛도 나고 가짓수도 꽤 늘었다. 여러 날 저녁을 만들어 식구들을 먹이고 한 번씩 남편에게 물어본다.


"여보, 내일은 사 먹을까?"



국가가 운영하는 주류판매점에서. 이 반가운 소주 한 병에 붙은 금액은 한화로 18,635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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