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 한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에 대한 회의.
맨하탄 미용실에서 25만원짜리 머리를 하고 나온 날,
큰 금액을 쓴 죄책감에 저녁은 근처 한인마트에 있는 김밥으로 간단히 때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간 곳은 맨하탄의 코리아 타운, 상당히 많은 한국인 관광객과 교포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다.
호텔 칫솔이 너무 별로라 한인마트 근처 CVS(약국 겸 마트?라고 생각하면 된다)에서 칫솔을 하나 사려고 들어갔다. 셀프 체크아웃 계산대에는 4명 정도의 한국인 중년 여성 관광객분들이 계셨는데, 셀프 체크 아웃과 미국이라는 낯선 곳의 콤비네이션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우신듯 했다. 4명 중 한분이 근처에 있는 직원에게 상당히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셨는데, 그 분의 영어는 누가 들어도 한국인인 악센트가 굉장히 센 영어였다. 미국인 직원은 너무 불친절했다. 한국인 여성분의 부탁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What you tryna do?” 라고 말하고는 틱틱거리며 응답했다.
내 속으로 굉장히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뉴욕에 와서 영어가 입에서 잘 튀어나오지 않았던 때의 몇몇 미국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불친절, 내 부모님 즈음에 나이대로 보이는 한국인 분들과 지난 봄학기 수업에서 다뤘던 ‘Mother Tongue’ 에세이에서 브로큰 잉글리쉬를 구사하는 이민자가 미국에서 겪는 좌절에 관련했던 부분 등. 뭔가 알 수 없는 서러움이랄까. 이 미국인 캐셔 입장에서 이분들은 그저 브로큰 잉그리쉬를 구사하는 동양인 중년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내 사랑하는 조국에서 이 먼 땅까지 와서 새로운 시도와 여행을 하고 있는 반가운분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분들 상황에 끝내 개입하지 못했는가? 아니 안한 것인가.
사실, 이 곳에서 느꼈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이 오늘 글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기회와 평등의 땅이다. 하지만 이민자에게 그 사람이 조국에서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 떠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거나 강한 악센트를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사람의 지능은 평가절하된다. 프랑스어 악센트나 그런 주요 서구권 악센트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긴하나 그 외에 대부분의 악센트들을 (인도, 중국, 못 사는 나라일수록 더)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모두 해당된다. 뭐 호텔 리셉션부터 해서 병원, 학교, 사회 생활과 직장 측면에서 모두 이는 해당된다. 본 국적이 미국이 아닌 이민자들은 다들 이게 무슨 것인지 알 것이다. 모두가 알지만 다들 말하기 꺼려하는 불편한 사회적 큐라고 해야하나.
뉴욕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면, 그건 인종때문이라기 보다는 영어를 못해서일 확률이 훨씬 크다. 정말 그렇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색안경은 미국인들의 탓으로 치부하고 그들만의 문제로 분리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인마트에서, 나에게도 스치듯 이런 감정이 들면서 그 한국인 중년 여행객분들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 감정을 어떻게 글로 써내려야 하나 굉장히 많이 고민했지만 이게 내 정말 날것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저 미국인인척 그분들을 돕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영어는 장차 십수년의 사교육의 산물이기에 영어는 더 이상 나의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 스치듯 지나간 내 감정은 나를 혼돈에 빠뜨렸다. 내 부모님 나이대의 내 조국에서 온 분들이 웬 미국 사람에게서 이 불친절을 겪고 있는데, 서러움과 동시에 그들이 부끄러웠다. 미국에서 영어 못하는 동양인 여성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알기에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잠시후, 내 셀프 체크아웃 기계도 작동이 잘 안되길래 똑같은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굉장히 친절하게 답하며 떠날 때까지 좋은 밤 보내라며 인사까지 해줬다. 씁쓸한 감정과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공존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