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상하관계: "우리 무슨 관계야?"

연애 칼럼 - 01. 심리 상담비는 너무 비싸고 누군가에게는 말해야겠고.

by New York And The City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항상 비슷한 구도가 존재했다.

떠나가는 여자와 그녀를 간절히 붙잡는 남자.

여자는 남자에게 목매면 안되며 항상 나를 더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좀 구식이긴 하지만 이는 여전히 공식처럼 내 시스템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어달 전인가, 연상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 서부에 사업체를 두어개 가지고 있으니 뭐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휴대폰을 손에 붙들고 직원들과 전화를 하고 있는 그런 바쁜 사람이었는데, 항상 두어시간을 운전해 나를 보러오고 시간을 내는게 맘에 들었다. 두달 정도 연락을 하고 종종 만나곤 했는데, 얼마전에 미국인들이라면 모두 두려워하는 'commitment'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남자와 연인을 이어갈 생각이 없다. 복잡한 연인관계를 가진 이들은 뭐 모두들 그렇게 말하겠지만, 정말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남자, 결혼은 한번도 안했지만 두명의 아이가 있었고 (몰랐다. 처음에는.) 본인은 20대 초반에 꽤 와일드한 청년기를 보냈다길래 뭐... 사실 내가 실수한 파트는 이 곳이다. 애초에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는데, 계속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다.


남자는 재력이 매력이라고 했던가. 명품 브랜드 차를 타고 월세도 덜컥 내준다고 하니 이 남자라면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한순간의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외적으로도 내 스타일이었다. 키고 굉장히 크고 스트릿 패션에 굉장히 남성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내 애정관계에는 항상 패턴이 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 사람을 내가 왜? 와 같은 치기어린 근자감이랄까. (유치한거 안다. 나도 종종 그렇게 느낀다.) 뭐 그렇게 한두달 지나면 아무리 관심없던 사람도 점점 궁금해진다. 연락이 안오면 뭐하나 싶고 다른 여자랑 연락하나 싶고. 이제 떠보기 스킬이 시작된다. '나는 진지한 관계가 아니면 이어갈 생각이 없어.'라고 말하던가 혹은 은근슬쩍 다른 사람과 데이트 나가는 척하기 등등.


뭐 흔히 말하는 대표 대사인 "우리 무슨 관계야?"의 연장선상들이다.

절대 안정적인 미래를 그려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사람에게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애착은 에너지와 같다. 이성관계에 있는 두 사람 중 한명이 멀어지면, 불안해진 사람은 그 사람을 붙잡으려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멀어지면, 이번에는 불안해진 상대가 그를 잡으려고 애쓴다. 귀신같이 이 애착이라는 에너지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절대 붙어있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애착'은 사랑과는 또 다르다. 사랑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사려라고 할까. 사랑하는 사이에도 애착은 존재하다. 하지만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애착 그 자체는 'Lust', 욕망과 통제에서만 발생한다. 이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할 정도의 벅찬 감정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그저 그런 이기적인 마음. [번역은 색욕이라고 된다. 흠,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끌림과 욕망에 집중된 관계이기에 그렇게 부를수도 있겠다. 서로에 대한 알아감 없이 성적인 이끌림으로 시작된 관계도 다수 애착뿐인 관계로 끝나니 이도 해당되는 것 같기도.]


이 애착뿐인 'Lust'가 중심인 관계를 선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애초에 타인을 통제할 수도 없을 뿐더러 종종 이는 진지한 미래에 대한 고찰없이 시작하는 관계이기에 적어도 상대방 중 한명을 다치게 하고 나서야 끝이 나게된다. 상호 동의 없는 섹스 파트너 관계나 Traumatic bonding, 맨날 싸우며 서로를 해치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연인관계도, 바람둥이를 붙잡고 있는 관계도, 연인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도 모두 이에 해당된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관계를 끊어내는 것밖에 없다.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면 노력해보는 것도 반대는 하지 않겠다만, 대부분 이런 관계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상하관계가 존재하거나 이 관계에 가담하는 동기가 서로 너무 달랐어서 바꾸기 어렵다. 뭐 근데, 끊어내는게 제일 어렵다. 종종, 애착과 사랑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렵고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니.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이 남자와의 관계에 너무 몰두하고 있다는 순간을 자각하고 나서는 써내려가는 이야기이다. 너무 깊게 빠지지 말아야지. 결혼할거 아니니 만나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나를 너무 과신하고 있었나보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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