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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Jul 30. 2024

일찍 출근하기

장점들

 요즘 1시간 일찍 출근을 하고 있다. 한 달 전에 어쩌다 일이 있어 새벽에 출근을 한 적이 있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왔는데, 세상에 환한 거다. 깜짝 놀랐다. 차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고, 물론 낮만큼 많진 않지만, 그래도 마치 대낮처럼 세상은 그랬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 날부터 잠이 일찍 깨졌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힘들었는데, 눈이 저절로 반짝 떠졌다. 그 하루 새벽이 내 바이오리듬을 바꾸어 놓은 것일까. 그리고는 일찍 출근해 버렸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을 챙겨주니까 믿고 나와버렸다. 그러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일찍 나오면 좋은 점. 우선 차가 쭉쭉 나간다. 차가 안 막힌다. 그리고 가장 먼저 직장에 오는 즐거움이 있다. 다른 건 1등 못해도 이거라도 1등 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튼 기분이 좋다. 상쾌하다. 내 자리 주변을 청소하고 하는 김에 다른 곳도 청소한다. 뭔가 이 뿌듯한 느낌이 좋다. 커피 머신을 정리하고 새로 물을 받아 놓는다. 전원 버튼을 켜 놓으면 커피 머신이 커피 내릴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게 조용하게 있으면서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한 사람씩 출근을 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내가 준비해 놓은 커피 머신을 사용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 또 기분이 좋다. 아무도 내가 한 지 모른다 해도 나 혼자 그냥 좋다. 우주가 나를 칭찬해 주는 느낌이랄까. 


 또 아침에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도 만날 수 있다. 일찍 오네 하고 인사를 하면 공부하려고요 하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다. 아이고 기특해라. 칭찬해 준다. 그러면 씨익 미소를 짓고 교실로 올라간다. 재작년에 내가 담임했던 한 학생을 만나곤 너무 반가워서 아무개야, 너 졸업식 할 때 선생님한테 사진 찍으러 와. 같이 사진 찍자. 그랬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대답했다. 네, 선생님 꼭 갈게요. 이 짧은 대화로 그날 하루는 행복이 충만해졌다. 우리 셋째 아들내미를 똑 닮은, 키가 큰 기린 같은 아이인데, 너무 착하다. 그 아이의 대답이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들은 어리고, 말 한 대로 다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충분하다. 힘든 고3 생활, 쉽지 않은 직장 생활, 하지만 이 고생 속에 즐거움이 있다. 다른 데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고생이 없다면 알아차릴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인생은 참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다. 온전한 행복은 사실 고생과 고난 속에 숨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고생 속으로 뛰어들라고. 그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냥 주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 인생도 그렇다. 피곤한 몸을 깨워서 주 5일 출근하고 나야 주말이 달콤하지 않은가. 얄밉게도 말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인생이 그렇다는데. 내가 세상을, 인생을 바꿀 수가 있나.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하나뿐이다. 하지만 나 자신도 사실 바꾸기는 쉽지 않다. 고요하면 더 많이 떠오르는 나의 과오들과 부끄러운 기억들. 떨쳐내려고 해도 떨쳐내지지 않는 걱정과 근심들. 불안한 마음들. 나의 생각도 그로 인한 나의 말과 행동도 사실 너무나 실수가 많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도 계속하는 행동들. 


 세상 모든 일이 쉽지 않다. 나 자신도 쉽지 않고. 그래도 기를 쓰고 힘들다는 단어보다는 쉽지 않다는 단어를 선택하며 나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되도록이면 좋은 말을 하려고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도 용서해주려 하듯이 나 자신의 과오도 용서해 주려고 용을 쓴다. 정말 용을 써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가면서 이 고생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또다시 달콤한 주말을 맞이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훌쩍 커서 집을 떠나고, 나는 늙어 있겠지. 


 요즘 순간순간 나의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충분히 살았으니, 이제 늙어가기도 해야 한다. 얻은 것이 많으니 나누어주기도 해야 하고. 섬김을 많이 받았으니 많이 섬겨주고. 아름다운 할머니로 늙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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