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파요
가족들과 <몽실 언니>를 읽고 있다. 어제가 세 번째 시간. 두 번째 시간에 빠졌던 큰 아이는 자기만 놔두고 읽었다고 서운함을 비쳤다. 어쨌거나 함께 2번째 챕터를 읽기 시작했다.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읽었다.
그런데 이번 챕터는 읽고 싶지가 않았다. 이미 예전에 이 책을 읽어서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을 보니,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거다.
2. 다리병신
아, 읽기도 전에 마음이 아프다. 이 얘기를 사람들과 나누었더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다. 사람들도 요즘에 부정적이고 우울한 것은 뉴스든 드라마든 가능한 안 보려고 한단다. 가능한 좋은 것, 긍정적인 것 위주로 보려고 한다고. 자기 몸과 마음에 유익하지 않을 것 같아서란다.
나도 그런가. 유익하지 않음과 별개로 나는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못 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거다. 폭력적인 것을 봐도 괴롭고, 고생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이 힘들다. 물론 그 과정 끝에 또 좋은 열매가 있어서 결말에는 미소를 짓게 되더라도, 그 과정이 예전보다 힘들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이런 고생 저런 고생도 많이 했고, 각양각색의 상황에서 괴로움이 연상이 잘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때는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상상 속에서 막연하게 경험하지만, 이미 다양한 괴로움을 겪어본 나이에서는 실제 아픈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아픔과 괴로움은 사양하고 싶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고 싶다. 남은 나의 인생을 이쁘고 좋은 것들로 채워가고 싶은 거다. 이미 고생은 충분히 했지 않나. 그러나 그만하고 싶어도 어차피 내가 겪어내야 할, 남아 있는 고생도 있을 테고.
결국 우리 가족은 두 번째 챕터를 읽어냈다. 괴로움을 겪어냈다. 아이들은 별스럽지 않겠지만, 나는 괴로웠고 마음이 아팠다. 다리를 다치고 제대로 치료도 위로도 받지 못한 채로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던 몽실이를 떠올리니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질문을 서로 나누며 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질문 시간이 끝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뒤가 궁금했는지, 첫째와 막내가 뒷부분을 조용히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안 돼! 우리 천천히 같이 읽기로 했는데! 외쳤지만, 이미 다 읽어버렸단다. 천천히 읽기의 예상치 못한 이득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는 게 묘미인데. 흠. 그래도 계속해서 같이 읽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고 모임을 마쳤다. 모임 전에는 이걸 왜 읽어야 하느냐고 입이 한발 나와 있었던 막내가 마칠 때는 '나는 뒷이야기를 알지롱' 하며 혀를 날름 내미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200페이지가 넘는다며 짜증을 있는 대로 내더니.
다 읽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벌써 그다음 책을 고민하게 된다. 다음엔 뭘 읽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