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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Oct 25. 2023

믹스커피

하루의 즐거움

 나는 믹스커피를 좋아한다. 뭔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카페인에도 예민한 나의 육신 때문에 절제해 왔는데, 다시 고삐가 풀려버렸다. 요즘은 하루의 낙으로 믹스커피를 한 잔 한다. 즐거운 시간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다. 정말. 담배 피는 사람들에겐 담배 한 개비가 여유일 거다. 담배 하니까 생각이 나는 게 있다. 호주에 영어 공부하러 갔을 때, 다니던 교회에서 담배피는 아저씨가 있었다. 예배 마치고 식사를 준비할 때에 그 아저씨는 교회 밖 뒤뜰에서 담배를 태우셨다. 나는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는데, 사실 속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때 나는 20대였고, 교회를 성실하게 다니는(겉으로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담배 피는 사람이 교회 나와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 때는 나도 참 고지식했었고, 그래서 모자랐었다. 자기 못난 줄 모르고 잘난 줄로만 알던 사람이었다. 자신만만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있었다. 물론 잘 한 건 많지 않았는데도 그랬었다. 


 그런 오만했던 나는 술도 마시지 않고 물론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까 나 스스로는 고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호주에 그 아저씨를 보고는 나의 아집이 좀 깨졌다. 아 그럴수도 있구나. 하고.


 술도 음료수라고 나를 설득하던 같은 교회 대학부 선배가 있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을 합리화하고 싶었나보다. 그때 나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마음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는 선배가 형편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술 마시는 건 죄가 아니지 않나. 담배도 그렇고. 술이나 담배를 교회에서 금하게 된 것은 한국에 교회가 들어오던 초기에 미국 선교사들이 정한 규율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는 나오지만, 술 마시지 말라는 구절은 없지 않나. 


 그렇다고 내가 술이나 담배를 이제 와서 하느냐면, 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들의 믿음을 위해서 나는 하지 않는다.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것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나에겐 이제 와서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늘 읽은 소설에서 자살한 사람에게 더이상 교인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부분을 읽고 마음이 불뚝해졌다. 아니 왜? 자살이 죄라서 그렇단다. 죄 지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나? 종교의 교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자살 뿐만이 아니고, 죄는 다양하고 많다. 그리고 사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 자살은 하고 나서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인가? 그럼 너무 슬픈 일이다. 돌이킬 수가 없는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에게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구원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우리의 생각은 짧고, 하나님의 생각은 깊고 넓고 우주와 같으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건, 마음에 한편으로 큰 의지가 되는 일이다. 어딘가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난 선택적으로 하나님을 믿었다. 선택하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은 선택적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한 상태다. 그리고 감사하고, 은혜가 있다. 


 내 인생에, 그리고 이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때로는 성경을 보면서도 의문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다. 그게 좋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실은 하나님 따윈 없어, 라고 그게 진실이라고 말해도 다행히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그래서 정말로 없다고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나는 삶에서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안정감이 들고 기분이 좋다. 편안하다. 나는 열성적인 신자는 아니지만, 잔잔하게 하나님을 믿는다. 그것도 좋다. 한때는 열렬하게 믿었었고, 지금은 잔잔하게 이렇게 믿음을 가지는 것도 인생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술을 마셔보지 않으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는 걸까? 술을 모르면 인생의 큰 부분을 모르는 걸까? 대학교 다닐 때 선배들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었다. 세상 재미를 모른다고. 지금도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평생에 술 마신 일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궁금하긴 하다. 내가 술을 마시면 어떻게 변할까? 


 우리 아버지는 옛날에 술을 드시면 얼굴이 벌개지시고 나를 붙잡고 오만 얘기를 늘어놓으셨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말이 많으면 사람들이 싫어할테니까 이제라도 술은 마시지 않는게 좋겠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믹스커피! 엄청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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