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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Oct 26. 2023

헤어 스타일

딸아이

 머리가 그새 자랐다. 짧은 머리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둘째딸이 "엄마, 이제 머리 자르지마." 라고 해서, 못 자르고 있다. 내 머리 스타일도 마음대로 못 하나, 싶지만, 그게 아니다. 


 둘째딸은 학급 내 괴롭힘으로 몇년 간 힘들어했었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순간순간 분노가 막 치밀어 오른다고 했었다. 상담도 받아보고, 자기 방이 필요하다고 해서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부족한 게 많겠지만,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딸아이를 위해 애를 써 왔다. 그래도 변화가 별로 없어 보이고, 학교는 가기 싫어하고, 매일 아침이 전쟁터와 같았는데, 어느새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너무 좋다. 엄마한테 관심도 가지다니. 많이 좋아졌다는 신호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무는구나. 정말 다행이다. 


 몸에 상처가 나서 아무는 건 당연하게 여기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쉽게 낫지 않는 것 같아서 과연 이게 아물어질까 걱정했는데, 아물긴 아물었다. 아니, 아물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남편과 나도 그 시간이 참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마법같은 변화다. 지나고 나면 당연히 상처는 아무는 거니까 괜찮아질 거니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과연 마음이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맞다. 피를 철철 흘렸었다. 


 다른 아이도 아니고,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건강하게 잘 크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과 싸울 때는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딸아이 문제 때문에는 그냥 이대로 내가 죽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의 싸움에는 분노의 반응이었다면, 딸아이 문제에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감당할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 


 머리 감을 때마다, 그리고 머리를 말릴 때마다 귀찮지만, 그럴 때는 딸아이를 떠올려야겠다. 그러면 흐뭇한 마음이 들 거고 귀찮음 정도는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길어진 머리를 잘 단도리하고 오늘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잘 단도리가 될지 모르겠다. 우선은 커피 한 잔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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