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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Oct 27. 2023

미움 받을 용기

짜부라진 나

 무지랭이라는 말이 있을까. 있다면, 지금 내가 그 무지랭이 같다. 위에서 눌러서 잔뜩 짜부라진 무지랭이.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를 맡아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가 마침내 압박이 들어왔다. 당연한 거지만, 왜 열받지? 나의 지위가 지위인 만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 그 마음 먹는 게 한참이 걸렸다. 거의 6개월 넘게 마음 준비만 했던 것 같다. 데드라인이 내년 여름이니까 더 마음을 놓고 일을 미루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내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짧은 머리로는 나 말고 이걸 맡을 사람이 없다. 그래, 받아들이자. (아, 고통스럽다) 고통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다행히도 고통이 예전보다는 덜해졌다. 마음 먹느라 시간은 걸렸지만, 마음이 먹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하하하


 거절할 용기나 미움 받을 용기 같은 건 나에게 없나보다. 직장 생활에서 그런 게 있으려면 안정된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게 없다. 현재로서는. 앞으로는 있을까? 잘 모르겠다. 


 최근에 미움 받을 용기는 조금 생겼다. 예전에는 누가 날 미워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견딜 수가 없었다. 쫓아가서 풀고 해결을 해서 원 상태로 돌리려고 무척 애를 썼었다. 그 과정에서 속도 상하고, 외면당하고, 거절 당하고 마음이 아팠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어도 그 용기는 잘 생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 저자가 실제로 미움을 실컷 받아보니, 꽤 괜찮더라는 얘기를 들려줬다. 아, 그렇구나. 한번 미움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누가 날 미워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이제는 아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한다. 괜히 설레기도 하다.


 어느 누가 미움 받고 싶겠나. 그러나 나 자신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마음에 들진 않는다. 다 표현은 못 하지만. 아무리 감춰도 사실 좀 드러나기도 할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감추고 산다. 마음에 드는 사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사이에 차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표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나도 그렇게 대접받고 싶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최소한의 기본이다. 


 세상엔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참 많더라. 나도 항상 친절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친절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매사에 자기 할 말 다하고 자기 감정 다 표내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때로는 그 사람이 되레 부럽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편하게 살지? 자기 하고싶은 대로 다 하고 살면 좋은가? 그런데 지금 이 글을 내가 쓰고 있다는 걸 누가 본다면, 나한테도 그 소리 할 것 같다. 너도 그래! 이러고. 


 그래, 나도 그렇다. 그래서 뭐! 

 아직 기피 업무에 대한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난 상사에게 미움받을 용기 따윈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거다. 좀 힘들지만, 마음을 잘 추스리고 하는 데까지 해 봐야겠다. 상사가 원하는 대로 하자면, 내 영혼을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는 못하겠다. 


 영어로 '짜부라지다'는 'get deflated', 'wither', 'shrivel'  가 있다. I've gotten deflated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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