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극복하라
믿음보다 앎이다.
인생이 변하려면 정체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TV 모 프로그램에서 축구를 하는 여자 연예인은 마치 자기 자신을 축구선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원래는 모델이었지만, 현재는 그냥 축구선수인 거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취미로 축구를 한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는 없었을 거다. 축구로 먹고살아야 하는 축구선수이거나, 축구가 자기 인생의 사명이거나 했던 거다.
이하영 원장이 그랬다. 믿음이란 그게 사실임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그게 사실임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다. 안다는 것은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축구선수이면 그냥 축구선수임을 인지하는 것이지 나는 축구선수여야 해 하고 애써 믿으려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 자신을 무엇이라고 알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그 어떤 것이라고 애써 믿으려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우선 교사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믿으려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가 천재라는 것은 애써 믿어야 한다. 실수한 나의 모습을 볼 때 실망하게 되지만, 애써 나의 장점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내가 천재라는 사실을 믿기 위해서다.
옛날부터 나는 천재가 되고 싶었다. 천재가 된다는 말이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니까. 그런데 누군가는 천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때 천재는 타고난 천재라기보다는 천재적인 생각, 천재적인 재주를 말한다. 무한한 잠재능력이 우리 속에 묻혀 있다고 볼 때, 우리는 모두 천재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만 하면 된다. 그래서 무엇을 개발할 건가. 어떻게 개발할 건가.
아인슈타인이 사람은 자신의 뇌의 10%도 사용하지 않고 죽는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나의 뇌를 사용해 보고 싶은 것뿐이다. 나는 18세 청춘이 아니지만, 40대의 중년 아줌마이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할 수 있다를 외쳐 보고 싶은 것뿐이다.
울트라러닝이란 책을 보면 퀴즈대회에서 1등 한 사람도, MIT 공대를 독학한 사람도, 6개 국어를 단기간에 마스터한 사람도 다른 무언가를 바란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동기에서 시작한 거였다. 그래서 나도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
업무를 하며 일을 계속해서 미룬 적이 있었다. 기한이 많이 남았지만 업무량이 많았기 때문에 부지런히 해야 기한을 맞출 수 있는 일이었는데, 계속해서 미루고 있는 거다. 그게 나의 한계였다. 나는 나의 한계에 굴복한 것이었다. 잘 해내지 못할 것 같고, 하기 싫은 마음이 나를 이겨 버린 거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챈 후 나의 한계와 싸우기로 결심했다. 한계를 느끼고 도망치고 싶을 때, 그 한계에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한계를 넘어가 보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말해 본다. 아무개야 너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설까 봐 벌써 겁먹고 도망치는 거니? 아니, 너는 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한 걸음만 더 가 보면 된단다. 너는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아무개야. 저리 좀 가 줄래?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계속해서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나의 한계를 1센티 넘어섰다는 것을. 내일도 1센티 넘어설 것이다. 과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 볼 것이다. 나의 생각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나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인지. 그러면 날마다 모험의 세계가 펼쳐진다.
설탕금식을 한 3주째 오늘 아이스크림의 유혹 앞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고, 나는 다시 나의 한계에 도전할 것이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놀라운 나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