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향기 Mar 19. 2024

시한부 인생

끝은 있다

  명상록이 얼마 안 남았다. 다 읽어가는 이 시점이 행복하다. 처음엔 정말 지루해 보였는데, 읽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었고, 감동도 있었고 깨달음도 있었다. 분노도 있었고.


 "본성이 우리 속에 둔 것은 생각하고 깨닫는 힘이다. 우리가 그 힘을 발견해서 사용했을 때, 우리는 본성과 조화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예능, 드라마 등을 통해 얻는 잠시잠깐의 짜릿한 쾌감은 나에게는 저급한 도파민에 해당한다. 나에겐 고급진 도파민이 필요하다. 더 양질의 것을 원한다. 그래서 늘 목마르다. 무언가 깨닫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나에게 있다. 그러려면 차분하게 책을 읽고 집중하여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필요하다. 명상록의 저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저자는 전쟁터에 있었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으며 죽더라도 뛰어드는 심정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서 남다른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나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지 않다. 나름 이곳도 전쟁터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과 사를 오가는 그런 곳은 아니다. 전쟁터에 비하면 아주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나는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철학자 저자의 마음이 때로는 영 생뚱맞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죽음 앞에서는 소소한 욕망도 탐욕이 되기 때문일까. 살아가는 것에 열심을 내고 더 노력하는 것이 이 저자에게는 다 쓸데없는 일이다. 그저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우주의 이치에 맞게 선하게 큰 뜻을 위해 사는 것이 저자의 삶의 목표인 듯하다. 


 "위대한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죽는다는데 대수롭지 않다니.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나의 생명 아닌가. 그러나 저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위대한 마음을 노래한다. 다른 것은 다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나는 내 딸아이에게 고민 없이 학원비를 주고 싶고, 지금보다 더 깨끗한 신축에서 살고 싶으며, 적게 일하고 안정되게 소득을 얻길 원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 수준을 원한다. 그런데 이 저자의 기준에 비추어본다면 나는 탐욕에 물든 사람일 거다. 


 예전에는 그랬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당연했고, 그래서 가난한 삶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더 나은 것을 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더 나은 것을 바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허락된 것만큼은. 문제는 그 허락된 지점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그 지점을 넘어선 순간 마땅한 바람에서 탐욕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공간인 전쟁터에서 저자는 늘 끝을 바라보며 살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펼쳐진 넓은 우주와 그 속에 있는 너무나도 작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언젠가 먼지처럼 사라질 끝을 생각했을 거다. 


 알고 보면 다 시한부 인생이지 않은가. 끝이 정해져 있는. 그 시점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 진짜 시한부 인생과의 차이일 거다. 그래도 언젠가 끝은 온다. 마냥 멀게만 느껴져도 사실 돌아가는 때는 얼마나 일찍 찾아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끝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끝을 생각하면 왠지 겸손해지고 경건해진다. 우주 속의 작은 먼지가 된 느낌이랄까. 자연의 순리, 또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불평하고 불만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수용과 감사가 솟아오른다. 오히려 안도감이 찾아온다. 분노와 짜증으로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지만 끝을 생각하는 게 내 현재 삶에 도움이 된다면 생각해 볼 법하다. 너무 자주는 말고. 우울해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뭐가 잘 사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