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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r 29. 2024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2)

무엇이 중한가

 아빠는 나를 항상 예뻐해 주셨고, 엄마에게는 야단도 많이 맞았고, 어릴 땐 얻어맞기도 했다. 잘못을 했으니 맞았겠지만, 나는 전혀 맞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 상처는 나의 무의식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결국 내 의식적 기억에는 맞은 것도 없고, 그렇게 크게 혼난 것도 없다. 그냥 편안하게 자란 것 같다. 어쩌면 공부한답시고 장녀랍시고 내 마음대로 자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런 결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아빠가 사회적으로 약하고 무능해 보였기 때문에 강한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어쩌다 만난 남편은 인생 최대의 고통을 선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남편은 감정적이고 화가 있고 그 화를 분출하는 스타일이다. 폭발적으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제는 커 버린 아이들을 넷이나 데리고 확 도망갈 수도 없으니까. 


 정말 그랬다. 남편이 주는 고통이 세상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남편이 화를 낼 때면 너무 고통스럽고 공포와 모멸감이 든다. 딱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보다 더 한 고통은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면 화를 안 낼 때는 괜찮을까? 아니다. 노심초사 늘 남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각일 뿐 뒤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남편의 비위를 전혀 맞추지 못했다. 결혼 전 아이 같은 마음으로 여전히 내 마음대로 하면서 눈치만 본 것이다. 그러니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 난리를 치면서 온 가족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이미 고통에 지쳐있었고, 둘째 아이의 어려움을 돌봐주다가 결국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남편과 싸우고 아이들을 피해 작은 방에서 화해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서 그냥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 이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 

 

 그냥 헤어지면 되고, 도망가버리면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자살하는 학생의 기사를 보면서 그냥 전학을 가 버리지, 이사를 가 버리지 왜 자기 목숨을 끊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그냥 갑자기 찾아오는 거였다. 죽고 싶은 순간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그 순간이 어느 순간 찾아오는 거였다. 해결책을 생각할 새도 없이 말이다. 찬찬히 이건 어떻게 하고 저건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고 오직 이 현실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그래서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는 엄마도 있고,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가장도 있는 게 아닐까. 


남편보다는 아이가 주는 고통이 더 컸던 건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행인 건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정말 안 되게 보였는지 남편이 상담을 받으러 간 것이다. 그렇게 받고 싶었던 부부상담이었는데, 이 상담만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는데, 나의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실망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남편도 상처가 많고 문제가 있었지만,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십이 넘어서까지도 엄마에게 매달려 있던 나를 발견했고, 그래서 엄마 외에는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완벽해만 보였던 엄마의 모습이 점점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진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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