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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Mar 29. 2024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3)

무엇이 중한가

 나는 첫째 아이가 어렵고 불편했었다. 이 문장이 과거형이라는 사실이 새삼 감동적이다. 첫째가 태어나고 온 집안에 첫째 아기였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았다. 이쁘기도 이뻤었다. 그런 첫째 아이인데, 나는 사랑을 많이 주지 못했다. 1년도 안 되어 둘째가 생겼고, 둘째가 태어나자 내 모든 관심은 둘째에게로 옮겨져 갔다. 첫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사랑이 샘솟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둘째가 귀여웠다. 어느 날은 둘째를 보다가 첫째를 보는데 첫째 때는 이런 감정으로 바라봐준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펑펑 운 적도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첫째한테 미안했던 게. 


 너무너무 미안하지만 첫째와의 스킨십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둘째와는 스스럼없이 비비고 뽀뽀하고 난리를 부리면서도 첫째와는 안 되니까 나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첫째는 남편을 닮아 치대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그걸 받아주지 못했다. 다가오면 밀어내고 피하고..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을까.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남편 다음으로 고민이 첫째 아이와의 관계였다. 부부상담을 받으면서도 첫째와의 어려움을 여러 번 털어놓았었다. 그리고 나의 문제를 인식하고, 엄마와의 나의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누굴 조종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엄마한테 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고, 엄마는 들어주는 쪽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물론 대학과 과를 결정할 때는 당시 담임 선생님과 엄마가 의논한 곳으로 가긴 했지만, 평소에 엄마는 나에게 그다지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와 아이들을 태우고 어딜 다녀오는데, 엄마가 우리 셋째한테 강요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니,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셋째가 엄마의 제안에 싫다고 말을 하니 엄마는 말투를 바꾸었다. 나라면 말투가 달라진 엄마 때문에 엄마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을 건데, 셋째는 그러지 않았다. 오, 그것도 놀라웠다. 아 나는 저걸 눈치채지도 못했고, 거부하지도 못했고 엄마에게 늘 끌려다녔구나.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땐 항상 말이 머뭇거려졌다. 그러면 엄마가 답답한 듯 소리를 치신다. 전화했으면 말을 하라고. 그런데 왜인지 말이 잘 안 나오고 항상 머뭇거리다가 말을 시작했다. 그런 상황이 매번 전화할 때마다 이어졌었다. 


 셋째와 엄마 사이의 상황을 인식한 후 나는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원망과 분노가 자랐다.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급기야는 내 현재 상황의 모든 원인이 엄마인 듯 여겨졌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엄마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통화도 하고 싶지 않았다. 힘드니까 당분간 연락을 못하겠다고 말은 해 두었다. 엄마는 서운해했지만 또 밀린 사춘기가 시작되나 보다 반응하셨다. 


 그리고 첫째를 대할 때 나의 감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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