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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향기 Apr 01. 2024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4)

무엇이 중한가

  17년 전, 내 결혼식 날짜가 잡히고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누나가 평생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줄 알았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대답을 얼버무리며 그냥 그럴 것 같았단다. 분명히 안 좋은 의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때 무지 행복했으니까. 나도 남들처럼 언젠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결혼은 예상보다 훨씬 늦게 찾아왔고, 나는 드디어 그 관문을 통과하려는 참이었다. 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제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들처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작 나는 결혼에 대한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었다. 남편에 대한 환상은 있었지만. 신혼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민다든지 알콩달콩 저녁 시간을 준비한다든지 남편을 위해 선물을 산다든지 그런 계획은 전혀 없었다. 하고 싶은 건 그냥 결혼을 했다는 사실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을 했으니까 나는 만족했다. 


 남편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혼집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아내가 나에게 이런 것 저런 것 해줄 것도 기대한 모양이었다. 서로 맞벌이하느라 바빠서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남편의 기대는 항상 채워지지 못했다. 그렇게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고 정신없이 산다고 몰랐지만, 나중에 남편이 하나둘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왜 화내는지 몰랐는데, 이런저런 기대가 무너지니 화가 자꾸 났던 모양이다. 


 애교도 없고, 요리도 잘 안 해주고, 남편 옷을 다려주지도 않고, 손수건은 아예 기대도 안 했단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예 남편에 대한 관심은 뚝 끊어지고 아이한테만 매달려 있으니 그것도 마음에 안 들었을 거다. 그렇게 참고 참고 참다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화가 분출되고 나는 매번 날벼락을 맞는 느낌으로 화를 당해야만 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뭘 잘못해 왔었는지. 그래서 미안하다. 안 그래도 어릴 때 아픈 형님에 치여서 사랑을 많이 못 받았다고 하는데, 괴팍한 아버지 밑에서 욕도 듣고 맞기도 맞고 자랐다는데, 내가 전혀 그를 보듬어주지 못했던 거다.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 아마도 그걸 제일 기대하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기대는 있었다. 남편에 대한 기대가. 자상하고, 나만 사랑해 주고, 내가 느끼기에도 사차원인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남편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은 자기 자신도 감당 안 되는 사람이었다. 자기도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뭘 기대한단 말인가. 듬직하고 능력 있어 보였던 남편은 이제 나에게 아이와 같다. 우리 네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 물론 모든 방면에서 그런 건 아니다. 남편은 자기 분야에서 나름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모습을 좋아했고 존경했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고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편안하지 않다. 아프고 불편하고 짜증 난다. 가장 큰 관문은 지나갔는지 모르나 이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에정이다. 그때만큼은 안 아플 거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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